신경림, '봄의 노래'
-신경림
하늘의 달과 별은
소리내어 노래하지 않는다
들판에 시새워 피는 꽃들은
말을 가지고 말하지 않는다
서로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우리는 듣는다
달과 별의 아름다운 노래를
꽃들의 숨가쁜 속삭임을
귀보다 더 높은 것을 가지고
귀보다 더 깊은 것을 가지고
네 가슴에 이는 뽀얀
안개를 본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듣는다
눈보다 더 밝은 것을 가지고
가슴보다 더 큰 아픔을 가지고
‘봄’이라고 하는 녀석은 참 이상합니다. 봄은 겨우내 얼어 있던 땅을 헐겁게 해 씨앗이 땅을 뚫고 지상으로 고개를 내밀게 합니다. 봄은 흙에게 영양분을 주고, 지상으로 고개를 내민 씨앗의 뿌리에게도 흙의 영양분을 흡수하게 하는 생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봄은 지상에게도 온기를 주어 온갖 생물들이 마음껏 뛰놀고 자라게 합니다. 그렇다고 ‘봄’이라고 하는 녀석은 지상의 잔치에 참여하라고 큰 소리로 외치지도 않고, 자신의 역할을 뽐내지도 않습니다. 묵묵히 순환의 흐름에 따라 제 역할만을 다할 뿐입니다.
‘꽃’이라고 하는 녀석도 참 이상합니다. 봄의 도움으로 지상에 얼굴을 내민 꽃은 지상의 아름다움에 자신도 온몸으로 아름다움을 보탭니다. 그뿐입니다. 땅속에서 온 겨울을 버텨낸 자신을 대견해 하지도 않고, 죽을힘으로 꽃을 피웠으니 좀 봐 달라고 보채지도 않습니다. 제일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었으니 오래 꽃으로 머물러 있게 해 달라고 애원하지도 않습니다. 지상에 얼굴을 내밀 수 있는 용기와 어느 곳에서든 잘 자랄 수 있는 긍정의 힘을 믿고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달’과 ‘별’이라고 하는 녀석도 참 이상합니다. 날이 밝을 때에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숨어있다가 날이 어두울 때만 조용히 찾아와 밝은 빛을 드러냅니다. 내 마음이 기쁠 때에는 소식마저 끊고 저만치 떨어져 지내다가도 내가 실의에 빠져 낙담하고 있을 때 어김없이 찾아와 한 줄기 빛을 선사합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밝음을 뽐내지 않습니다. 구름이 가리면 기꺼이 양보할 줄도 알고, 해가 뜨면 자신의 밝고 아름다운 모습을 숨길 줄도 압니다.
‘너’라는 녀석은 참 이상도 합니다. 가슴에 안개꽃 송이만큼이나 많은, 사연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그 아픔을 안개꽃으로 승화시켜 나에게 편안한 아름다움을 주는 ‘너’라는 녀석은 참 이상도 합니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나에게 포말의 아름다움과 철썩이는 속삭임을 들려주는 ‘너’라는 녀석은 참 이상도 합니다.
세상에는 이상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말하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노래와 숨가쁜 속삭임을 들려주는 존재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귀보다 귀한 귀로, 눈보다 밝은 눈으로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음을 이 시를 통해 듣고 보게 됩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