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개미와 베짱이에 대한 인식

신경림, '개미를 보며'

by 인문학 이야기꾼

개미를 보며

-신경림


새천년이 된들 무엇이 나아지랴

더 강력하고 더 무자비해진 차바퀴에

더 많이 더 빨리 깔려 죽겠지

사람들은 말하겠지

너희들 진한 땀과 피가 아니었던들

어찌 이 세상이 이만큼 만들어졌겠느냐고

여름 내내 그늘에서 노래로 즐긴 베짱이들이

너희들의 문전을 찾아 구걸하는 그림이 찍힌

낡은 교과서를 뒤적이면서


‘개미와 베짱이’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여름에 열심히 일한 개미는 따뜻하고 편안한 겨울을 보낼 수 있고, 여름 내내 노래 부르고 놀기만 한 베짱이는 춥고 배고픈 겨울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죠. 이 동화가, 이 동화가 실린 교과서가 아이들에게 전하는 교훈은 분명해 보입니다. 열심히 일하자, 부지런한 사람이 되자는 것이지요.


교과서는 많은 부분을 이분법적으로 가르칩니다. 개미는 부지런하고 베짱이는 게으르며, 부지런한 것은 좋고 게으른 것은 나쁘다는 식이죠. 이런 이분법적인 가르침에 시인은 일침을 가합니다. 개미가 그 부지런함으로 만든 차바퀴가, 개미가 그 부지런함으로 만든 문명이 개미를 죽게 만든다는 겁니다. 자신이 만든 차바퀴에 자신이 깔려 죽는다는 것을 개미만이 모른다는 것이죠.

또 교과서는 겨울을 대비할 필요가 없는 베짱이에게 겨울을 대비하라고 가르칩니다. 베짱이의 삶의 목표는 여름에 열심히 노래 불러 짝을 찾아 번식하는 것입니다. 베짱이에게 겨울은 없습니다. 오지도 않을 겨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올바른 가르침이 아니라는 것이 시인의 인식입니다.


풀을 뜯어 먹는 동물도 있고, 곤충을 잡아먹는 동물도 있고, 그 동물을 매개로 살아가는 동물도 있습니다. 동물은 무조건 풀을 먹어야 한다고 하나의 잣대로만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부지런함은 개미의 정체성입니다. 개미에게서 일거리를 빼앗는 것이 개미의 정체성을 빼앗는 것이듯, 개미의 부지런함을 악용하는 것은 개미의 생존 자체를 빼앗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의 본성은 살리되, 그 부지런함이 자신의 행복으로 귀결되는 방법을 모색하게 하는 것이 교과서가 할 일이 아니겠는지요.

마찬가지로 베짱이에게 노래 그만 부르고 일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베짱이의 정체성은 물론 생존 자체를 빼앗는 것이 되겠지요. 이것은 음악에 재능이 있는 아이에게 음악을 버리고 수학 문제를 풀라고 하면 음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니겠는지요. 베짱이에게 자신의 재능을 살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더 잘 발휘하게 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하는 것이 교과서가 할 일이 아니겠는지요.


시비(是非)와 선악(善惡)을 먼저 규정해 놓고 옳고 선한 것을 따라가라고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교과서는 낡은 교과서라는 것이 시인의 인식입니다. 개미에게는 개미의 본성에 맞는 일을 찾아 하게 하고, 베짱이에게 베짱이의 정체성에 맞는 일을 찾아 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행복을 보장하는 길이며 그것이 새천년에 맞는 새 교과서라는 것이 시인의 인식이 아니겠는지요.

[사진출처] Unsplash 무료이미지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