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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힘이 있다

말의 힘

by 인문학 이야기꾼

미국 어느 초등학교에서 IQ 테스트를 했습니다. 한 아이의 IQ가 173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담임교사는 평소 모든 행동이 어눌했던 이 아이의 IQ가 173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73이라고 발표해 버립니다. 이 아이도 자신을 바보로 여겼고, 급우들도 이 아이를 바보로 대합니다. 초등학교 담임교사의 말 한마디에 이 아이는 17년을 바보로 삽니다. 17년 후에야 자신의 IQ가 173임을 알고 천재로서의 삶을 살게 되죠. ‘호아킴 데 포사다’라는 미국 작가가 쓴 『바보 빅터』라는 책의 주인공 ‘빅터’의 이야기입니다. 교사의 말 한마디가 천재를 바보로 만든 것입니다. 17년 학생의 인생을 바보 인생으로 만든 것입니다. 말의 힘이란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위력적입니다.


2009년 한글날 특집으로 MBC에서 ‘말의 힘’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MBC에서 말에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합니다. 직경 10cm 높이 15cm 정도의 유리병 여러 개를 준비하여 각각 흰 쌀밥을 담았습니다. 유리병 표면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짜증나’, ‘꺼져’ 등을 써 붙이고 MBC 아나운서 여러 사람에게 좋은 말과 나쁜 말이 적힌 유리병 두 개씩을 줍니다. 아나운서들은 유리병을 각자 자기의 책상 위에 올려놓고 시간 날 때마다 ‘감사합니다’가 적힌 유리병을 들고 “감사합니다”라고 말을 하고, ‘짜증나’가 적힌 유리병을 들고 “짜증나”라고 말을 합니다. 좋은 말과 나쁜 말을 녹음한 카세트테이프도 제작하여 이를 유리병에 헤드폰을 끼워 하루종일 들려줍니다.

4주가 지났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좋은 말을 들은 쌀밥은 흰 곰팡이가 슬었고, 나쁜 말을 들은 쌀밥은 검은 곰팡이가 슬었습니다. 한두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험에 참가한 아나운서 대부분의 쌀밥이 그러했습니다. 헤드폰을 낀 유리병의 쌀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할 때의 인상은 온화하고, ‘짜증나’, ‘꺼져’라는 말을 할 때의 인상은 포악해서 곰팡이의 색깔이 달라졌는지는 모릅니다. 좋은 말을 할 때의 주파수와 나쁜 말을 할 때의 주파수가 달라서 그 주파수가 쌀밥에 영향을 미쳐서 그런지도 잘은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의 발음은 부드럽고, ‘짜증나’, ‘꺼져’라는 말의 발음은 거칠어서 곰팡이의 색깔이 달라졌는지도 잘은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좋은 말을 들은 쌀밥은 하얗게, 나쁜 말을 들은 쌀밥은 시커멓게 변했다는 사실입니다. 쌀밥도 이렇게 희고 시커멓게 변하는데 사람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MBC의 이 프로그램은 또다른 실험도 보여줍니다.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단어 카드를 연결하여 문법에 맞는 문장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내는가를 측정하는 실험입니다. 피실험자는 그렇게 알고 실험에 참가했습니다. 단어 카드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한 그룹의 단어 카드는 ‘열정적인, 도전적인, 스포츠, 승진, 신입사원’ 등 젊음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한 그룹의 단어 카드는 ‘은퇴, 황혼의, 쓸쓸한, 해질녘, 따분한’ 등 늙음과 관련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실험 목적은 들어올 때의 걸음 속도와 나갈 때의 걸음 속도를 비교하는 것입니다. 피실험자들이 실험의 목적을 안다면 걸음 속도를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문장 만들기가 실험 목적이라고 알려준 상태입니다.

늙음과 관련된 단어를 본 사람들은 들어올 때의 걸음 속도보다 나갈 때의 걸음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그러나 젊음과 관련된 단어를 본 사람들은 나갈 때의 걸음 속도가 빨라졌습니다. 어떤 단어에 노출되었느냐가 걸음의 속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늙음과 젊음이라는 단어를 본 것뿐인데 행동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언어가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는 이론의 논리적 근거의 하나가 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긍정적인 말과 생각은 긍정적인 행동과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부정적인 말과 생각은 부정적인 행동과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이 실험 외에도 여러 실험을 통해 이 프로그램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수험생이나 투병 중인 사람의 말과 생각에도 이런 힘이 작용합니다. ‘공부도 별로 하지 않았는데 이번 시험은 어려울 거야’고 생각한다면 이 말이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우리의 뇌를 지배하여 쉬운 문제도 어렵게 인식하여 문제를 풀 수가 없게 되는 겁니다. 투병 중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은 자신의 행동을 지배하게 되고 결국은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되고, 낫기가 어렵다는 생각은 행동과 결과에 영향을 미쳐 건강을 회복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 말의 힘이 아니겠는지요.


‘삼인성호(三人成虎)’란 말이 있습니다. 세 사람이 말하면 없는 호랑이도 만든다는 뜻으로, 사실이 아니더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진실인 것처럼 들린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이 말은 『한비자(韓非子)』의 ‘내저설(內儲說)’에 나오는 말입니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강대국끼리는 서로 침범하지 않겠다고 불가침 조약을 맺고 그 징표로서 왕자를 볼모로 보내는 관례가 있었습니다.

위(魏)나라 혜왕은 외교 관례상 태자를 조(趙)나라로 인질로 보냅니다. 방총(龐蔥)이란 사람이 태자의 수행원으로 선발되었습니다. 방총은 자신이 위나라를 떠나 있으면 분명 자신을 모함하는 자들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혜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한 사람이 달려와 ‘지금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임금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믿지 않소.”

“그럼 두 사람이 말하면 믿으시겠습니까?”

“믿지 않소.”

“그럼 세 사람이 달려와 ‘지금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말하면 임금께서는 믿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믿을 수밖에 업소.”

이 말을 들은 방총은 말합니다.

“지금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여러 사람이 한 목소리로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이야기하면 그것은 사실이 됩니다. 제가 조정을 비운 사이에 저에 대해 여러 사람이 비방을 할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잘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방총이 태자와 함께 조나라로 떠난 뒤 방총을 비방하는 자들이 나타났고 혜왕은 방총을 의심하게 됩니다. 결국 태자는 돌아왔으나 방총은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세 사람이 없는 호랑이를 만들기도 하고 없는 죄를 만들기도 하는 사례입니다.

이런 사태를 예상했는지 공자(孔子)는 ‘衆惡之必察焉(중오지필찰언) 衆好之必察焉(중호지필찰언)’이란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은 『논어(論語)』 ‘위령공편(衛靈公篇)’에 나오는 말로, ‘많은 사람이 싫어해도 그 말에 휘둘리지 말고 반드시 좋은 점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도 그 말에 휘둘리지 말고 반드시 나쁜 점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남의 말만 듣고서 호불호(好不好)를 판단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보고 판단하라는 것이죠. 없는 호랑이를 만들 정도로 말은 힘이 있기에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했지만,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성어가 만들어지고야 말았습니다.

이해인 시인은 좋은 말이 좋은 생각을 만들고 좋은 생각은 좋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정말 행복해서

마음에 맑은 샘이 흐르고

고맙다고 말하는 동안은

고마운 마음이 새로이 솟아올라

내 마음도 더욱 순해지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동안은

나도 잠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마음 한 자락이 환해지고

좋은 말이 나를 키우는 걸

나는 말하면서 다시 알지

-이해인, ‘나를 키우는 말’


그러니 우리는 늘 행복하다고 말해야 하며, 고맙다고 말해야 하고, 아름답다고 말해야 합니다. 좋은 말이 무의식 속에서 우리의 생각을 좋게 하고 좋은 생각은 무의식 속에서 좋은 행동을 하게 합니다. 좋은 행동들이 모여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키우게 된다는 것이 이해인 시인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사실보다 말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말은 쌀밥을 시커멓게 만들 수도 있고 하얗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바보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씨앗을 심으면 긍정적인 열매를 수확할 수 있음을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만들어졌습니다. 말의 씨앗을 함부로 심을 수 없음은 자명한 일이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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