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귀가 수레를 막아서는 것이 과연 무모한 행동인가?
춘추시대(春秋時代) 제(齊)나라 장공(莊公)이 수레를 타고 숲길을 가고 있었는데, 사마귀 한 마리가 발을 들고 수레를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저 벌레가 무엇이냐?’고 장공이 부하들에게 물었습니다. ‘사마귀라는 벌레인데,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설 줄 모르며, 제 힘은 생각하지 않고 무모하게 적에게 대항하는 놈입니다.’고 합니다. 그러자 장공은 ‘이 벌레가 사람이었다면 천하에 비길 데 없는 용맹한 사람이었을 것이다’고 하면서 사마귀를 피해 갑니다.
중국 전한(前漢)의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저술한 책으로 알려진 『회남자(淮南子)』에 나오는 이 고사성어는 ‘사마귀가 수레를 막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힘은 생각하지 않고 강자에게 함부로 덤벼드는 무모함’의 의미로 쓰입니다. 우리 속담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와 의미가 통합니다. ‘사마귀답게’, ‘하룻강아지답게’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때로는 사마귀라도 수레를 막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룻강아지이지만 범을 무서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은(殷)나라의 제후국인 고죽국(孤竹國)의 왕은 후계자로 막내아들 숙제(叔齊)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맏아들 백이(伯夷)는 아버지의 뜻을 알고 나라를 떠납니다. 맏아들 대신 왕위를 이을 수 없다고 판단한 막내 숙제 역시 집을 떠납니다. 고죽국은 둘째 아들이 왕위를 잇게 되죠. 집을 떠난 백이숙제(伯夷叔齊) 형제는 수양산에 은거하게 됩니다. 이 무렵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폭군인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킵니다. 백이숙제 형제는 ‘신하가 군주를 칠 수는 없다’며 이 군대를 막아섭니다. 형제의 뜻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 은나라는 망하고 주나라가 들어섭니다. 이 형제는 주나라 땅에서 난 곡식은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다가 굶어죽었습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열전(列傳)』에 나오는 이 이야기에서 백이숙제 형제는 충신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작은 나라의 왕자 노릇도 제대로 하지 못해 도망친 형제가 대국의 대업에 참견하는 것도 그렇지만, 혈혈단신(孑孑單身)보다 못한 두 사람이 대군(大軍)을 막아서는 것은 사마귀가 수레를 막아서는 것보다 훨씬 더 무모해 보입니다. 그런데도 백이숙제 형제는 충신으로, 사마귀는 무모하고 어리석은 존재로 의미가 규정되었습니다. 지배자의 가치관이 긍부정의 잣대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지배자의 입맛에 따라 ‘넘보지 말라’고 경고할 수도 있고, ‘조직을 위해 충성을 다하라’고 무모함을 독려할 수도 있습니다.
필요에 따라서 솔잎만 먹는 송충이가 칭송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우물 안에만 있는 개구리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외부의 가치관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에 의해 의해 판단할 때 백이숙제의 행위가 무모함으로, 사마귀의 행위가 용기로 의미화될 수도 있습니다.
공자(孔子)는 『논어(論語)-태백편(泰伯篇)』에서 ‘용이무례즉난(勇而無禮則亂)’이라고 했습니다. ‘용기만 있고 예의가 없으면 난폭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예(禮)라고 하는 것이 행동의 기준이된다고 볼 수 있는데, 예(禮)는 인간이 가져야 될 기본적인 도리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공자는 무모한 용기보다는 상황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용기를 강조했습니다.
공자가 제자인 안회(顔回)만 칭찬하자 샘이 난 자로(子路)가 스승인 공자에게 ‘삼군(三軍)을 통솔한다면 누구와 더불어 하겠냐?’고 묻습니다. 이에 공자는 ‘맨손으로 범을 잡으려 하고 맨발로 황하를 건너려는 사람과는 함께 하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포호빙하(暴虎馮河)-맨손으로 호랑이를 잡고 맨발로 황하를 건너다’는 말이 유래되었습니다. 공자가 제자 자로의 만용을 경계하기 위한 말입니다.
그러나 무모함으로 말하면 공자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했을 정도입니다. 공자 당시 사람들이 공자를 어떻게 인식했는지의 일화가 『논어(論語)-헌문편(憲問篇)』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여기에도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등장합니다. 자로가 석문(石門)이라는 곳에서 묵고 아침 일찍 성문을 통과하려고 하자 성문지기[신문(晨門)]가 ‘어디서 오느냐?’고 묻습니다. ‘공자의 집에서 온다’고 대답하자 그 성문지기는 ‘是知其不可而爲之者與?(시지기불가이위지자여)-안 되는 줄 알면서도 굳이 그것을 하려는 사람인가요?’라고 말합니다. 성문지기의 눈에는 공자도 사마귀와 마찬가지로 맨몸으로 수레를 막아설 수 있는 사람으로 보였나 봅니다.
류시화 시인이 엮은 잠언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책에 이런 시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가파른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가 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베드로시안, ‘그런 길은 없다’ 중에서
여기 높은 산이 있습니다. 산을 넘어가야 합니다. 산을 넘어가는 가파른 길이 위험하게 나 있습니다. 길이 있다는 것은 누군가 넘어갔다는 겁니다. 산에 터널을 뚫고 가려는 생각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에 의해 산이 뚫렸습니다. 날아서 산을 넘어가고자 한 사람도 있습니다. 무모한 듯한 생각과 행동들이 비행기까지 만들었습니다. 무모함이 용기가 되고 지혜가 되어 새로운 무엇을 만들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맨손으로 호랑이를 상대할 때도 있고, 맨발로 강을 건너야 할 때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의 기준으로, 모든 것을 교과서를 기준으로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가르치면 학생들은 교과서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당랑거철’의 사마귀에서도 진정한 용기를 찾을 수 있고, 불식주속(不食周粟)하다가 죽은 백이숙제의 행위에서도 무모함을 찾을 수 있는 안목이 교과서를 넘어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됨을 가르치는 것이 진정한 가르침이 아닌지를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