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문학 이야기꾼 Apr 08. 2024

거세개탁(擧世皆濁)

-내 생각만이 옳다고 할 수 있는가

  거세개탁(擧世皆濁)은 ‘온 세상이 다 흐리다’는 뜻으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다 바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 성어 역시 긴 스토리를 4자로 줄였기 때문에 스토리를 알아야 고사의 이면적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약간 각색한 고사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전국시대에는 전국 칠웅이라고 일컬어지는 일곱 나라가 강력한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국시대 말기가 되면서 서쪽의 진나라가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되어 나머지 여섯 나라를 호시탐탐 노리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섯 나라가 동맹하여 진나라와 맞서야 한다는 합종설과 여섯 나라는 각각 진나라와 화친을 맺어야 한다는 연횡설이 외교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던 때의 일입니다.

  강대국 진나라와 인접한 초나라도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어 진나라에 맞서야 하느냐 아니면 진나라와 화친을 해야 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굴원(屈原)’이라는 초나라 대부(大夫)는 초나라가 당당한 독립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와 연합하여 진나라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굴원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초나라 회왕은 진나라와 화친을 위해 진나라로 가지만 불귀의 객이 되고 맙니다. 굴원은 반대파의 견제와 모함으로 추방되고 맙니다. 이때 비통한 심정을 담아 지은 시가 ‘이소(離騷)’와 ‘어부사(漁父辭)’입니다. 어부사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굴원이 추방되어 생기 없는 몸으로 강가를 거닐고 있습니다. 어부가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되었냐’고 묻습니다. ‘세상이 온통 취해 있는데 자기만 깨어 있었기’에 추방당했다고 합니다. ‘세상이 취해 있으면 같이 취하면 되지 않느냐’고 어부가 말합니다. ‘차라리 강에 몸을 던져 물고기 밥이 될지언정 깨끗한 몸으로 세속의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없다’고 답합니다. 그랬더니 어부는 ‘창랑의 물이 맑으면 그 물로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그 물로 발을 씻으면 된다’고 하면서 가벼렸다는 내용입니다. 

  어부의 ‘창랑의 물이 맑다’는 것은 자신의 뜻과 다른 사람의 뜻이 맞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럴 때는 기꺼이 ‘갓끈을 씻을 수 있다’는 것이니 이는 벼슬길에 나아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창랑의 물이 흐리다’는 것은 자신의 뜻과 다른 사람의 뜻이 맞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럴 때 ‘발을 씻는다’는 것은 벼슬에서 물러나 강호한정하면서 살면 된다는 뜻입니다. 어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굴원의 자문자답이죠. 그러고 보면 다른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지 물러나 강호한정하며 살아야 할지에 대한 굴원의 고뇌가 ‘어부사’에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성어의 의미를 약간 비틀어 보겠습니다. 굴원은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취해 있는데 자기만 깨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대개 취한 사람은 자신은 취하지 않았고 상대가 취했다고 말합니다. 자기 중심적인 사고이죠. 자기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인식은 취한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술에 취했건 생각에 취했건 취한 사람들은 상대편을 생각하지 못하는 편협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굴원의 생각만이 옳은지 굴원의 생각을 들여다 보겠습니다.

  굴원은 초나라가 당당한 자주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당당한 자주 국가라는 명분을 근거로 전쟁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국가란 무엇인지요?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줄 때 국가의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보호받아야 할 신성한 존재라면 국가란 국민에게 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필요한데 굴원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국가만 생각했습니다.

  백성은 평안하게,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진나라 백성이든 초나라 백성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국가를 기반으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자들은 국가가 무너지면 자신의 기득권도 무너지니 국가가 꼭 필요한 것이죠. 이렇게 본다면 전쟁이란 지도자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백성을 사지로 내모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굴원은 세상이 자신의 신념대로 흘러가지 않자 그 울분을 이기지 못하고 멱라수에 몸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자기의 뜻대로 굴러간다고 반드시 좋다고 할 수 있겠는지요? 자기의 뜻이 다 옳은 것일 수는 없습니다. 자기와 반대의 뜻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햇볕이 나기를 소망하는 사람도 있고 비가 오기를 소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해만 나면 결국은 모든 땅이 사막이 되고, 비만 와도 모든 땅이 노아의 홍수가 됩니다. 해와 비가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세상은 아름다운 꽃을 피웁니다. 내 뜻만을 고집하지 않는 생각의 유연함이야말로 흐리고 맑음을 초월할 수 있는 길임을 이 성어를 통해 생각해 봅니다. 

이전 03화 당랑거철(螳螂拒轍)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