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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Aug 21. 2023

영천세이(潁川洗耳)

더 행복한 삶을 위하여

  ‘영천세이(潁川洗耳)’는 ‘영천이라는 곳에서 귀를 씻다’는 의미로, ‘벼슬하지 않고 세속과 떨어져 자연 속에 은거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허유’라는 사람이 영천이라는 냇물에서 귀를 씻었다고 해서 ‘허유세이(許由洗耳)’라고도 합니다. 이 역시 유래를 알아야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영천세이는 위진남북조시대 남조 송의 유의경(劉義慶)이라는 사람이 편찬한 『세설신어(世說新語)』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땅을 두드리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격양가(擊壤歌)’가 유행할 정도의 태평성대를 이룬 요임금은 왕위를 물려줄 후계자를 물색합니다. ‘허유(許由)’라는 사람이 후계자로 추천되었습니다. ‘허유’는 품행이나 지혜가 탁월한 현인(賢人)으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요임금은 허유를 찾아가 왕위를 맡아줄 것을 간청합니다. 허유는 거절합니다. 거절한 정도가 아니라 세속의 속된 말을 들었다며 영천이라는 계곡물에 귀를 씻었습니다. 여기에서 영천에서 귀를 씻다는 ‘영천세이’, 허유가 귀를 씻다는 ‘허유세이’라는 고사성어가 만들어집니다. 

  소를 몰고 오던 허유의 친구 소부(巢父)는 속세의 속된 이야기를 들은 귀를 씻은 물은 소에게도 먹일 수 없다고 하면서 상류에 가서 소에게 물을 먹였다고 합니다. 소부가 소를 옮겼다고 해서 ‘소부천우(巢父遷牛)’라는 고사성어가 만들어졌습니다. 허유와 소부는 자연 속에서 은거하는 삶을 최상의 가치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요임금은 그런 허유의 가치관을 인정하고 더 이상 후계자가 될 것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요임금의 매력이 있는 것입니다. 요임금은 순(舜)을 찾아 왕위를 물려줍니다. 요순(堯舜)의 태평성대는 이렇게 완성됩니다.   

   

  요임금은 허유와 같은 현인이 왕위를 이어간다면 자신이 이룩한 태평성태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간청하면 당연히 허유가 왕위를 수락할 것으로 생각했겠죠. 자기중심적이고 일방적인 생각입니다. 요임금은 사람의 생각이 다 다르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학급에서 반장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반장을 하기 싫은 사람이 있듯이, 왕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왕을 하기 싫은 사람도 있는 법입니다. 왕을 하면서 권력을 자신을 위해 쓰고 싶은 사람도 있고, 그 권력을 백성을 위해 쓰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왕을 하기보다는 자연 속에서 자연을 벗삼아 살고 싶은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의 인생관은 다 다른 법이죠. 요임금은 처음에는 이를 간과했으나 나중에는 알고 그 가치를 존중하게 됩니다.   

  

  퇴계 이황은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이라는 12수로 된 연시조를 남겼습니다. 그 10번째 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에 가던 길을 몇 해를 버려두고

    어디 가 다니다가 이제야 돌아왔는고

    이제나 돌아왔으니 딴 데 마음 말리라    

 

  퇴계 선생은 학문이 취미였나 봅니다. 학문 수양에 전념하고 있는데 임금이 벼슬하라고 부릅니다. 억지로 몇 년 동안 벼슬길로 나갑니다. 그러다가 다시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의 길로 왔습니다. 이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합니다. 반대파를 모함하여서라도 벼슬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벼슬보다 공부가 좋은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졌으리라고 판단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준엄하게 꾸짖는 시를 안도현 시인으로부터 만날 수 있습니다.     


    다른 곳은 다 놔두고

    굳이 수숫대 끝에

    그 아슬아슬한 곳에 내려앉는 이유가 뭐냐?

    내가 이렇게 따지듯이 물으면     


    잠자리가 나에게 되묻는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안도현, ‘나와 잠자리의 갈등1’    

 

  인간의 시각으로 보면 장대 끝에 앉은 잠자리가 너무나 위태롭게 보입니다. 잠자리에게 ‘평평하고 안전한 땅’으로 내려와 앉으라고 합니다. 아슬아슬한 장대 끝이 평평한 땅에 비해 더 위험하다는 것은 인간의 인식입니다. 잠자리의 시각으로 보면 땅이야말로 위험천만한 곳입니다. 한 뼘의 땅이라도 다 주인이 있고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이 난무하는 공간이 바로 땅이라는 것이 잠자리의 인식입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 ‘春雨如膏 行人惡其泥濘(춘우여고 행인오기니녕) 秋月揚輝 盜者憎其照鑑(추월양휘 도자증기조감)’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만물을 소생케 하는 봄비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짚신을 신은 행인들은 질퍽거리는 길을 싫어하기 때문이죠. 휘영청 밝은 가을 달도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도둑은 그 밝음을 싫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입니다. 나의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는 순간 잠자리를 안전한 장대 끝에서 억지로 끌어내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벼슬보다 자연이 좋은 허유와 소부를 진흙탕 벼슬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장대 끝이 좋은 사람은 장대 끝에서, 우물 안이 좋은 사람은 우물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니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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