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이상의 줄다리기
천석고황(泉石膏肓)의 ‘천석(泉石)’은 샘과 돌인데 자연을 의미합니다. 자연의 일부를 가지고 자연 전체를 뜻하는 대유적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고황(膏肓)’은 고치기 어려운 고질병을 뜻합니다. 천석고황은 자연을 너무나 사랑하여 마치 불치의 고질병과 같다는 뜻으로, 벼슬길에 나서지 않음을 이르는 말로 쓰입니다. 이 성어는 중국 당(唐)나라 때의 전유암(田游巖)이라는 은사(隱士)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전유암은 당나라 때 은사(隱士)로 명망이 높았습니다. 조정에서 여러 번 불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임금이 직접 전유암이 있는 곳에 와서 “선생께서는 편안하신가요?”라고 안부를 물었습니다. 이에 전유암은 “샘과 돌이 고황에 걸린 것처럼, 자연을 즐기는 것이 고질병처럼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에서 천석고황(泉石膏肓)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천석고황은 우리나라 옛 시가에서 연하고질(煙霞痼疾), 임천한흥(林泉閑興), 풍월주인(風月主人), 강호한정(江湖閑情)’ 등으로 표현됩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강호한정을 도(道)라 여기며 벼슬에서 물러나 있으면 시를 통해 강호한정을 노래했습니다. 진짜 자연이 좋아서 자연속으로 들어갔는지 권력 다툼에서 밀려나 어쩔 수 없이 자연속으로 들어갔는지에 관계 없이 많은 사대부 문인들이 현실 정치를 떠나 있으면 강호한정을 노래했습니다. 속으로는 정계 복귀를 노리면서도 겉으로는 강호한정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포장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자연속에서 한가롭게 지낸다는 강호한정이 진짜인지 포장인지의 구별이 쉽지 않습니다. 진짜 좋아서 강호한정하는 사람도 있고, 싫지만 어쩔 수 없이 강호한정으로 포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포장이 너무나 그럴듯해 구별이 쉽지 않습니다.
중국 전설상의 임금인 요(堯)임금 때 허유(許由)라는 은사가 기산(箕山)이라는 곳에 은거하고 있었습니다. 허유는 공부도 많이 되고 사람이 반듯하다고 소문이 나서 요임금이 허유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습니다. 이에 허유는 속세의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영천(潁川)이라는 냇물에 귀를 씻었다고 합니다. 허유의 친구인 소부(巢父)가 소를 몰고 오다가 소가 냇물을 먹으려고 하자 속세의 더러운 말을 들은 귀를 씻은 물은 소에게도 먹일 수 없다고 하면서 상류로 올라가 소에게 물을 먹였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영천세이(潁川洗耳)-영천에서 귀를 씻다’라는 고사와 ‘소부천우(巢父遷牛)-소부가 소를 옮기다’라는 고사가 유래되었습니다.
그런데 소부는 허유를 나무랍니다. 이왕 은거하려면 아무도 모르는 깊은 곳에서 은거할 것이지 누구나 아는 곳에 은거한다는 것은 은거한다는 명성을 드러내기 위한 일종의 계획이라고 나무란 겁니다. 소부의 논리는 나름 일리가 있지만, 임금이라는 자리마저 거절한 허유의 마음의 진정성마저 의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장자(莊子)는 은거하고 있다는 마음마저 없을 때 진정 은거한 것이 된다고 했으니 다른 사람의 진정성이라는 것은 참으로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은사(隱士)의 대명사인 허유의 마음도 진짜인지 포장이니 구별이 쉽지 않은데 다른 사람의 마음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천석고황(泉石膏肓)의 의미를 약간 뒤집어 보겠습니다. 병(病)이라는 것은 특히 마음의 병은 욕망의 좌절로부터 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자연에서 살고 싶은데 자연에 살고 있다면 그것은 병이 아니고 마음의 평안이고 여유입니다. 우아한 삶이 되는 것이죠. 자연에 살고 싶은데 현실적 여건 때문에 그것이 잘 안될 때 마음의 병이 옵니다. 한편 현실 정치에서 활약을 하고 싶은데 여러 이유들로 인해 현실 정치의 길이 막혀 어쩔 수 없이 자연에 있으면 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 때문에 생긴 병이 아니라 현실 정치로 나아가지 못하는 울분 때문에 생긴 병이겠지요. 아니면 이렇게 고매한 선비가 자연에 묻혀 살고 있는데 속세의 사람들이 몰라주기 때문에 화가 나서 생긴 병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본다면 천석고황은 자연을 사랑해서 생긴 병이 아니라 현실 정치로 나아가지 못하고 하릴없이 자연속에 있기에 생긴 병일 수 있습니다. 송강 정철은 자연에 있으면서 현실 정치로 나아가지 못해 병이 생긴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 중기 송강 정철(1536~1593)의 <관동별곡(關東別曲)> 첫 부분을 보겠습니다.
강호(江湖)에 병이 깊어 죽림(竹林)에 누었더니
관동(關東) 팔백리에 방면(方面)을 맛기시니
어와 성은(聖恩)이야 갈수록 망극하다
연추문(延秋門) 달려들어가 경회 남문 바라보며
하직(下直)하고 물러나니 옥절(玉節)이 앞에 섰다.
-정철, '관동별곡' 중에서
‘강호(江湖)’나 ‘죽림(竹林)’이나 자연의 일부로 자연 전체를 나타냅니다. 자연을 너무 사랑하여 병이 날 지경이라 자연에 은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속마음이라면 아무리 현실 정치로 불러낸다고 해도 나아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송강은 강원도 팔백리에 관찰사 임무를 부여받고는 얼씨구나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며 한달음에 달려갑니다. 자연이 좋아서 은거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현실 정치에서 밀려나 잠시 자연에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밀려난 자신의 처지를 강호한정으로 포장을 한 것이지요. 송강의 병은 관찰사 발령을 받은 즉시 나았습니다. 송강에게 강호한정은 현실 정치에 발을 디디고 있으면서 자연을 즐기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강호한정의 현대적 의미는 놀고먹기입니다. 그런데 놀고먹기가 마음 편하겠는지요. 아무리 풍류를 앞세운다고 한들 남의 눈치가 보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은 해야 되겠는데 마음에 맞는 일자리는 없고 마음에 드는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는 놀고먹을 수밖에 없는데 남의 눈치가 보이니 놀고먹는 것이 풍류라고 포장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현실이 가슴 아프지만, 포장이라도 그럴듯하게 하는 것이 궁상을 떠는 것보다 낫다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이 강호한정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일하고 싶은데 여러 여건 때문에 일하지 못해 강호한정하는 사람의 시선은 좋은 일자리로 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몸은 강호한정의 공간에 있지만 마음은 현실 정치의 공간에 가 있는 것, 자연이라는 현실과 정치라는 이상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강호한정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림 출처 : 박수인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