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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Jun 12. 2023

마부작침(磨斧作針)

꽃들은 남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시선(詩仙)이라 불렸던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어렸을 때 일입니다. 이백은 훌륭한 스승을 찾아 산에 들어가 공부하다가 싫증이 나자 그만 산을 내려오고 맙니다. 한참 내려와 냇가에 이르렀는데 거기서 한 노파(老婆)가 바위에 도끼를 갈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호기심이 많았던 이백이 노파에게 무엇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중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큰 도끼가 바늘이 되겠느냐고 이백이 다시 묻습니다.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도끼가 바늘이 될 수 있다고 노파가 대답합니다. 이에 이백은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이라고 되뇌면서 다시 산으로 올라가 끈기 있게 공부하여 시(詩)의 신선이라고 할 수 있는 시선(詩仙)의 경지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당나라 역사를 기록한 『唐書(당서)』에 전해지는 ‘마부작침(磨斧作針)’의 유래입니다. 이 유래에 근거하여 마부작침은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끊임없이 노력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라고 국어사전에서 풀이하고 있으며, 한자 자전에서도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 있게 노력(努力)하면 이룰 수 있음을 비유(比喩)하는 말’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백(李白)이 보았다는 노파의 이야기는 사실일까요? 바늘보다 비싸고 귀한 도끼를 가지고 수천수만 개의 바늘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단 한 개의 바늘을 만든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도끼의 강도와 바위의 강도를 모르는 노파라 하더라도 생업을 전폐하고 여생(餘生)을 도끼 갈기에 투자한다고 해도 도끼가 바늘이 될 수 없음은 노파도 알고 있을 겁니다. 노파 가족의 반대를 노파가 감당하기도 쉽지 않았을 겁니다. 

  노파 이야기는 사실의 기록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백의 이야기에 노파 이야기가 들어갔을까요? 이백을 시의 신선의 반열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신화적 세계관이 필요했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세계에서 신선의 세계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신화적 스토리가 필요했고,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한 중국인들이 이런 신화적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마부작침은 ‘끈기와 노력’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목표 설정이 잘못되면 끈기와 노력은 삶을 더 늪 속으로 몰아갈 우려가 큽니다. 나무를 찍어 쓰러뜨리거나 장작을 패는 것이 도끼의 역할이자 도끼의 본성입니다. 바늘의 본성은 해진 옷을 꿰매는 것입니다. 자신의 역할에 맞게 만들어진 도끼를 굳이 바늘로 만들 필요가 있겠는지요. 바늘이 필요하면 바늘을 만들기에 적합한 재료로 만들거나 만들어진 바늘을 사서 사용하면 됩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들 것이 아니라 도끼의 본성을 더 잘 살릴 수 있도록 담금질하고 숫돌에 가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본성을 더 잘 살리기 위한 노력과 끈기라면 그 비유적 깨달음은 누구나 수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끈기와 노력의 결과가 도끼보다 못한 바늘이라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기도 합니다.   

   

  『장자(莊子)』 〈변무(騈拇)〉편에 ‘鳧脛雖短 續之則憂, 鶴脛雖長 斷之則悲(부경수단 속지즉우, 학경지장 단지즉비)’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리의 다리는 비록 짧지만 이어주면 근심을 하고, 학의 다리는 비록 길지만 잘라주면 슬퍼한다’는 말입니다. 오리의 다리가 짧은 것은 그것이 오리의 본성이고 그것이 오리의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는데 굳이 오리의 다리를 길게 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장자의 관점입니다. 본성을 알고 본성이 더 잘 발현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장자는 보았습니다.

     

  ‘수적천석(水滴穿石)’이란 말이 있습니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돌멩이를 뚫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물방울이 돌멩이를 뚫겠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면 비 오기를 기다려야 하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면서까지 돌멩이가 있는 그 자리에 힘껏 떨어져야 합니다. 목표 설정에 얼마나 도달하였는가를 매일 점검하면서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를 소진할 수도 있습니다. 물방울은 자연스럽게 떨어지는 그 힘으로 돌멩이를 뚫는 것이지 노력의 결과는 아닌 것이지요. 정호승 시인의 시는 이런 관점에서 큰 울림을 줍니다.          


        꽃들은 남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정호승     


    제비꽃은 진달래를 부러워하지 않고

    진달래는 결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다투거나 시기하지 않고

    열심히 살다 사라질 뿐입니다.     


    제비꽃은 제비꽃답게 피면 되고

    진달래는 진달래답게 피면 됩니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듯이

    세상에 쓸모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제비꽃이 진달래가 되기 위해 마부작침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제비는 독수리가 되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제비꽃은 제비꽃으로서의 피고 지기를 반복할 뿐 누구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제비도 자신이 본성에 맞게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새끼를 치고 때가 되면 강남으로 갔다가 때가 되면 돌아올 뿐, 독수리를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자리에서 자신의 본성대로 살아가는 것이, 본성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을 지키는 길임을 제비꽃도 알고 제비도 압니다. 마부작침의 결과로 만들어진 바늘이 옷을 꿰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찔러 아프게 하는 것임을 혹시 사람들만 모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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