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문학 이야기꾼 May 15. 2023

수주대토(守株待兎)

농부가 토끼를 기다린 이유

  수주대토(守株待兎)는 ‘그루터기를 지키고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한비자(韓非子) 오두편(五蠹篇)』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송(宋)나라 사람 중에서 밭을 가는 사람이 있었다. 밭 가운데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토끼가 달려오다가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었다. 농부는 쟁기를 내려놓고 그루터기를 지키며 다시 토끼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토끼는 다시 얻을 수 없었고 자신은 송나라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한비자(韓非子)’가 자신의 사상을 주장하기 위해 에피소드를 창작했거나 기존의 이야기를 인용한 것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한비자가 살았던 시대는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입니다. 이 시대는 개인간, 국가간 치열한 생존 경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던 때입니다. 전쟁의 승패가 개인의 생사는 물론 국가의 존망을 좌우하던 때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에는 강력한 법 집행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던 법가(法家) 사상가가 바로 한비자입니다. 한비자는 이러한 시대에 인의(仁義)에 의한 도덕 정치를 내세운 유가(儒家) 사상은 마치 그루터기를 지키고 앉아 토끼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주장합니다. 

  한비자의 이런 사상에 진(秦) 시황제는 감동을 하게 되고, 한비자를 존경하게까지 됩니다. 한비자의 등장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상실하게 될 것을 우려한 진(秦)나라 승상(丞相) 이사(李斯)는 교활한 올가미를 씌워 동문수학한 한비자를 죽입니다. 수주대토를 어리석다고 평가한 한비자는 정작 토끼만도 못한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합니다. 


  국어사전에 수주대토는 ‘한 가지 일에만 얽매여 발전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을 비유한 말’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수주대토는 일반적으로 ‘노력하지 않고 요행을 바라는 어리석음’,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음’,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옛것을 고집함’ 등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한비자는 토끼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한비자는 토끼를 잡기 위해서 그루터기를 지키고 앉아 토끼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커다란 그물을 만들어서, 그물로 온 산을 포위해 토끼를 일망타진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한비자의 생각으로 보면 그루터기를 지키고 앉아 토끼를 기다리는 농부가 어리석고 한심하게 보인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토끼를 잡아야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토끼를 잡아야만 우리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넓은 풀밭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다니는 토끼의 모습을 보는 것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더 보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수주대토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규정한다면 수많은 강태공들, 수많은 강호처사들을 무엇이라고 불어야 하겠는지요. 수주대토의 요행을 바라고 국가 기관에서 발행한 로또 복권을 구매한 사람들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겠는지요. 더 많이 가지는 것보다 더 잘 사는 것이 행복의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 행복론자들의 생각을 어떻게 평가해야 되겠는지요. 꼭 필요한 만큼씩만 나누어 가지고 나머지는 자연 그대로 둘 수 있는 마음이 현대인의 진정한 참살이라는 웰빙(Well-being)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겠는지요. 

  어쩌면 송나라 농부가 토끼를 기다린 것은 토끼가 그루터기에 부딪히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그루터기를 지키고 있지나 않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루터기를 지키고 앉아 토끼가 그루터기에 부딪혀 죽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토끼가 부딪히지 않도록 그루터기 자체를 제거하는 일이 더 필요한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봅니다. 그물을 만들어 토끼를 일망타진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풀밭을 뛰어다니는 토끼를 보면서 토끼와 공존의 삶을 생각하는 것이 행복임을 생각할 때, 수주대토는 현대인의 참살이를 의미한다고 국어사전에 그 의미를 추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나태주 시인의 ‘행복’이라는 시는 수주대토(守株待兎)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행복 

                    - 나태주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한 끼의 식사를 위해 토끼를 잡는 것이 행복한 일인지, 귀엽고 발랄한 토끼 한 마리를 마음속에 두고 키우는 것이 행복한 일인지는 자명해 보입니다. 힘들고 외로울 때 마음속의 토끼를 꺼내 볼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 나태주 시인은 말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수주대토는 어리석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토끼를 지키는 일이고 행복의 문을 두드리는 일임을 생각해 봅니다.

이전 13화 천석고황(泉石膏肓)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