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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Apr 22. 2024

여도지죄(餘桃之罪)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방법

  여도지죄(餘桃之罪)는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라는 뜻으로, 칭찬을 받던 일도 애증이 바뀌면 죄를 초래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세상인심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으니 상황을 잘 헤아려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성어의 이면적 의미가 됩니다. 이 성어가 유래된 『한비자(韓非子)』의 ‘세난편(說難篇)’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전국시대 위(衛)나라에 왕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미자하는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급한 마음에 허락도 받지 않고 왕의 수레를 타고 집으로 갔습니다. 당시 허락 없이 왕의 수레를 탄 자는 발뒤꿈치가 잘리는 월형(刖刑)이라는 형벌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왕은 미자하에 대해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효심이 깊다고 칭찬했습니다. 또 한번은 미자하가 과수원에서 복숭아를 하나 먹었는데 맛이 너무 좋아 먹던 복숭아를 왕에게 바쳤습니다. 이에 왕은 자신이 먹던 것도 잊고 왕에게 준다며 충심을 칭찬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미자하에 대한 왕의 총애가 식고, 미자하가 사소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왕은 “이놈은 허락도 받지 않고 과인의 수레를 탔으며, 먹다 남은 복숭아를 과인에게 먹였다.”라고 하면서 벌을 주었습니다.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라는 뜻의 ‘여도지죄(餘桃之罪)’라는 고사가 여기서 유래되었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같은 데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칭찬이 죄로 바뀔 수 있습니다. 상황은 같은데 주체의 마음이 변하여 대상에 대한 태도가 바뀔 수도 있습니다. 물론 대상의 변화에 따라 주체의 태도가 변할 수도 있습니다. 변화가 반드시 나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미자하에 대한 왕의 태도가 변했다고 해서 왕의 변심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도 변하는 것이니까요. 변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우리가 수용하기 어려우니까 변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조선 초 김시습은 사람의 마음이나 세상인심이 변하는 것은 날씨가 변하듯이 자연스러운 일로 보았습니다. 김시습의 ‘사청사우(乍晴乍雨)’라는 한시가 있습니다. ‘잠깐 사이에 맑았다가 잠깐 사이에 비가 온다’는 뜻을 지닌 제목입니다. 

     

    언뜻 개었다가 다시 비가 오고 비 오다가 다시 개니, 

    하늘의 도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세상 인정이랴. 

    나를 기리다가 문득 돌이켜 나를 헐뜯고, 

    공명을 피하더니 도리어 스스로 공명을 구함이라. 

    꽃이 피고 지는 것을, 봄이 어찌 다스릴고. 

    구름 가고 구름 오되, 산은 다투지 않음이라.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기억해 알아 두라. 

    기쁨을 취하려 한들, 어디에서 평생 즐거움을 얻을 것인가를. 

                    -김시습, ‘사청사우(乍晴乍雨)’    

 

  세상 인심의 변덕스러움을 날씨에 빗대어 읊었습니다. 자신을 칭찬하던 사람들이 자신을 헐뜯지만 그러나 화를 내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마치 맑았다가 흐린 날씨와 같기 때문입니다. 꽃이 피고 지듯, 구름이 가고 오듯 대상은 늘 변할 수 있음을 알아차릴 때 마음의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뜻입니다. 비가 올 때 맑은 날도 생각해야 하고, 맑을 때 비오는 날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이가 좋아 칭찬받을 때도 나중에 사이가 나쁠 때를 대비해야 하고, 사이가 나빠 욕을 하고 싶어도 나중에 사이가 좋아질 때를 생각해서 참아야 하는 것이 세상사 이치입니다. 

     

  여름이 되면 날씨가 더워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당연함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일 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옵니다. 봄에는 날씨가 따뜻하고 좋았는데 여름에는 왜 덥냐고 짜증을 내는 것은 미자하에 대한 왕의 변심에 짜증을 내는 것과 같습니다. 대상을 객관적으로 수용하는 자세야말로 여도지죄의 세태에 마음의 안녕을 지키는 일임을 생각해 봅니다. [사진 출처 : 박수인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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