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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Apr 01. 2024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

-수신제가 이후에 치국이라 했는데……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은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말로, 한 번 저질러진 일은 되돌릴 수 없기에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그런데 이 말의 유래를 살펴보면 그 의미가 간단하지만은 않습니다. 이 말은 『사기(史記)』의 〈제태공세가(齊太公世家)〉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약간의 각색을 하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은나라(상나라) 마지막 임금인 주왕(紂王)은 하(夏)나라 마지막 임금인 걸왕(桀王)과 함께 폭군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강태공(강상)은 폭군이 다스리는 상나라의 운세가 다했다는 것을 내다볼 수 있을 정도로 공부가 많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새 나라 건국의 때를 기다립니다. 곧은 낚시 바늘을 강물에 드리우고 세월을 낚고 있습니다. 결국 때를 만나 주나라 문왕과 무왕을 도와 은(상)나라를 멸하고 주(周)나라를 세우는 데 일등공신으로 제후국 제(齊)나라 첫 번째 왕이 되어 금의환향(錦衣還鄕)하게 됩니다. 강태공의 나이 80세의 일입니다.   

  강태공이 젊은 시절 공부만 할 때, 생계는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아내는 수십 년 동안 공부만 하는 남편 뒷바라지를 합니다. 하루는 아내가 들일을 나가면서 남편에게 ‘오늘 비가 올 것 같으니 비가 오면 마당에 널어둔 곡식을 안으로 들여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합니다. 그날 비가 많이 왔습니다. 아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마당에 널어둔 곡식이 죄다 떠내려가고 없습니다. 화가 난 아내가 남편에게 ‘곡식을 왜 안으로 들여놓지 않았냐’고 묻습니다. ‘공부에 집중하느라 비가 오는 것을 몰랐다’고 대답합니다. 수십 년 쌓이고 쌓인 불만과 울분이 결국 이혼으로 이어집니다. 강태공을 일컬어 ‘궁팔십 달팔십(窮八十 達八十)’의 사나이라고 합니다. 가난하게 80세를 살고, 80세부터 부유하고 화려하게 살았다는 뜻입니다. 조강지처와의 이혼까지가 ‘궁팔십’의 삶이었습니다.    

  제나라 초대 왕이 된 후부터 강태공의 ‘달팔십’의 삶이 펼쳐집니다. 화려하게 복귀하는 강태공의 행렬을 초라한 행색의 할머니가 봅니다. 자기 남편입니다. 공부만 하던 남편이 왕이 되었습니다. 초라한 행색의 할머니는 지난날의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재결합하자고 합니다. 왕이 된 강태공은 물 한 바가지 떠오라고 합니다. 바닥에 쏟아붓습니다. 다시 담아 보라고 합니다. 담을 수가 없습니다. 강태공이 꼬부랑 할머니에게 말합니다. ‘그렇소.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소. 한번 떠난 사람과는 다시 합칠 수 없소’라고 말이죠.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뜻의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라는 말은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강태공은 지략가로, 제나라 시조로 수천 년 세월을 지나 지금까지 추앙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강태공의 행위는 옳은 행위일까요? 아내의 행위는 그른 행위일까요? 자기를 위해 수십 년 헌신한 조강지처(糟糠之妻)를 왕이 된 후 억지로라도 찾아 그 고마움을 표시해야 마땅하거늘, 찾아온 아내에게 ‘엎질러진 물’ 운운하며 내치는 행위는 왕이 아니라 범부(凡夫)로서도 차마 하지 못할 행위입니다.      

  어쩌면 강태공은 아내가 자기를 버리고 떠나가는 순간부터 복수불반분을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내가 떠나가지 않아도 출세하고 나면 아내를 버릴 생각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비록 이혼은 했지만 수십 년 동안 자신의 뒷바라지를 하던 아내를 만났다면 얼싸안고 기쁨의 표현은 하지 못할지라도 그간의 고마움은 표현해야 하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가 아니겠는지요. 수신(修身)도 되지 않고 제가(齊家)도 되지 않았던 강태공이 지금까지 추앙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보아 치국(治國)은 잘했나 봅니다.  

    

  물은 아내가 엎질렀지만, 물을 엎지르게 한 것은 강태공입니다. 지난날 가난했지만 자신이 공부하고 결국 출세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제가(齊家) 덕분이었습니다. 그런 아내의 제가(齊家)는 폄훼되고 그런 아내를 내치고 치국(治國)에 성공한 강태공이 추앙되는 현실이 왠지 마뜩지 않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복수불반분은 제가(齊家)를 치국(治國)보다 하찮게 여기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고사성어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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