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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Dec 26. 2023

해불양수(海不讓水)

-그러나 강은 바다를 포용하지 못한다

  2023년 신년을 맞이하는 변호사들은 신년 사자성어로 ‘해불양수(海不讓水)’를 선정했습니다. 바다는 어떠한 물도 사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포용력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 네 글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사의 유래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사기(史記)』 <이사열전(李斯列傳)>의 한 부분을 살짝 들여다보겠습니다. 이사(李斯)라는 사람은 원래 초(楚)나라 사람으로 하급 관리였으나 뜻을 품고 공부를 마친 후 뜻을 펼치기 위해 진(秦)나라로 갔습니다. 이때 진나라는 진시황의 친부(親父)인 여불위(呂不韋)가 실권을 잡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사는 여불위의 참모가 되어 능력을 인정받고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진나라 왕족과 대신들은 ‘타국 출신 객인들의 간첩 활동이 문제가 되니 객인들을 나라 밖으로 쫓아내라’고 진왕에게 간합니다. 진왕은 옳게 여겨 객인들을 나라 밖으로 내쫓는 이른바 ‘축객령(逐客令)’을 공포합니다. 

  이에 이사는 진왕에게 축객령을 거두어 달라는 내용을 담아 글을 올립니다. 이른바 ‘간축객서(諫逐客書)’입니다. 간축객서에 “太山不讓土壤 故能成其大(태산불양토양 고능성기대) 河海不擇細流 故能就其深(하해불택세류 고능취기심)-큰 산은 흙덩이를 사양하지 않아 거대함을 이루었고, 하해는 가는 물줄기를 가리지 않아 깊음을 이루었다.”라고 썼습니다. 이 구절 때문인지 진왕은 축객령을 취소합니다. 나중에 이사는 승상(丞相)의 지위에까지 오릅니다.   

  

  간축객서의 ‘태산불양토양~, 하해불택세류~’를 4글자로 줄인 말이 ‘해불양수(海不讓水)’입니다. 군주가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인재를 품는 포용력을 보여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성어가 나온 배경을 보면 ‘이사’가 쫓겨날 상황에서 자기 방어나 자기 합리화의 변명 과정에서 이 말이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두(五蠹)>, <고분(孤憤)> 등 한비자(韓非子)가 지은 책을 진왕이 읽고 진왕은 한비자를 흠모하기까지 합니다. 진왕은 한비자를 꼭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 끝에 ‘이사’와 동문수학한 ‘한비자’가 진왕을 만납니다. 글쓰기 재주보다 말하기 재주가 떨어지는 한비자에게 진왕은 기대만큼의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사는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난 한비자가 진나라에 있는 한 언젠가 자기의 출세에 걸림돌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친구인 한비자를 죽게 만듭니다. 마치 귀곡자 밑에서 동문수학한 손빈(孫矉)의 능력을 두려워하여 간첩 혐의를 씌워 빈(臏)이라는 형벌을 내린 방연(龐涓)의 행위와도 같습니다. 이사의 행위나 방연의 행위는 해불양수의 반대 지점에 있는 이야기이니 해불양수는 말은 좋지만 실천의 측면에서 보면 탁상공론의 성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태산은 자기보다 큰 흙덩이를 수용할 수 없고, 강물은 자기보다 큰 물줄기를 수용할 수 없습니다. 포용력이라는 것은 자신보다 작은 대상을 수용할 뿐이지 자기보다 큰 대상을 수용할 수 없습니다. B급 리더가 A급 인재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이치입니다. 현대 정치에서 자기보다 큰 정치인을 제거하기 위해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것을 보더라도 해불양수는 리더가 진정한 A급 리더일 때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가는 물줄기가 큰 물줄기를 수용하지 못하고, 얕은 산이 큰 산을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로 보입니다. 작은 그릇으로 큰 물을 담을 수 없는 것이 정한 이치이니까요. 자신의 그릇의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물을 수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됩니다. 어느 정도의 사람까지를 포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자신의 할 일을 정한다면 이것이 나도 남도 불행해지지 않는 길이겠지요. 해불양수라는 성어도 필요하지만, ‘강불용해(江不容海)-강은 바다를 포용하지 못한다’라는 성어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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