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문학 이야기꾼 Jun 26. 2023

조삼모사(朝三暮四)

어리석은 지도자와 현명한 지도자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에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원숭이를 좋아해서 기르다보니 원숭이가 많아져 먹이가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때까지 매일 아침 저녁으로 원숭이에게 도토리 4개씩을 주었나 봅니다. 7개로 줄이고 싶습니다. 그래서 원숭이를 모아놓고 ‘앞으로 도토리를 아침에는 3개씩, 저녁에는 4개씩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원숭이들의 불만이 표출되었습니다. 그때가 아침이었나 봅니다. 매일 아침 4개씩 먹던 도토리를 3개만 준다고 하니 불만을 토로할 만합니다. 그러자 저공은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를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원숭이들이 좋아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열자(列子)』 〈황제편(黄帝篇)〉에도 나오고 『장자(莊子)』 <제물론편>에도 나오는 이 이야기는 사실의 기록이라기보다 교훈을 주기 위한 우화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조삼모사를 사전에서는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고 눈앞에 보이는 차이만 아는 어리석음’으로 풀이하여 원숭이의 어리석음을 비판하기도 하고, ‘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희롱함을 이르는 말’로 풀이하여 저공의 간사함을 비판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아침입니다. 원숭이는 도토리 7개를 아침과 저녁에 나누어 먹어야 합니다. 지금 4개를 먹고 저녁에 3개를 먹느냐 지금 3개를 먹고 저녁에 4개를 먹느냐를 선택해야 합니다. 원숭이는 지금 4개를 먹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어리석은 선택이라면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 먹는 것을 선택해야 현명한 선택이 됩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미래보다 현재를 중요하게 여긴 원숭이의 선택이 현명합니다. 지금 배불리 먹어야 열심히 일할 수도 있고 놀 수도 있습니다. 지금 배고프면 저녁까지 버틸 힘이 없어 쓰러질지도 모릅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도 지금 많이 먹는 것이 현명하다는 근거들이 많습니다. 이자를 생각한다면 현재가치가 미래가치보다 크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길 수 있는 리스크를 고려할 때도 현재 많이 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이렇게 보면 원숭이가 아침에 4개를 선택한 것은 어리석은 선택이 아니라 현명한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전에서는 저공 역시 간사한 꾀로 남을 속이는 존재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저공이 진짜 간사한 사람이었다면 도토리 생산에 기여하지 못하는 원숭이를 독립시켜 내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식량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저공은 원숭이를 돌보고자 합니다. 이런 저공의 마음을 간사한 꾀로 매도할 수는 없습니다. 또 저공은 7개를 자신의 생각대로 배분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대로 배분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간사한 꾀로 상대를 속이는 것일까요? 속임수가 아니라 상대를 배려한 현명한 판단으로 볼 수는 없을까요? 

  저공이 원숭이들의 생각과 달리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를 고집했다면 하루종일 원숭이와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이렇게 본다면 저공은 간사한 꾀로 남을 속이는 존재가 아니라 어려운 형편에도 남을 배려하고 남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조삼모사는 혼란기를 통치하는 지배자에게 통치의 교훈을 주는 우화로 볼 수도 있습니다. 조삼모사의 이야기는 원숭이를 겉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인간의 삶의 이야기를 뒤에 숨겨두고 있습니다. 지도자가 민중을 어떻게 통치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숨겨놓고 있다면 그 답을 찾는 것은 독자의 몫일 수 있습니다. 

  현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는 그 상황을 사실대로 국민들에게 이야기하고 고통을 나눠 갖기 위해 국민들의 의견을 물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올바른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저공이라는 지도자는 간사한 꾀로 백성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백성의 의견을 물어 백성의 뜻대로 정치를 하고 있는 이상적인 지도자라 할 수 있습니다.  

   

  기형도 시인이 시 중에 ‘홀린 사람’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이 시의 ‘그분(이분)’이나 ‘사회자’ 정도는 되어야 간사한 꾀로 남을 속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홀린 사람

                            -기형도     


    사회자가 외쳤다

    여기 일생 동안 이웃을 위해 산 분이 계시다

    이웃의 슬픔은 이분의 슬픔이었고

    이분의 슬픔은 이글거리는 빛이었다

    사회자는 하늘을 걸고 맹세했다

    이분은 자신을 위해 푸성귀 하나 심지 않았다

    눈물 한 방울도 자신을 위해 흘리지 않았다

    사회자는 흐느꼈다

    보라, 이분은 당신들을 위해 청춘을 버렸다

    당신들을 위해 죽을 수도 있다

    그분은 일어서서 흐느끼는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때 누군가 그분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인가

    그분은 목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유령인가, 목소리가 물었다

    저 미치광이를 끌어내, 사회자가 소리쳤다

    사내들은 달려갔고 분노한 여인들은 날뛰었다

    그분은 성난 사회자를 제지했다

    군중들은 일제히 그분에게 박수를 쳤다

    사내들은 울먹였고 감동한 여인들은 실신했다

    그분의 답변은 군중들의 아우성 때문에 들리지 않았다     


  일생을 이웃을 위해 산 ‘그분(이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지도자이자 지배자이고 통치자입니다. ‘그분’은 자신을 위해서는 푸성귀 하나 심지 않고, 눈물 한 방울도 자신을 위해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남을 위해 청춘을 바쳤고 남을 위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군중들의 박수 소리와 군중들의 울먹이는 소리가 ‘그분’의 위대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실체를 바로 아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사회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분’은 ‘신(神)’이거나 ‘유령’이어야 한다고 항변합니다. 간사한 꾀에 속아넘어가지 않는 ‘누군가’는 ‘그분’의 암묵적 지시에 의해 쫓겨납니다.     


  흉년이 들어 양식이 부족할 때, 그 사실을 알리고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식량 배급을 조금씩 줄이는 것에 동의를 구하고, 어떻게 줄일 것인지 구성원들의 의견을 묻어 구성원들의 뜻을 정책에 반영하여 집행하는 지도자는 존중받아 마땅한 지도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저공은 간사한 꾀로 남을 속이는 지도자가 아니라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기 위해 구성원의 생각을 묻는 현명한 지도자가 아니겠는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