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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Dec 18. 2023

걸구폐요(桀狗吠堯)

쓸데없는 곳을 향해 짖는 개들에게

  걸구폐요(桀狗吠堯)는 ‘걸왕(桀王)의 개가 요(堯)임금을 보고 짖는다’는 뜻으로, 아랫사람은 자기 주인만을 알아본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걸왕은 고대 중국 하(夏)나라 마지막 임금으로, 은(상)나라 주왕(紂王)과 함께 폭군의 대명사로 걸주(桀紂)로도 불립니다. 반면에 요임금은 순임금과 함께 성군의 대명사로 요순(堯舜)으로 불립니다. 폭군인 걸왕의 개가 성군인 요임금을 보고 짖으며 폭군인 자기 주인인 걸왕만을 위해 충성을 다한다는 것이 이 성어의 의미입니다. 

  ‘척구폐요(跖狗吠堯)-도척(盜跖)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는다’라는 성어와 같은 뜻으로 사용됩니다. 도척은 춘추시대 엄청난 도둑이자 악당의 대명사로 불립니다. 도척의 개도 악당인 자기 주인을 위해서라면 성군인 요임금을 물어버리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 이 성어의 의미입니다.     


  이 이야기는 유방과 항우의 초한 쟁패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소개된 이야기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천하를 두고 유방과 항우가 대치하고 있을 때, 또 한 명의 걸출한 인물인 한신(韓信)이 유방의 편에 섬으로써 저울의 균형이 유방에게로 급격하게 기웁니다. 이때 한신의 참모인 괴통(蒯通)이 한신에게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면 천하의 1/3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른바 ‘천하삼분지계’입니다. 한신은 괴통의 말을 듣지 않고 유방의 편에 서서 천하통일의 일등 공신이 되지만 토사구팽을 당하고 맙니다. 한신이 죽임을 당하고 난 뒤 괴통도 잡혀 모반의 국문을 당합니다. 이때 괴통은 ‘도척(盜跖)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는 것은 요임금이 어질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기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은 한신뿐이었기 때문에 한신에게 천하삼분지계를 건의한 것이다. 만약 자신이 처벌을 받는다면 자신의 주인을 위해 다른 주인을 제압할 계책을 꾸미는 사람은 다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로 자신의 처지를 변호합니다. 유방은 괴통을 풀어줍니다. 여기에서 ‘척구폐요(걸구폐요)’라는 성어가 만들어졌습니다.    

  

  주인이 폭군이고 악당이라 하더라도 개가 주인을 위해 짖는 것은 당연합니다. 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능력이 없고 오로지 본능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개가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한다고 해서 사람도 악당인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가릴 수 있는 분별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도리를 분별하는 기준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맹자(孟子)는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사람에게는 차마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맹자는 이런 마음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측은지심),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수오지심), 양보하는 마음(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시비지심)으로 규정했습니다. 사단(四端)이라고 하죠. 사단에 맞는 행동을 한다면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도척(盜跖)은 천하에 악명을 떨친 도둑놈으로 남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친 악인입니다. 그 옆에 붙어서 이익을 같이 취한 사람들은 아무리 자기의 주인인 도척을 위해 일했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도리를 다한 것이라 볼 수 없습니다. 도척의 개가 도척을 위해 짖는 것은 본능에 따른 행동이기에 받아들일 수 있지만, 도척의 측근이 도척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코지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수용할 수 없습니다. 도척과 함께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나의 행동이 사단이라는 인간의 도리에 맞는지를 살피고,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지는 않는지를 살펴 행동한다면 ‘걸신폐요(桀臣吠堯)-걸왕의 신하가 요임금을 향해 짖는다’와 같은 말은 듣지 않을 것입니다. 참모의 도리는 리더가 사람의 도리를 잘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것이며, 정책의 이익이 구성원들을 향하도록 리더를 보필하는 것입니다. 이런 참모의 도리를 잘 따져 행동한다면 쓸데없는 곳을 향해 짖는 개들이 사라질 수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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