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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Aug 28. 2023

저녁 어스름을 밝히는 따뜻한 마음

저무는 우시장

        저무는 우시장

                        -고두현     

    판 저무는데     


    저 송아지는

    왜

    안 팔아요?     


    아,

    어미하고

    같이 사야만 혀.     


  시인은 1970년쯤 어느 시골 우시장의 한 풍경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소년과 아버지는 송아지 한 마리를 사기 위해 우시장(牛市場)에 왔습니다. 소년은 송아지와 친구하기 위해 꼭 송아지가 필요했습니다. 아버지는 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 잘 키워 농촌 일도 함께 하고자 합니다. 또 그 녀석이 송아지를 보게 되면 그 송아지가 농촌 살림에 큰 보탬이 되기에 송아지가 사려고 합니다. 

  부자(父子)의 눈에 들어온 송아지 한 마리가 있습니다. 소년은 ‘저 송아지’와 눈이 마주친 순간부터 그 송아지를 계속 보고 있습니다. 그 송아지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도 그 송아지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송아지 주인에게 사고 싶다는 뜻을 전합니다. 그러나 송아지 주인은 송아지만 팔지 않고 어미소와 함께 판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어미소와 송아지를 함께 살 여력이 없습니다. 아끼고 아껴 송아지 한 마리 살 돈도 겨우 마련했습니다. 송아지 주인은 어미소와 송아지를 함께 팔아야 합니다. 자식 대학 학비 때문인지, 농촌 살림을 정리하고 대처로 떠나야 하는지 급하게 큰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이 아무리 급해도 송아지 따로 어미소 따로 팔고 싶지는 않습니다. 송아지만 팔았을 때 어미소의 처절한 울음소리를 몇 날 며칠을 들은 기억들이 모정(母情)이란 이름으로 뇌리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해 소를 팔아야 하지만 어미소와 송아지를 모질게 갈라놓기에는 송아지 주인의 마음이 너무나 따뜻합니다. 

  가난 속에서도 피어난 따뜻한 마음이 시골 우시장의 저녁 어스름을 밝게 비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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