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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Sep 20. 2021

갈망(渴望)과 달관(達觀) 사이에서

춘향과 김삿갓의 선택

  우리의 고전 『춘향전』에서 ‘춘향’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들여다보겠습니다. 『춘향전』을 창조적으로 변용하여 서정주 시인은 ‘추천사(鞦韆詞)-춘향의 말 1’이라는 시를 씁니다.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놓이듯 한 풀꽃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 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 밀듯이, 향단아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 올려다오.

채색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 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서(西)으로 가는 달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 

향단아.

    -서정주, ‘추천사-춘향의 말1’     


  ‘춘향의 말’이라는 부제가 붙은 것으로 보아 이 시의 화자는 춘향이죠. 춘향이가 향단이에게 말을 건네고 있습니다. 제목의 ‘추천(鞦韆)’은 ‘그네’를 말합니다. 이 시는 춘향이 그네 타는 이야기입니다. 배가 먼 바다로 나가듯이 춘향이는 그넷줄을 타고 저 하늘로 올라가고 싶습니다. 배는 바다에 있을 때 자유롭게 떠다닐 수 있습니다. 배가 육지에 있으면 묶여 있어야 되고 그것은 구속이지요. 마찬가지로 춘향이가 있는 현실 세계는 춘향이를 구속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현실 세계, 즉 그네가 있는 공간은 ‘수양버들나무’도 있고, ‘풀꽃더미’도 있고 ‘나비’와 ‘꾀꼬리’도 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춘향이는 이곳을 벗어나 구름이 있고 달이 있는 하늘로 가고자 합니다. 하늘에는 ‘산호’도 없고 ‘섬’도 없습니다. 배의 항해에 산호와 섬은 걸림돌이 되죠. 하늘은 춘향의 삶에 걸림돌이 없는 세계입니다. 춘향에게 걸림돌이란 기생의 딸이라는 신분의 굴레겠지요. 춘향은 이런 신분의 굴레가 있는 현실은 아무리 아름다운 것이 많아도 싫다는 겁니다. 그래서 신분의 구속이 없는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 그네를 탑니다.

  그네는 그넷줄 때문에 하늘로 올라갈 수 있지만 그러나 그넷줄 때문에 지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달’처럼 서쪽 하늘에 머물러 있을 수 없음을 자각합니다. 신분의 굴레가 없는 곳에 영원히 살 수 없음을 알았으니 꿈을 포기해야 할까요? 춘향이는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춘향이는 바다의 파도를 생각합니다. 바람이 파도를 밀면 파도는 정점에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집니다. 춘향의 그네와 마찬가지로 파도는 정점에서 머물러 있을 수가 없습니다. 파도가 정점에서 떨어질 줄 알면서도 바람은 파도를 끊임없이 밀어 올립니다. 춘향이도 끊임없이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춘향이의 꿈은 신분의 차별이 없는 세계에 도달해 그곳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춘향이는 어떤 노력을 하는지 소설『춘향전』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춘향전』은 조선 후기 베스트 셀러입니다. 100여 종의 이본이 있을 정도로 지역에 관계없이 사랑을 받은 소설입니다. 기본 줄거리는 춘향이 기생의 딸이라는 현실을 극복하고 신분을 초월한 사랑을 이루는 내용입니다. 신분을 초월한 사랑은 춘향의 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결혼으로 대체하면 꿈의 내용은 더 현실적이 됩니다. 춘향이 이몽룡과 대등한 관계에서 결혼하게 되면 춘향은 양반의 신분을 얻게 되는 것이죠. ‘추천사’에서 그렇게 갈망하던 꿈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춘향이가 양반이라는 견고한 기득권 속으로 편입하기란 쉬운 것이 아니죠.


  설중환 교수는 『판소리 사설 연구』에서 『춘향전』의 주제를 ‘꿈의 실현’으로 보았습니다. 『판소리 사설 연구』의 내용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춘향은 먼저 양반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합니다. 시화서(詩畵書) 공부 등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갖춥니다. 아무 준비도 없이 꿈을 이룬다는 것은 헛된 욕심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그리고 운명처럼 사또의 아들 이몽룡을 만납니다. 잠깐의 사랑 끝에 이별이 옵니다. 이몽룡과의 이별에서 춘향의 서러움은 이별보다는 꿈의 좌절에 오는 것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변사또가 춘향에게 수청을 들라고 합니다. 변사또는 춘향을 기생으로 보았기 때문이죠. 춘향이 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한 것은 열녀불경이부(烈女不更二夫)라는 유교적 가치관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신분 상승을 이루고자 하는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암행어사 출두 후에 이몽룡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수청을 들라고 했을 때 역시 거부하죠. 역시 꿈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몽룡이 어사 신분을 감추고 거지 차림으로 춘향이 갇혀 있던 옥에 면회를 왔을 때 춘향은 내일 자기가 죽으면 이몽룡의 선산 발치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합니다. 신분의 차별이 있는 세계에서 영화를 누리면서 살기보다 죽음으로 신분의 차별이 없는 세상에 가기를 소원하는 것이죠.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목숨까지 건 춘향은 마침내 꿈을 이루게 됩니다. 

  서정주 시인은 『춘향전』을 읽으면서 춘향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꿈을 쉽게 이룰 수 없음을 알지만 포기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춘향을 ‘추천사’라는 시로 형상화했습니다. 춘향이 꿈을 이루었을 때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이입해 마치 자신이 꿈을 이룬 것처럼 박수를 치고 좋아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문학작품을 읽을 때도 현재의 나를 온전히 작품 속의 인물에 감정이입을 해야 감동이 배가되죠.  

   

  남다른 선택을 한, 아니 남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김병연(金炳淵)’의 선택도 들여다보겠습니다.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로 있던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에게 항복했기 때문에 집안이 망합니다. 어린 김병연은 하인 김성수의 도움으로 피신해 있다가 나중에 사면을 받고 과거에 응시하여 합격합니다. 공교롭게도 과거시험에 출제된 문제가 ‘홍경래난 때 항복한 김익순의 행위를 논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김병연은 김익순이 자기의 조부인 줄도 모르고 ‘비겁자’라고 욕을 합니다. 과거에 급제하게 되죠.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김익순이 김병연의 조부였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김병연은 자신이 죄인의 손자인 것도 괴로웠지만, 조부를 욕하는 글을 써서 급제한 것이 더욱 괴로웠습니다. 하늘 보기 부끄럽다고 그때부터 삿갓을 쓰고 다니기 시작합니다. 김병연이 김삿갓이 된 거죠. 대지팡이에 삿갓을 쓰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삶의 애환을 시로 남깁니다. 

  김삿갓의 선택은 어떻습니까? 요즘으로 치면 직무유기를 한 공직자를 비판해서 공무원 임용시험에 합격했는데 그 공직자가 자기 조부입니다. 조부를 비판한 죄로 평생을 삿갓을 쓰고 백수로 살아야 하는지는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것입니다. 삿갓을 쓴다고 비판한 내용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공무원 임용을 포기한다고 조부를 비판한 것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공직자가 되어 조부의 잘못을 상쇄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此竹彼竹化去竹(차죽피죽화거죽) 

  이대로 저대로 되어 가는 대로

風打之竹浪打竹(풍타지죽낭타죽)

  바람치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飯飯粥粥生此竹(반반죽죽생차죽)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기는 대로

是是非非付彼竹(시시비비부피죽)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른 저대로

賓客接待家勢竹(빈객접대가세죽) 

  손님 접대는 집안 형세대로

市井賣買歲月竹(시정매매세월죽)

  시장에서 사고 팔기는 시세대로

萬事不如吾心竹(만사불여오심죽)

  만사가 여의치 않으니 내 마음대로

然然然世過然竹(연연연세과연죽)

  그렇고 그런 세상 지나가는 대로

    -김병연, ‘죽시(竹詩)’     


  김삿갓의 인생관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한 번의 선택이 평생을 떠돌이 생활로 이끕니다. 삶의 목표도 없습니다.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아가면 그만입니다. 이 시에서 죽(竹)은 대나무이지만 대나무의 뜻으로 쓴 것이 아니라 ‘대나무’의 ‘대’를 음으로 사용했기에 조사나 의존명사 ‘대로’로 해석이 됩니다. 한자의 뜻을 뜻에 맞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뜻을 우리말 음에 맞게 한시를 지은 거죠. 세상살이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옳으면 옳은 대로 그르면 그른 대로 그냥 지나가는 대로 살자는 겁니다. 자책과 한숨의 소리도 섞여 있지만 달관(達觀)의 경지에 오른 태도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김삿갓은 관직 생활보다는 방랑자의 생활이 더 어울렸는지도 모릅니다. 할아버지를 비판한 자신이 하늘 보기 부끄러워 삿갓을 썼다기보다는 원래 삿갓을 쓰고 떠돌아 다니기를 좋아하는 기질이 있었는데 마침 할아버지를 비판한 것이 떠돌이 삶을 선택하는데 명분이 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자책하며 한숨으로 삶을 보냈다고 보기에 이 시는 달관한 사람의 태도가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목표를 설정해 놓고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아니라 되면 되는 대로, 안 되면 안되는 대로 한 세상 그런 대로 살겠다는 것에서 달관의 태도를 읽을 수가 있죠.    

‘이십수하(二十樹下)’라는 한시도 읽어보겠습니다.      


二十樹下三十客(이십수하삼십객)

  스무나무 아래 서러운 나그네

四十家中五十食(사십가중오십식)

  망할 집에서 쉰 밥을 주는구나

人間豈有七十事(인간기유칠십사)

  인간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不如歸家三十食(불여귀가삼십식)

  집으로 돌아가 선(설익은) 밥 먹는 게 낫겠네

    -김삿갓, ‘이십수하’     


  숫자의 한자음(漢字音)에 우리말의 의미를 부여해 지었습니다. 二十(이십)은 스물이지만 ‘스무’로 살짝 바꾸면 二十樹(이십수)는 ‘스무나무’가 됩니다. 三十(삼십)은 서른이지만 ‘서러운’으로 바꾸면 三十客(삼십객)은 ‘서러운 나그네’로 해석이 되죠. 四十(사십)은 마흔이지만 ‘망할’과 음이 비슷해서 四十家(사십가)는 ‘망할 집’으로 해석하면 됩니다. 五十(오십)은 ‘쉰’이니까 五十食(오십식)은 ‘쉰 밥’이 되고, 七十(칠십)은 일흔이지만 ‘이런’과 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七十事(칠십사)는 ‘이런 일’로 해석이 됩니다. 結句(결구)의 三十(삼십)은 ‘서른’이지만 ‘설다’와 음이 비슷해 三十食(삼십식)은 ‘선(설익은) 밥’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자의 뜻만 가지고 한시를 짓기도 쉽지 않은데 한자의 뜻과 음, 우리말의 의미까지를 생각해 한시를 짓는 천재성이 놀랍습니다. 

  김삿갓이 떠돌아 다니며 밥을 빌어 먹습니다. 어떤 집에서는 개에게도 주지 않을 쉰 밥을 줍니다. 세상 인심이 어찌 이럴 수가 있냐며 한탄하죠. 돌아갈 집도 없지만 집에 돌아가 설익은 밥이라도 먹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쉰 밥을 주는 세태에 울분을 토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숫자를 비틀어 장난기 섞인 시를 쓰는 것을 보면 역시 삶에 달관한 듯 시인의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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