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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Sep 29. 2021

씨앗

이 가을에 생각을 키우는 시(詩)

        씨앗

                        - 함민복


    씨앗 하나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포동포동 부끄럽다

    씨앗 하나의 단호함

    씨앗 한톨의 폭발성

    씨앗은 작지만

    씨앗의 씨앗인 희망은 커

    아직 뜨거운 내 손바닥도

    껍질로 받아주는

    씨앗은 우주를 이해한

    마음 한점

    마음껏 키운 살

    버려

    우주가 다 살이 되는구나

    저처럼

    나의 씨앗이 죽음임 깨달으면

    죽지 않겠구나

    우주의 중심에도 설 수 있겠구나

    씨앗을 먹고 살면서도

    씨앗을 보지 못했었구나

    씨앗 너는 마침표가 아니라

    모든 문의 문이었구나     


  화자의 손바닥에 밤 한 톨이 올려져 있습니다. 사과 하나라고 해도 좋습니다. 화자는 자신의 손바닥에 놓인 밤 한 톨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밤 한 톨보다 자신이 못났다는 생각 때문이지요. 밤 한 톨에 내재된 희망은 엄청난 폭발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밤 한 톨을 땅에 심으면 밤 한 톨은 먹는 과일이 아니라, 엄청난 크기의 나무가 되고 엄청난 양의 밤들을 해마다 생산해냅니다. 나중에는 온 우주를 다 밤으로 덮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폭발적 잠재력을 지닌 밤 한 톨, 사과 하나를 나는 지금 먹으려고 합니다. 지금 먹어버리면 잠재되어 있던 폭발성은 죽어버립니다. 밤 한 톨은 우주를 덮을 수 있는 자신의 잠재력을 지워버리려고 하는 사람도 기꺼이 포용합니다. 밤 한 톨에 비하면 나는 초라하죠. 그런 씨앗의 존재 가치를 모르고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사과를 먹고 밤을 먹으면서도 그 씨앗이 품은 우주의 마음을 보지 못했음을 깨닫습니다. 씨앗은 비바람을 견디고 여름의 뜨거움을 받아들이고 가을의 마지막 햇살을 품어서 완성되었지만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우주로 향하는 문이었음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우리도 우주를 품을 수 있지요. 껍질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가 새로운 세상을 보듯이 우리도 생각의 틀을 깬다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내가 남보다 불행하다는 생각으로 나를 얽매지 말고,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내 능력의 한계를 미리 규정하지 말고 무한의 공간으로 내 생각을 키우는 연습을 해 봅니다. 이 시를 통해 이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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