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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학 이야기꾼 Oct 06. 2021

서그럭서그럭

햇살과 바람이 그물에 걸리는 소리

        서그럭서그럭

                          -함민복     


    텃밭에 

    햇살과 바람에 걸리는 그물  

    

    수직의 꽃밭에 

    오이꽃이 피고 지고      


    그물에 

    오이덩굴이 걸렸더니      


    오이 덩굴에 

    그물이 걸렸더니      


    죽어서도 그물 놓지 못하는 

    오이덩굴에      


    햇살과 

    바람이 걸려      


    서그럭 

    서그럭      


  집 가까이 텃밭을 일구고 여러 가지 씨앗을 뿌렸습니다. 집 가까이라 병아리들도 다니고 강아지들도 다닙니다. 병아리와 강아지로부터 씨앗을 보호하기 위해 그물을 칩니다. 그물은 안과 밖을 구분하지요. 그물은 우리와 너희를 가르는 장치가 됩니다. 우리만의 영역 표시로 너희의 출입이 제한됩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 쳐놓은 그물은 도리어 우리를 구속합니다. 그물 때문에 식물들은 수평으로는 자랄 수가 없습니다. 위로만 자라기에 ‘수직의 꽃밭’이 되었지요.

  그물에 오이덩굴이 걸렸습니다. 오이덩굴은 수평으로 뻗어나가지 못하고 그물에 걸려 수직으로 올라갑니다. 가을 추수가 끝난 텃밭이지만 그물과 오이덩굴은 서로에게 걸려 있습니다. 서로에게 장애물이 된 셈이지요. 그물과 오이덩굴에 바람도 햇살도 걸려 ‘서그럭서그럭’ 소리를 냅니다. 

  텃밭에 그물을 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이덩굴은 수평으로 마음껏 뻗을 수 있고, 바람과 햇살도 그물이라는 장애물에 걸려 서걱거리는 소리 없이 본래의 자유로움으로 텃밭과 마당을 가로질러 다닐 수 있었겠지요. 작가는 텃밭에 쳐놓은 그물에서 깊은 사유의 자유를 이끌어냈습니다. 


  우리의 생각에도 그물을 쳐놓지는 않았는지요? 학생이라는 신분에 갇힌 생각, 직업과 업무라는 굴레에 갇힌 생각이 우리의 사유의 자유를 구속하지는 않았는지요? 벼룩은 자기 신장의 100배까지 점프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30배 높이에 유리판을 설치해 두면 30배 높이만큼만 뛴다고 합니다. 이후에 유리판을 제거해도 30배 높이만큼만 뛴다는 겁니다. 유리판이 벼룩의 잠재력을 구속한 결과이죠. 우리의 생각도 우리가 쳐놓은 그물에 걸려 스스로의 생각을 구속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우리의 생각이 ‘서그럭서그럭’ 소리를 내는 건 아닌지 이 시를 통해 생각해 봅니다. 이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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