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

가을 하늘에서 만나는 어머니

by 인문학 이야기꾼

가을 하늘

- 함민복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을 수 없다네

어머니 가슴에서 못을 뽑을 수도 없다네

지지리 못나게 살아온 세월로도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을 수도 없다네

어머니 가슴 저리 깊고 푸르러


시를 잘 읽기 위해서는 시의 화자나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좋습니다. 화자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으며 그 상황에서의 정서가 어떠한지를 이해하는 것이 시를 잘 읽는 방법이 됩니다. 화자는 작가가 내세운 대리인이기 때문에 작가의 삶이나 가치관을 이해하는 것이 화자의 상황을 파악하는 좋은 방법이 됩니다.

이 시에서 화자는 어머니의 가슴을 많이 아프게 했던 모양입니다. 이 시의 화자를 실제 작가와 관련지어 보겠습니다. 화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기업에 취업을 합니다. 공기업의 인기가 지금처럼 높지는 않았지만, 많은 어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화자의 어머니도 당신 자식이 나름대로 안정된 직장을 다니면서 결혼하고 안정된 가정을 꾸리는 것을 바랐겠지요. 그러나 화자는 4년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시 쓰기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합니다. 어머니 가슴에 큰 상처가 생길 법하지요. 졸업 후에도 쉽사리 정착하지 못합니다. 농촌 노총각으로 사는 자체가 어머니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을 터이지요.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했으니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은 셈입니다. ‘어머니 가슴에 못을 박을 수 없다네’라는 이 시의 첫째 행은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하면 안 된다는 당위성을 말합니다. 화자는 그 당위성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가슴에서 못을 뽑을 수’ 없음도 압니다. 다시 안정된 직장을 얻고, 가정을 꾸리면 어머니 가슴에 박힌 못이 뽑힐지 모릅니다. 그러나 화자에게는 안정된 직장과 안정된 가정보다 시를 쓰는 일이 더 행복하고, 시를 쓰는 일이 사명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어머니 가슴에서 못을 뽑을 수 없음을 잘 아는 겁니다.

농촌 노총각으로서, 가난한 시인으로서의 세월이 흐릅니다. 그 숱한 세월 동안 어머니의 가슴에는 수많은 상처가 생겼을 법합니다. 어머니의 가슴이 단단한 나무였다면 어머니의 가슴에는 수많은 못들이 박혔을 겁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가슴은 ‘가을 하늘’처럼 너무 깊고 푸르기 때문에 그 어떤 큰 못도 박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당신이 원하는 길보다 자식이 선택한 길을 응원하니까요. 자식이 원하는 길이라면 모든 것을 품을 수 있으니까요. 자식을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은 가을 하늘처럼 높고 깊으니까요. 화자는 이 가을에, 가을 하늘을 쳐다보면서 저 높고 깊고 푸른 가을 하늘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사랑하고 포용하고 지지했던 어머니를 떠올려봅니다. 그리움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저도 이 시를 읽으며, 깊고 푸른 가을 하늘 어디에선가 저를 지켜보고 계실 것 같은 어머니를 생각해 봅니다. 이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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