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한 알에서 우주를 찾다
-함민복
사과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일부를 먹는다
사과꽃에 눈부시던 햇살을 먹는다
사과를 더 푸르게 하던 장마비를 먹는다
사과를 흔들던 소슬바람을 먹는다
사과나무를 감싸던 눈송이를 먹는다
사과 위를 지나던 벌레의 기억을 먹는다
사과나무에서 울던 새소리를 먹는다
사과나무 잎새를 먹는다
사과를 가꾼 사람의 땀방울을 먹는다
사과를 연구한 식물학자의 지식을 먹는다
사과나무 집 딸이 바라보던 하늘을 먹는다
사과에 수액을 공급하던 사과나무 가지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세월, 사과나무 나이테를 먹는다
사과의 씨앗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자양분 흙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흙을 붙잡고 있는 지구의 중력을 먹는다
사과나무가 존재할 수 있게 한 우주를 먹는다
흙으로 빚어진 사과를 먹는다
흙에서 멀리 도망쳐보려다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사과를 먹는다
사과가 나를 먹는다
가장 쉽게, 맛있게, 의심 없이 먹을 수 있는 과일이 사과입니다. 잘 익은 사과를 떠올리기만 해도 침샘이 자극됩니다. 아침 사과와 저녁 사과의 효능, 사과의 영양소, 건강, 다이어트, 사과의 종류 등 사과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거의 끝났습니다.
그런데 이 시는 사과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아닙니다. 과학을 바탕에 깔고 있는 정서적 분석입니다. 사과 한 알을 먹으면서 지금 내 손에 있는 사과가 있기까지의 과정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봄 햇살에 사과꽃을 피우고, 여름 무더위와 장마에 사과를 더 키우고, 가을의 소슬바람을 견뎌내고서 한 알의 붉은 사과가 되었습니다. 내년의 사과를 위해서는 겨울의 혹독한 추위도 온몸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사과에는 벌레와의 추억도 담겨 있고, 새소리도 녹아 있습니다. 사과 한 알에는 사과를 가꾼 사람들의 노고와 더 좋은 사과를 만들기 위해 애쓴 학자의 지식과 사과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기를 기도한 사람들의 정성과 꿈이 담겨 있습니다. 계절을 관통하는 자연의 질서와 사람들의 노력과 정성이 사과 한 알에 들어 있다는 시인의 정서적 분석이 놀랍습니다.
사과 한 알을 심습니다. 묘목을 옮겨 심을 수도 있죠. 흙이 있어야 하고 흙 속에는 물이 있어야 하며, 공기와 햇빛이 있어야 사과나무가 자랍니다. 뿌리는 흙 속에 있는 영양분을 모아 줄기를 통해 잎과 열매에 공급합니다. 한 번만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나이테만큼이나 이런 일을 했습니다.
사과 한 알에는 지구의 중력도 작용했습니다. 중력이 없다면 흙은 사과나무를 붙잡고 있지 못할 겁니다. 중력이 없다면 사과나무 잎새는 가을이 와도 떨어지지 않고 수액을 공급하는 줄기를 얼어죽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중력은 결국 사과를 흙으로 돌아가게 하죠. 사람도 결국은 흙으로 돌아갑니다. 모든 것은 흙으로 돌아가고, 흙에서 자양분을 취하는 사과는 결국 모든 것을 먹는 셈이 됩니다. 사과 한 알에 담겨 있는 우주적 원리를 통해 나를 있게 한 것들에 대해, 현재의 내 생각이 있게 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 가을에.
[사진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