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의 재생 에너지와 어머니

by 인문학 이야기꾼

-함민복


처음 불타보는 거라고

거짓말 한번 해보렴

숯아


당신 어머니

탄 속 꺼내놓고

그렇게 한번 말해보실래요


시적 상황을 상상하며 시를 읽는 것도 시 읽기의 묘미입니다. 숯불에 돼지갈비를 굽는 장면을 상상해 봅니다. 고기를 익히는 숯불은 연기도 없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도 없는데 화력이 셉니다. 숯이 저 정도의 화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통나무가 숯이 되기 위해서는 1,000℃ 이상의 온도에서 3일 이상은 타야 된다고 합니다. 그 정도면 나무가 가진 100%의 에너지가 0%가 되었음직하지요. 그런데 숯은 에너지 100%의 힘으로 고기를 구워냅니다. 그래서 화자가 숯에게 ‘처음 불타’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겁니다. 다 타버린 숯이 어떻게 저렇게 강한 에너지를 분출하는지 의아하기 때문이지요. 이에 숯은 어머니를 소환해 화자에게 대답을 합니다.


‘속타다’는 ‘걱정, 근심 따위로 마음이 몹시 달다. 내장이 검은색으로 변할 정도로 열이 나거나 오르다’로 국어사전에 풀이되어 있습니다. ‘애타다’도 비슷한 뜻으로 쓰입니다. ‘노심초사(勞心焦思)’의 ‘焦’도 ‘불탈 초’자입니다. 물질이 완전히 연소하면 에너지가 제로가 되는 것은 타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타도 타도 탈 에너지가 남아 있는 모양입니다.


어머니의 속은 얼마나 탔을까요? 자식의 공부 때문에, 자식의 취업 때문에, 자식의 결혼 때문에 탄 어머니의 속은 그 정도를 헤아릴 수조차 없습니다. 그렇게 타버려서 더 이상 탈 에너지가 없어 보이는데도 어머니의 속은 또 탑니다. 자식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기대를 간직하고 있기에 에너지가 재생되고 또 재생되기 때문은 아니겠는지요. 자식의 효용 가치 때문에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에 대한 끝없는 에너지가 분출되는 것은 아니겠는지요.


시인은 시커멓게 타버린 숯에서 역시 시커멓게 타버린 어머니의 마음을 떠올립니다. 타버린 숯이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을 보고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엄청난 에너지를 생각합니다.

이런 시인이 있기에, 이런 시가 있기에 저도 저에게 쏟았던 어머니의 엄청난 에너지를 떠올립니다. 이 맑고 밝은 가을 하늘을 보면서.


[사진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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