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는 시(詩)
-함민복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백 미터 전방에 꽃이 가득 핀 꽃밭이 있습니다. 그곳까지 벌과 나비가 경주를 하면 누가 빨리 가겠는지요? 그렇습니다. 벌이 빠르지요. 벌은 한눈팔지 않고 일직선으로 꽃밭을 향해 날아갑니다. 동료 벌에게도 꽃밭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죠. 벌은 꿀 따는 데 일등 선수입니다.
나비는 다릅니다.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죠. 이곳저곳 다 기웃거리면서 날아갑니다. 온갖 참견과 간섭을 하면서, 남의 일에도 신이나 춤을 추면서 날아갑니다. 나비를 지켜보는 구경꾼은 나비가 어느 세월에 백 미터를 날아갈 수 있을까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꽃밭에 꽃이 한 송이뿐이라면 나비의 몫은 없겠지요. 그러나 나비를 기다리는 꽃은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그 꽃은 향기가 부족할 수도 있고, 꿀이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비를 기다리는 마음만은 어느 꽃송이 못지않게 간절합니다. 구경꾼들의 걱정과 달리 나비는 결국 꽃송이를 찾아 앉습니다.
누구나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 목표에 곧장 도달하는 사람도 있고, 곧장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자신을 너무 조급하게 몰아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시의 화자는 남들이 다 찾은 꽃송이를 늦도록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조급하죠. ‘찾을 수 있을까?’ 이런 조급한 마음이 드는 순간 나비를 봅니다. 그렇게 삐뚤삐뚤 날면서도 결국 꽃송이를 찾아 앉습니다. 위로가 됩니다. 나비 한 마리에게서 삶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시인의 섬세한 정서는 시인의 특별한 능력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결혼이 늦을 수도 있고, 취업이 늦을 수도 있습니다. 나비의 곡예 비행은 꽃송이에 늦게 도착하는 대신에 비행 과정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삶의 소중한 자산이 되겠지요. 그 자산을 바탕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꽃송이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앉고 싶은 단 하나의 꽃송이’를 향해 직선 주행을 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곡예 비행을 하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꽃송이’를 찾는 눈을 얻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사진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