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면
-함민복
그리움이 나를 끌고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대가 일하는 전부를 보려고 구석에 앉았을 때
어디론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려오고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는 채 푸른 호수 끌어
정수기에 물 담는 데 열중인 그대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한다고
술 취한 고백을 하던 그날 밤처럼
그냥 웃으면서 밥을 놓고 분주히 뒤돌아서는 그대
아침, 뒤주에서 쌀 한바가지 퍼 나오시던
어머니처럼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습니다
나는 마치 밥 먹으러 온 사람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화자는 ‘그대’를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대’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그리움이란 보고 싶어서 애타는 마음이죠. 애타는 마음을 진정하기 위해 ‘그대’가 일하는 ‘서울역 그 식당’으로 향합니다. ‘그대’가 일하는 모습 하나하나를 눈에, 가슴에 담기 위해 구석에 앉았습니다. 이때 ‘어디론지 떠나가는 기적소리’ 들립니다. 기적소리처럼 ‘그대’는 화자를 떠났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화자는 ‘그대’를 떠나보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화자는 ‘그대’의 모습을 붙잡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그대’는 자신의 일에 열중합니다. 화자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그대’는 일을 합니다. ‘푸른 호수’는 정수기에 물을 담기 위한 호스(hose)이겠지만, 호수(湖水)처럼 넓고 고요한 그대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정수기로 정화된 물처럼 그대의 마음은 깨끗한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대’를 화자는 ‘그대 그림자가 지나간 땅마저 사랑’할만큼 사랑합니다. ‘그대’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화자에게 여전히 아름답게 비칩니다. 오늘도 ‘그대는 웃으면서 밥을 놓고 갈’ 뿐입니다. 그 모습마저 아름답습니다. 아침마다 밥을 차려주시는 어머니만큼 아름답습니다. 자식에게 아침을 차려주시는 어머니의 정성과 화자에게 밥을 가져다주는 그대의 정성이 동일시되고 있습니다.
화자의 사랑 고백을 따뜻하게 거절한 ‘그대’를 화자는 잊지 못합니다. 어머니가 생각나듯 ‘그대’가 생각납니다.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식당에 와서 ‘그대’를 봅니다. ‘그대’를 보는 것이 목적인데 마치 밥을 먹는 것이 목적인 것처럼 밥을 먹고, 나옵니다. 화자가 구석 자리에 앉아 ‘그대’를 쳐다보는 것을 ‘그대’가 싫어할지도 모릅니다. 화자는 ‘그대’가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그래서 밥을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그대’를 보러 온 것인데도, 밥 먹으러 온 것처럼 밥을 먹고, 밥만 먹고 나옵니다.
이기주 작가는 『언어의 온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그렇습니다. 상대를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해줄 수는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상대가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상대에 대한 배려, 이것이 사랑의 기본이라는 것을 이 시를 통해 다시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