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한 힘
-함민복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힘
말랑말랑한 힘
흙도 말랑말랑하고 발도 말랑말랑합니다. 맨발로 뻘에 들어가면 말랑말랑한 흙이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나오면서 발은 흙 속으로 빠집니다. 발은 흙 속에 빠지지만 흙은 ‘발을 잡아주’죠. 발은 흙의 말랑말랑함을 느낍니다. 흙도 발의 말랑말랑함을 느끼고 꽉 잡아줍니다.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는 어떤가요? 딱딱한 아스팔트는 발을 밀어냅니다. 아스팔트는 말랑말랑한 것이든 딱딱한 것이든 밀어냅니다. 함민복 시인은 ‘감촉 여행’이라는 시에서 ‘도시는 딱딱하다’고 규정합니다. ‘육교 바닥’도 ‘에스켤레이터’도 ‘아파트 난간’도 ‘컴퓨터 자판’도 딱딱하다고 규정합니다. 아스팔트의 딱딱함은 도시적이고 흙의 말랑말랑함은 원시적이고 자연적입니다. 자연의 말랑말랑함은 생명적이고 도시의 딱딱함은 반생명적입니다.
말랑말랑한 흙은 가는 길을 잡아주기도 합니다. ‘길’은 갯벌에 사는 어패류가 살아가는 길이기도 하고, ‘길’은 식물이 살아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씨앗을 흙에 뿌립니다. 흙은 씨앗을 품고 씨앗이 뿌리내릴 길을 열어줍니다. 흙 속에 뿌리가 내리면 흙은 뿌리가 흔들리지 않게 꽉 잡아줍니다. 씨앗이 싹이 틉니다. 흙이 말랑말랑하다지만 그 연약한 씨앗의 싹이 어떻게 흙을 뚫고 올라올 수 있겠는지요? 안도현 시인은 ‘비켜준다는 것’이라는 시에서 ‘흙이 길을 비켜주었기 때문에 싹이 올라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흙이 비켜준 길을 따라 싹이 트고 성장하는 동안 흙은 씨앗과 흙이 키워낸 뿌리를 꽉 잡아주어 식물이 비바람에 견디게 해 줍니다. 연약하고 말랑말랑한 흙이지만 너무나 힘이 있고 너무나 생명적이죠.
말랑말랑한 흙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길을 잡아주기도 합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답을 흙이 줍니다. 흙은 발이든 씨앗이든 돌멩이든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모든 것을 수용하고 포용하죠. 아스팔트처럼 거부하고 배척하는 법이 없습니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죠. 자연인의 사연을 들어보면 삶의 곡절이 깊습니다. 정신적이나 육체적이나 삶의 최하점에서 산속으로 들어옵니다. 흙의 말랑말랑한 힘은, 나무의 말랑말랑한 힘은, 바람 소리의 말랑말랑한 힘은 삶의 최하점에 있는 자연인을 수용하고 포용해 그의 정신이나 육체를 삶의 정점으로 끌어올립니다.
이제 딱딱한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야 할 때입니다. 서로의 생각이 맞설 때, 많은 사람들은 내 생각이 맞고 너의 생각은 틀렸으니 너의 생각을 바꾸라고 합니다. 남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내가 남을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랑말랑한 힘이 아니죠. 말랑말랑한 힘은 내 생각을 바꿀 줄 아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아스팔트에 공을 던지면 던진 힘만큼 튀어 오릅니다. 그러나 뻘에 공을 던지면 뻘이 공을 포용합니다. 유연한 사고, 말랑말랑한 생각은 내 생각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생각마저 수용하고 포용하게 합니다. 그러면 내 생각이 더욱 풍성해지죠. 내 생각을 바꾸지 않고 남의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은 아스팔트에 씨앗을 뿌려 싹이 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 생각이 말랑말랑해지는 것은 말랑말랑한 흙에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말랑말랑한 힘의 풍서함을 이 시에서 배웁니다.
[사진출처] Pixabay 무료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