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by 인문학 이야기꾼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는 것은 사실의 진술이 아니라 ‘꽃이 필 수 있고, 꽃이 피어야 한다’는 당위적 진술입니다. 관찰을 바탕으로 이끌어낸 가능성의 진술이고 정책적 진술이죠. 화자는 달빛을 받으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같은 몸인데도 달빛을 받는 쪽과 그림자가 지는 쪽으로 나뉩니다. 몸의 방향을 바꾸면 달빛이 그림자가 되고 그림자가 달빛이 되기도 합니다. 달빛과 그림자의 요소를 모두 가진 채 화자는 담장 위에 있는 화분을 봅니다. 화분에는 국화가 피어 있습니다.

담장은 집 안과 집 밖을 나누는 경계선입니다. 담장 위는 땅과 하늘을 나누는 경계선이기도 합니다. 그 경계선에서 국화가 피었습니다. 개화는 꽃의 전생인 꽃망울과 꽃의 내생인 열매의 경계선이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국화는 안과 밖이라는 공간을 초월해 피고 전생과 내생이란 시공을 초월해 피어 있습니다.

화자는 문득 화분이 왜 담장 위에 올려져 있는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화자는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나름대로 내놓습니다. 해안가 철책에 매달아 놓은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알리기 위한 경보장치로 생각합니다. 도둑이 담을 넘다가 화분을 건드리면 화분이 떨어져 ‘와장창’ 소리를 냅니다. 그 소리가 도둑이 침입했다는 경고음인 셈이지요. 행인들에게 담장 안은 내 구역이니 함부로 넘보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고 상상해 봅니다.

화자는 자신의 상상이 잘못 되었다고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경보나 경고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화분보다, 국화보다 무시무시한 것을 올려두었겠지요. 담장 위에 화분을 올려둔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담장 위에 피어 있는 국화는 향기를 발산합니다. 향기는 안과 밖을 나누지 않습니다. 나와 너를 나누지 않습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나누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안과 밖이 하나가 되는 향기의 건배를 가능하게 합니다. 건배를 하는 순간 안과 밖이라는 경계는 허물어지고 너와 나는 우리가 됩니다. 비만 와도 살 수가 없고, 햇빛만으로도 살 수가 없듯이, 눈물만으로 살 수가 없고 눈물이 메말라도 살 수가 없습니다. 내 눈물이 메마르면 너의 눈물로 채워주고, 내 눈물이 많으면 너에게 나눠줄 수 있으면 꽃이 시든 후 열매를 맺듯이, 견고하던 철책도 시들어 너와 나의 소통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담장 위에 올려둔 화분이 국화를 피웠듯이 그래서 향기를 안과 밖 골고루 흩뿌리듯이 서로 다른 생각의 경계선에서도 서로의 생각을 수용하고 공유하면 풍성한 생각의 꽃들을 피워 너와 나를 하나로 만들 수 있음을 이 시를 통해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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