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것들을 위하여
-함민복
뜨겁고 깊고
단호하게
순간순간을 사랑하며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바로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데
현실은 딴전
딴전이 있어
세상이 윤활히 돌아가는 것 같기도 하고
초승달로 눈물을 끊어보기도 하지만
늘 딴전이어서
죽음이 뒤에서 나를 몰고 가는가
죽음이 앞에서 나를 잡아당기고 있는가
그래도 세계는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단호하고 깊고
뜨겁게
나를 낳아주고 있으니
화자는 매 순간을 뜨겁고 깊게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자유와 정의와 인권과 공정 같은, 화자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관들을 단호하게 실천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화자의 바람대로 되지 않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실천하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현실의 편안함을 빼앗길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실천하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에 안주하면서 살아왔습니다. 화자는 자신의 실천과는 무관하게 세상이 원만히, 윤활히 돌아가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화자는 세상에 대한 관심을 끄고자 합니다. 자신이 실천하지 않아도, 자신이 간섭하지 않아도 현실은 잘 굴러감을 느낍니다.
화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소중한 가치들을 실천하겠다는 자신의 생각을 잘라내려고 합니다. 초승달로 눈물을 끊어내려고 합니다. 묵묵히 시를 쓰는 일로, 현실에 대한 무관심으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슬픔을 잘라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세상일에 초연하게 사는 것은 죽음만을 기다리는 것만 같습니다. 사는 것이 아니라 예정된 죽음으로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생각을 바꿉니다. 눈꺼풀로 눈물을 잘라낼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눈꺼풀로 눈물을 잘라낸다는 것은 슬픔을 스스로 극복할 수 있고, 기쁨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실은 슬픔과 부조리와 부정이 있지만, 기쁨과 공감과 배려도 함께 있습니다. 세계는 불합리한 것이 많지만, 우리의 눈물을 우리의 눈꺼풀로 잘라내듯이, 세계는 자정능력이 있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가치관들, 내가 실천하고 싶은 것들이 반드시 옳은 것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음도 알게 됩니다.
생각을 바꾸니 세계가 새로운 모습으로 보입니다. 내 중심으로 세계를 보니 세계가 온통 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계를 중심으로 나를 보니 내가 문제가 많습니다. 우유부단하고 얕고 차가운 존재임을 세계를 통해 압니다. 세계가 우유부단한 나를 단호하게, 얕은 생각을 깊게, 차가운 사람을 뜨거운 사람으로 바꾸어줍니다. 내 생각을 바꾸니 새로운 내가 태어났습니다.
시 한 편은 너무나 연약하기에 시로 자신의 가치관을 실천하고, 현실을 개선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 한 편을 쓰면서, 시 한 편을 읽으면서 눈꺼풀로 눈물을 자를 수 있음을 알게 되고, 나를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도 있음을 압니다. 시란 그런 것임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