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학생의 날(학생독립운동기념일) 계기 수업 공유

수업을 하려고 소설을 직접 써본 황당한 이야기

by 무니

11월 3일은 학생의 날(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다. 처음에 "학생의 날"을 들었을 때 무슨 날인지도 몰랐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올해 학기 시작 전 학생회에서 "학생의 날"행사를 준비한다는 것을 알았고 이것과 관련한 수업을 해주었으면 하는 요청을 받았다. 이 때 "학생의 날"이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며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몰랐다는 부끄러움 때문인지 나는 학생회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이것과 관련한 문학 한 편을 읽는 수업을 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학생의 날은 단지 민족적인 기념일만이 아니라 학생들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주체적인 행동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날이다. 따라서 우리 학생들이 당시 학생들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성찰해보는 글을 쓰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마침 중학교 국어과 교육과정에서는 다음의 성취기준이 있었기에 딱 알맞다고 생각했다.


2024-10-16_13-27-21.png 2015 국어과 교육과정 문학 성취기준

하지만 광주학생항일운동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찾기는 어려웠다. 내 능력이 모자란 것일 수도 있지만 정확히 딱 이 날을 배경으로 하는 문학을 찾기가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미 계기 수업을 하겠다고 질러놨기에 엎질러진 물. 그래서 이 고민을 옆 자리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소설을 우리가 써서 수업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렀다.(우선 질러보는 것은 나의 나쁜 습관 중 하나다.) 마침 옆 자리 선생님이 역사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역사적 자료를 챙겨주시겠다고 했고 소설이 완성되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자문도 해주시겠다고 했다. 그래서 소설을 쓰게 되었다.


소설 창작의 의도를 먼저 말하자면 단순히 용기 있는 학생들의 항일 투쟁기라는 민족적인 투쟁 분위기가 넘실거리는 책을 쓰기보다는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자신의 사회적 역할과 자신의 삶을 고민해보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당시의 학생들도 10대에 불과했을 텐데 얼마나 무섭고 고민되었겠는가. 지금의 학생들도 공감할 수 있으려면 영웅적인 인물보다 평범한 학생과 비슷한 인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걱정도 많고 겁이 많은 사람이라 나와 닮은 인물을 창조해내려고 애썼다.


3월부터 창작에 들어갔고 1학기 내내 썼다. 쓰는 동안 역사 선생님의 자문을 받고 국어과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았다. 또 실존에 대해 고민하는 인물이었기에 도덕과 선생님도 철학적인 주제를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이렇게 해서 1차 완성본이 나왔고 학교 교사 독서 동아리 선생님들의 평도 들어보았고 광주 사투리 번역을 마쳐 최종본을 완성했다. 학교의 영어 선생님께서 서평을 남겨주셨고 학교 교장 선생님이 추천사를 써주셨다. 그리고 그림 잘 그리는 3학년 친구 하나를 섭외해 표지 디자인을 부탁했다. 아이들이 최대한 책으로 느끼게 하기 위해 최대한 출판되는 책의 느낌을 살리고자 애썼다. 그리고 2024년 10월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자극적인 소설이 아니며 인물이 자신의 존재에 고민하는 소설이라 아이들이 그렇게 재밌게 읽으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래도 선생님이 적었다고 하면 호기심을 갖고 읽어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하며 수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생각보다 너무 재밌게 읽었다는 말, 하루만에 다 읽어버렸다는 말, 그렇게 쓰는데 얼마나 걸렸냐는 질문을 복도에서 마주칠 때도 여러번 받게 되었고 아이들이 잘 읽어주었다는 감사함에 이 수업을 다른 분들에게도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럼 이제는 이 수업에서 다룬 소설을 공유하고, 이 수업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했는지 공유해보고자 한다. 아직 수업이 종료되지 않았으나 계기 수업을 미리 준비하시는 선생님이 계실듯 하여 미리 올리게 되었다. 관련 수업을 고민 중이신 선생님들께 도움이 되길 바란다.



우선 먼저 소설을 올려드린다. 해당 소설의 제목은 "휘영"이다. "휘영"이라는 인물은 1919년 3.1 운동 때 큰오빠를 잃은 여학생이다. 그리고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게 되고 큰오빠와 친구들을 자기 자신에 비교하며 부끄러움을 느낀다. 누구나 이 시대적 흐름이 무섭고 겁이 나겠으나, 겁이 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들을 보며 스스로 초라함을 느끼는 것이다. 꼭 휘영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도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인물이 용기를 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수업에서 아이들이 인물에 공감하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읽기 전 과정

우선 아이들을 4명씩 1모둠으로 배치하고 책의 표지만 보고 예측하기 활동을 수행했다. 예측하기 활동은 큰 의미가 있어보이진 않으나 이 활동 하나로 학생들이 책을 읽을 때 집중력이 많이 달라진다고 느낀다. 예측을 하는 순간 자신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동기가 생기기 마련이다.

2024-10-16_14-03-03.png 읽기 전 예측하기 학습지

표지에서 어떤 것을 확인할 수 있는지 살피고 그 표지를 보고 만들 수 있는 예측 질문들을 생성하게 했다. 모둠원별로 돌아가며 하나씩 만들었고 이 질문들은 좋든, 나쁘든 최대한 많이 적게 했다.

2024-10-16_14-04-19.png 모둠별 예측 질문 모음

그리고 모둠 별로 "주제와 연관되었으며 예측하기 활동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질문"을 3가지씩만 뽑아 발표하게 했다. 위의 이미지는 2반의 질문 목록이다. 그리고 우리 모둠의 질문과 다른 모둠의 핵심 질문 중에 마음에 드는 질문 3개를 골라 예측하기 학습지 하단에 적고 예측을 해보도록 했다. 이 예측 자체가 큰 의미가 있진 않다. 그냥 자유롭게 책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그리고 이 예측을 위해 책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는 데에 충분한 배경지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읽기 중 과정


예측하기 후에는 모둠 별로 책을 함께 읽게 했다. 개별적으로 읽지 않게 한 것은 읽기 역량이 부족한 친구들을 모두 교사가 챙기기 어렵다는 점과 책을 함께 읽고 과제를 수행하면서 읽으면서 생기는 오류들을 상호 간에 보완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2024-10-16_13-53-24.png 읽기를 4차시로 나누고 차시별로 제시한 모둠 과제 중 27차시 과제

위의 순서로 과제를 진행하게 했다. 할 일도 전부 제시했기 때문에 읽기 과정 수업에서 교사가 할 일은 거의 없다. 잘 읽는지 관찰하고 가끔 모르는 단어가 있다고 할 때만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아이들은 읽어야 할 부분을 훑어보고 읽는 데 몇 분이 걸릴지 예측하여 모둠 별로 목표 시간을 정했다. 정하고 남은 시간동안 교사가 제시한 과제를 수행했다. 과제 해결 과정에서 교사가 어떤 도움도 주지 않기도 했고 모둠이 같이 모두 작성해야 통과가 되기 때문에 아이들은 책을 뒤적거리면서 과제를 모두 함께 완성했다.

2024-10-16_14-11-53.png 모둠 과제 중 인물 관계도 샘플

이 활동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모둠이 함께 몇 분까지 읽기로 목표를 자율적으로 정했기 때문에 한 명도 빠짐없이 책을 읽었다. 심지어 평소 수업에 엎드리기만 하던 친구도 단 한 번도 엎드리지 않고 읽고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놀라운 장면 중 하나였다. 물론 이해력이 부족한 친구들은 거의 친구들의 결과물을 거의 베끼다시피 하긴 했다. 이것은 조금 아쉬우나 아예 손도 못 댈 친구가 친구들 이야기하는 걸 듣고 적는 것만으로도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겠다고 생각하며 위안하고 있다.



읽기 후 과정

읽기 중 활동이 소설의 갈등 양상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면 읽기 후는 이 갈등 해결 과정에 대해 스스로 평가해보고 자신과 비교하며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과정이다.

2024-10-16_14-25-47.png 읽기 후 갈등 점검하기

이것은 다 읽고 인물의 갈등의 과정과 해결 그리고 그 선택을 평가해보는 활동지다. 이를 완성하고 편을 갈라 독서 토론을 진행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소설 속 갈등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 갈등에 대해 평가하고 친구들의 평가를 보며 자신을 성찰할 준비를 하길 의도했다. 아직 수업을 하지 않아 결과물은 없으나 미리 수업을 하고자 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 미리 올려둔다. 수업이 완료되면 아이들의 활동 과정도 보완하여 수정할 예정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이 인물에 대한 나름의 평가가 완성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완성이 되면 이 인물에 비추어 자기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보는 글을 쓰게 하고 싶었다. 내 수업에서 가장 고민한 지점이기도 하다. 어른들도 마찬가지겠으나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다짜고짜 비교하라고 하면 매우 어려워할 것이 뻔했다. 그래서 차라리 조건을 세부적으로 주되, 다양성을 위해 선택권을 주고자 했다.

2024-10-16_14-27-37.png 성찰문 쓰기 조건

위의 이미지는 성찰문 쓰기 조건이다. 4문단 쓰기로 제시할 예정이며 가운데 2는 세 조건 중에 하나를 선택해 쓰게 하고자 한다.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고자 하는 의도도 있으나 세 조건 중에 하나는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교사의 막연한 희망도 섞여있다. 사실 3-1과 3-3을 쓰길 바라지만 어렵다면 3-2을 선택해보라고 말할 예정이다. 그러나 3-1과 3-3이 소설의 주제의식에 더 부합한다는 생각이 든다.(혹시 더 추천할 만한 옵션이 있다면 댓글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든 과정을 다 다루진 않았다. 갈등의 개념을 배우는 과정도 있었기에 그것을 모두 합치면 13차시 정도의 수업이며 위에서 안내한 부분만 한정한다면 10차시 내외의 수업이 된다. 경력이 짧아 어디 내놓을만한 수업은 아니지만 학생의 날에 관련한 계기 수업을 고민하실 때 도움이 될까 하여 올려본다.



수업과 별개로 소설을 쓰는 것은 매우 고되지만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내가 쓴 소설을 열심히 읽고 과제 해결을 위해 토의하는 아이들을 보면 정말 묘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쓴 작품으로 수업을 해 본 국어 교사가 몇이나 될까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경험이기도 했다. 그래서 또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과연 이 짓을 또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그래도 저 같은 사람도 썼으니, 다른 국어 선생님들도 도전해보길 권하고 싶다. 다만, 교육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므로 혼자 쓰는 것보다 주변 선생님들의 여러 자문을 받으면 더 좋은 수업 자료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정말 많은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 덕에 아이들에게 읽힐 만한 작품이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맡겨진 소녀(클레어 키건)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