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 지끈 우당탕 회사] 얼레벌레 입사

31살 대기업 신입사원, 아내 말에 입사

by 노서방

31살. 해군 장교로 나름 승승장구하다가 대위 계급장이 달린 견장을 어깨에서 내려놓았다. 누군가 강요한건 아니지만, 자의반 타의반 전역을 결심했다. 몸을 갈아가며 일하는데도 충분한 보상이 있지 않았던건 당연했고, 마치 빨간 불 앞에 몇 시간을 정차해있는 자동차처럼 답답한 마음과 함께 성장에 정체기를 겪었다. 아무런 성장도 없는 수년을 보내고나니,


"뺑이치려고 장교가 됐나. 나 지금 뭐하냐"


생각을 매일같이 해나갔다. 보고서, 보고서, 그놈의 계획보고와 결과보고 쓰는 잔기술만 늘려가며 정체기를 겪다보니 위기감을 느꼈다. 세상은 AI에, 생산성에, 경쟁 속에 휘몰아치는데 군대는 지나치게 고요하게 썩어간다는 감각을 생생히 느끼고 있었다.


말로만 하는 혁신이 지겨웠고, 위에서 책임지지 않으려고 탁상공론하듯 내리는 지시와 정체된 구식 리더십에 이골이 난 상태였다.


결국 사회로 나올 운명이었다는걸 알았더라면 장기까지 하지 않았지만, 알을 깨고 사회로 나올 마지막 기회임을 깨닫는데 오래도 걸렸다. 사회로 나오고 해소된 소화불량뿐만 아니라, 그렇게 많던 불평불만이 사라진걸 보니 선택이 틀리진 않았다.


중요한건,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아가야할지라 생각하며 먹고살 길을 찾아보게 되었다. (전역이라는걸) 저지르고 찾아보는게 무책임해 보일 수 있지만, 스스로를 절벽에 내몰아야만 기지를 발휘하게 되는걸까? 배수진을 치는 마음으로 전직교육기간을(전역 전 부여된 몇 개월의 유예기간. 일반 회사원이 실업수당 받는 기간과 유사하다.) 불안함으로 보냈다. 늦은 나이에 신규로 입사는 당연히 안될거라 생각하고 사회복지사를 따고 창업을 준비했지만, 결론은 웃기게도 모 기업에 합격했다.


그것도 전역한 날로부터 3주만에 최종 합격 발표가 났고, 지금까지 회사생활을 어찌어찌 하고 있다. 필자를 뽑은 인사팀과 면접관에게 묻고싶었다.


"대체 스펙도 자격증도 없는 절 왜 뽑았어요?
뽑을 사람이 그렇게 없어요?"

물론 지금은 한 달에 29일씩 근무하는 혹독한 스케줄과 자만감에 빠져 인사팀의 꼬임으로 회사에 납치되었다(?) 생각도 종종 들지만, 그때는 참 의아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아내에게 참 고마웠다. 전역을 결심한 순간에도 아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돈 벌면 돼.
7년간 가족 위해 노력했으니, 하고싶은거 해"

내 삶을 진심으로 응원했던 것도, 31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처음 본 면접을 위해 몇 시간을 1:1로 마크하며 스크립트를 함께 봐줬던 아내였다. 넣는 지원서마다 서합조차 못하고 떨어지던 나에게, 이 회사는 붙을거 같다고 근거없이 자신감을 불어넣던 이도 아내였다.


꽃길만 걸을 줄 알았던 회사 생활이 가시밭길이었다는건 함정아닌 함정이지만, 아내에게 감사한 마음은 여전하다. 제목은 지긋 지끈 우당탕으로, '거침없이 하이킥' 같은 시트콤스러운 내 첫 회사생활 연재를 여는 프롤로그는 이렇게 아내에대한 감사로 시작하려한다.


"여보.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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