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끈. 악명 높던 과장님

그는 악명처럼 상종 못할 사람일까

by 노서방

조직문화에서 가장 스트레스는 단연 사람에서 비롯된다. 야근은 적응되고, 일의 숙련도는 향상된다. 빡센 프로젝트는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며, 회사생활의 절반 이상의 업무는 반복이기에 속도와 요령도 늘 수밖에 없다.(간혹 안 느는 사람도 봤다만..)


다만, 영원한 난제이자 완벽한 적응이 어려운 건 역시 인간관계일 것이다. 특히, 예측이 전혀 안 되는 사람과 한 공간에서 오래도록 근무하는 건 스트레스 그 자체다. 출퇴근도 시련인 직장인에게, 옆자리의 동료가 매번 예측 안 되는 변화구를 던지면 참 난감하고 부담된다. 이는 인성의 좋고 나쁨이나, 개개인의 성향 문제는 아니라 생각한다.


필자의 짧은 조직생활 경험에서 보면 나쁜 인간도 일관되게 나쁘면 적응되었고, 좋은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금방 적응하고 믿게 된다. 문제는 일관성이 깨질 때 발생한다. 늘 이타적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사악한 면모가 보이거나, 이기적이던 사람이 간혹 한없이 착한 모습을 보일 때다. 심히 혼란스럽고, 그럴 때면 종잡을 수 없음에 갈피를 못 잡고 어찌 반응해야 할지 모른다.




"거봐, 하면 되잖아"
"너, 이거밖에 못해?"
"일이 이렇게 되는 동안 넌 뭐 했냐"
"내가 그렇게 지시했어?"
"인계해 주길 기다리지 말고
네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출처 : kukukeke

지금 모시는 과장님의 단골 잔소리 세트인데, 이 말을 듣기만 해도 속이 답답해진다. 회사에서도 악명 높은 분이다. 다른 부서의 동기들 여럿이 우리 과장님 소문을 전해 들었는지 필자를 걱정하며 연락이 올 정도다.


그는 일에 빈틈을 허용하지 못하고, 서류나 데이터에 오탈자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와꾸나 앞뒤가 안 맞으면(실제로 아니더라도 단순히 직감적으로 이상하다는 기분이 들기만 해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하도록 지시한다. 다소 감정적이고 신경질적이며, 타협하지 않는 꽉 막힌 모습이다. 그를 만난 많은 신입들이 회사를 떠났고, 몇 년 전엔 견디다 못해 한 부서에 3명이 동시에 퇴사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그분들은 아마 계획적으로 보복하고 싶은 마음에 퇴사한 게 아닐까)


그런 과장님에 대해 필자가 느낀 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군대에서 보던 꼰대가 여기도..?

장교시절 군에서 종종 보던 확신의 꼰대를 보는 듯하다. 규정과 원칙, 그리고 보수적인 조직문화가 체화되어 있기에 일 처리에 융통성을 보기 어렵다. 사람 관계에서도 수직적이게 내리꽂는 듯한 말투가 위압감을 준다.


2. 그럼에도 배울 점이 참 많다.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그의 업무 방식은 지시 하나하나에 디테일이 살아있다.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이 있다. 타협하지 않는 그의 모습의 이면엔, 정직한 일처리가 서려 있다. 서류에 과장은 넣을지언정, 거짓된 데이터로 채우지 않으려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그와 함께 일할 때마다 그동안 십수 년간 타협 없이 일하며 수없이 많은 자료를 '직접' 검토하고 찾아보며 쌓인 관록에 감탄할 때가 많다. 과정 속에서 알아보는 일은 남에게 시키더라도, 모든 자료(심지어 실무자 간 주고받은 메일) 하나하나 직접 보고 판단하는 꼼꼼한 모습은 본받을만하다. 작은 일 하나도 설렁설렁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 마이크로 매니지먼트 : 관리자가 직원의 작업을 지나치게 세세하게 관찰하고 통제하는 부정적인 관리 스타일을 의미합니다.



이런 그의 일관된 모습에서 필자는 이상하게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다. 거친 언행과 사고방식에 6개월 정도의 적응 기간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딱히 업무 중에 그를 의식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다. 아마도 그건 변동 없이 깐깐한 모습에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범주'에 속하게 되어서가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해 본다.


사내에서 악명 높은 과장님은 적어도 필자의 시각에선, 사람에 의해 스트레스를 주는 존재는 더 이상 아니게 되었다. 예측 가능한 범주에 있으니, 주무사원이 되고 처음 갖던 부담감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래서 사람은 겪어봐야 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 준 계기다. 사회에 나와 첫 직장에서 제대로 일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 가끔은(아주아주 가끔이지만) 고맙기도 하다.


생각하기만 해도 지끈지끈한 사람 문제가 없는 직장을 다니고 싶지만, 소설에서도 그런 직장은 찾기 어렵겠지. 주변 사람에 대한 관찰력을 키워 예측을 더 잘하게 되면 사람에 의한 스트레스는 줄어드는 것 같다. 또한, 정글 같은 직장에서 기대감을 낮춘다면 아쉬움도 덜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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