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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서방 Feb 24. 2024

[군생활 잘하기] 7년의 실패(3)

스펙 쌓을 시기를 놓치다.

지난 실패 시리즈가 군 가족에 대한 내용이었다면, 오늘은 지극히 개인적인 내 이야기다. 


군간부로서 복무한 특별한 경험 그 자체가 스펙이 되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애초에 전국민 의무교육인 초등학교 졸업이 이력서란에 기입할 공간조차 없이, 즉 스펙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군생활은 '대중적'이라 기업에 큰 임팩트를 주지 못한다. 국민의 50% 이상이 군복무 경험이 있는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기인한다. 


군복무 중 고강도의 근무환경을 요구받고, 대부분의 시간을 부대에서 보내고, 퇴근 후 숙소 근처에 학원 하나 없는 현실에 비추어 보면 스펙은 커녕 자격증 하나 따기가 참 어렵다. 의지가 약한 나는 분위기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아, 공부를 위해 최소 도서관이라도 다녀야 한다. 도서관을 가려면 차로 30분은 가야 했던 평택에서도 군복무와 스펙쌓기는 병행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절절히 느꼈다. 특히, 함정근무 중에는 시간/공간/정보 모두제한되어 더욱 그랬다.(데이터가 안터지니 인강도 못듣는다.)


오늘의 주제는 ‘스펙’이다. 


이미 월등한 스펙과 열심히 커리어를 쌓아가는 군인이 현재도 많으므로, 절대 모두가 스펙이 부족하다 일반화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은 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스펙 쌓기에 실패한 한 해군 장교의 이야기다. 누군가에겐 공감의 내용이, 누군가에겐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변명의 글로 보일지라도 솔직한 이야기로 채워보려 한다.


전역을 결심한 후,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수많은 경험과 역량을 쌓는 시간의 이면에 내 스펙은 참 초라했다.


누구나 언제나 군에서 전역하고,
나도 곧 사회로 나가야 한다.


이런 단순한 이치를 애써 외면했는지 모른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살아왔지만, 막상 현실은 냉정하다. 군 안에서는 성장의 한계를 느껴, 외부로 시선을 느끼고  5년 차 전역내신을 한 후에서야 비로소 스스로를 돌아봤다.



해군 장교라는 잣대에서 어딜 내놔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다만,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초년생의 기준에선  다소 아쉬울 수밖에 없다. 처음 이 현실을 마주하고선 솔직히 스스로를 탓하기보다 군을 비난했다. 충분한 워라밸을 보장하지 못하고, 함정 근무 중에는 흔한 인터넷강의 한 번 듣지 못했으며, 격무에 늘 시간에 쫓겼다. 이 모든 이유로 제대로 된 스펙을 쌓지 못했다고 비난의 화살을 군에 돌리던 시기도 있었다.


나의 경우 7년간의 군생활... 즉, 미해군 교육기관에서 험난한 연수 기간이, 해군호텔 경영자로 시설공사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수많은 성과가, 경쟁평가에서 타 기관을 모두 제쳤던 승부욕이, 해외 순항훈련 행사를 위해 흘린 땀이, 그 경력 모두가 외면받는 듯했다.  


또한, 전역을 ‘선언’하고 먼저 들었던 말은 이랬다.

군인이 나가서 뭐 할 수 있는 게 있냐?


자조 섞인 그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찌른 건 내심 스스로도 그 말을 반박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리라. 이내 감정의 방향은 탓할 대상을 찾는 걸로 바뀌었다.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29살의 나이로 스스로의 전무한 스펙을 볼 때의 비참함이란 참 씁쓸하다. 단 하루도 대충 살았던 적 없는 팽팽한 7년을 보내고서 말이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의 골로 빠져가기 시작할 때 나를 건져 올려 줄 귀인 J중위가 나타났다. 군 생활을 성실하게 하면서도 2년간 스펙 쌓기에 수없이 도전하며,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J중위를 보며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고, 스스로가 세운 목표를 끝없이 바라보는 후배는 내게 큰 귀감이 되어 자세를 고칠 수 있게 만들었다.



스펙 없다고 평생 손가락 빨고 살건 아니자나! 


지금, 나는 사업가와 직장인의 삶을 모두 준비하고 있다. 당장 급여가 필요해 취업을 하겠지만, 결국 내 사업을 하는게 꿈이고 이를 준비하고 있다. 매일같이 스스로를 밀어붙이니 가끔 머리가 핑 도는 듯한 멍한 기분이 들 때도 있고, 해야 할 일에 매몰되어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지만, 지난 7년을 메우기 위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스펙의 관점에서만 볼 때, 사업체 대표는 운전면허증 정도만 있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어떤 사업이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예컨대 요식업을 해도 한식/중식/일식/양식 조리기능사 그 어떤 것도 필요치 않다. 병원장이 의사일 필요가 없듯이 말이다. 경력직도 마찬기지일 수 있다. 경력 자체가 스펙이기 때문에 경력기술서가 모든 걸 말해줄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 사회에서 군 경력이 ‘환영’ 받을 때도 있으나, 경력으로서 ‘인정’ 받기엔 아직 이르다.


7년 장교 생활의 끝은 신입 채용이다.


사업과 경력직이 아니라면, 결국  첫 직장에 취업해야 한다. ‘첫 직장’을 위해, 즉 신입이 되기 위해 몇 가지 단계를 거치는데, 취업에 ‘정론’은 없다지만 최소한의 자격요건이 필요하다. 흔히 말하는 스펙이다. 그리고 나의 7년을 돌아봤을 때 바로 그게 부족했다.


이렇듯, 전역 후 그 7년의 세월을  실패로 평가받는듯한, 핸디캡을 안게 되는 듯한, 감정에 휩싸인 적이 있다. 그러나, 인생은 일방향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비참함마저 안고서 꿋꿋하게 나아가야 했다. 사회라는 벽은 내겐 참 높아 보였고,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 보일 기회에 목마르고 간절함도 생겼다.


7년을 열심히 국가를 위해 봉사한 후에도, 실패라는 쓰디쓴 고배를 마셔야 했다는 이야기를 기록해보려 한다. ‘스펙 쌓기’라는 관점에서 내 군생활 7년은 실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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