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증 반납하다가 폐차까지 할 줄은
지난 연재까지가 7년간의 군생활을 뒤로하고 전역을 결심한 내가 전역 후 2주 만에 취업한 이야기였다. 전역 후 안정된 삶을 위해 보금자리를 구한 것부터 전역 지원서를 작성해 내신 하고, 진로를 결정해 4개월간의 취준생활을 한 이야기이다.
* 이 과정에서 그토록 원하던 창업을 아직 하지 못한 건 다소 아쉽다. 결혼해 부양할 가족이 있는 입장에서 안정감을 포기하기 어려워 취업으로 잠깐 방향을 틀게 됐다.
오늘은 필자가 공무원증을 반납하며 겪은 이야기다.
쉬어가는 이야기, 간단한 여담을 하나 하려고 한다. 공무원증 반납은 전역을 위한 일련의 과정이며, 반드시 전역 전 해야 할 일이다. 공무원증을 어디에 쓰길래 제때 반납 안 하고 버티냐겠지만, 일부 전역자는 군인복지마트에서 알뜰하고 쏠쏠하게 사용하려 반납을 미룬다고도 한다. (물론 이는 불법이다.)
필자 역시 전역 전 공무원증을 반납해야 했다. 그것도 고양시에서 인천까지 넘어가서 말이다. 평택에서 마지막 보직과 함께 전역 신고를 하고 고양시로 올라왔지만, 행정 편의를 위해 직보기간 중 소속 부대는 인천으로 변경했다. 그래서 공무원증을 인천 부대로 반납하도록 연락이 왔고, 당연히 택배로 반납하거나 대리인을 통해 반납하겠다고 협조 요청했다. 돌아온 담당 군무원의 답변은 단호했으며, '전역 전' '본인이 직접 오셔서 반납토록' 거듭 요청해 왔다.
당시 나는 난생처음 겪은 취준에 자소서 지옥에 빠져 시간이 빠듯했다. 인천을 다녀오며 하루를 날린다면 쓸 수 있는 기업 하나가 줄어드는 상황이었다. 다만, 언제나 그랬듯 사소한 일로 얼굴 붉히거나 난처해지는 게 가장 싫었기에 인천에 직접 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몰랐다. 공무원증 반납하러 갔다가 아방이를 폐차시킬 줄.
수도권 이사 오고서 주로 대중교통만 이용하느라 자차를 이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 직보 2개월 정도 기간에 아방이(필자가 당시 타던 아반떼의 별명)를 쓸 일이 없었다. 2개월간 거의 세워뒀던 아방이를 몰고 인천으로 향했다. 친한 후배와 점심 약속도 여차저차 잡고서 기분전환할 겸 창문도 열고 기분 좋게 인천으로 점프했다.
공무원증을 무사히 반납했고, 후배와 짜장면도 한 그릇 하고서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다. 아방이가 갑자기 시동이 꺼지기 시작했다. 다시 걸었던 시동이 두 차례 꺼지고, 온갖 경보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핸들이 갑자기 불안정한가 하면, 경고등이 들어왔다 꺼지길 반복했다. 시동이 꺼졌을 때 하필 뒤에 화물차가 경적을 울려대는 탓에 식은땀도 났다. 아방이가 이렇게 요동친 건 7년 만에 처음이다.
아방이는 필자에게 정말 추억도 많고 고마운 차다. 아내와 결혼 후 첫 합가 할 때, 서울집을 비우고 아내의 모든 짐을 아방이에 싣고서 부산으로 내려왔다. 신혼 때 부산에서 진해까지 왕복 100킬로가 넘는 출근길을 매일 4시간씩 걸려 왕복해 줬다.
그뿐만이 아니다.
장교로 임관한 후 줄곧 이사를 다니거나, 함정에서 필요한 물자를 급하게 옮길 때 아방이가 없었다면 절대 할 수 없었다. 부산에서 제주로 그리고 (눈길을 헤쳐내고) 서귀포를 거쳐 다시 진해로 이사 갈 때도 아방이에 짐을 이빠이(?) 싣고 다녀오곤 했다. 뒷 유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짐을 싣고, 조수석에는 전출입 신고에 필요한 정복을 가지런히 놓고 장거리도 거뜬히 다녀왔었다. 아방이 뒷좌석과 트렁크에 배에서 종무식에 쓸 200명이 먹을 과자를 싣고 다니기도, 함정 긴급 수리에 필요한 수리부속을 수송해 오기도 했다. 의전을 담당하던 때 함장님이 급하게 찾을 때를 대비해 트렁크 한 구석엔 새 속옷과 수건, (필자는 피지도 않는) 담배가 자리하고 있기도 했다.
그런 아방이가 공교롭게도 공무원증을 반납한 그날 수명을 다했다. 어렵게 고양시로 도착해서는 아방이는 더 이상 자력으로 주행하지 못하고 며칠 뒤 폐차장으로 향했다. 평소 험하게 몰고 트럭처럼 함정에 쓰는 물자를 싣고 다녀 미안한 마음에 최소 6개월에 한 번은 점검해 주며 아껴온 내 첫 차였다. 그런 아방이가 공무원증을 반납하며 군인의 신분을 마무리한 그 순간 본인의 소임을 다했다는 듯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은 건 아이러니했다. 비록 한낱 물건이지만, 만약 감정이 있다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그저 공무원증을 반납하러 갔다가 폐차까지 할 줄은 몰랐지만, 아방이를 보내며 전역했다는 실감이 더욱 강하게 들었다. 우연이겠지만, 우연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던 이 사건이 왠지 기억에 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