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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서방 Sep 28. 2024

[군인에서 민] 채용(7)

전역 기념, 자유를 여행하다..가 취업

전역 기념, 자유를 여행하다


5월 31일에 기다리던 전역을 했다. 대한민국 해군 간부로 7년을 온전히 채웠다. (근데 거기다가 직보 2개월을 곁들인..)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전역신고가 잡혀있기 2주 전까지도 전대장님께 올릴 결과보고를 기안했다. 돈 받은 만큼 일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겠지만, 실제로 군에서 그런 사람은 '바보'소리를 듣는다. 제 앞가림이나 잘하고 전역 준비나 할 것이지 자기 거 못 챙기는 바보라는 뜻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은 고집스러웠던 것 같다. 피복창고 리모델링을 위해 3개월간 팀원들과 함께 준비한걸 '단도리치고'(마무리) 나 스스로한테 떳떳하게 전역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마지막 프로젝트까지 고군분투 한 때문인지, 면접이나 자기소개서에도 쓸 말이 많긴 했다. 그건 참 좋았다.


자유=세일링


충분히 힘을 빼지 못하고 보낸 말년 때문인지 직보 2개월간 취준을 하면서도 마음이 콩밭에 가있었다. 자꾸 어딘가로 떠나고 싶고, 자유를 찾고 싶었다. 걷고 싶고, 뛰고 싶고, 해외나 섬으로 몸을 숨기고 싶었다. 물에 들어가고 싶었고, 숲에서 살고 싶었다. 7년이라는 군생활 중에 어깨에 올려둔 책임감(부대장, 장교, 한 집의 가장)을 좀 내려두고 싶었다.


그래서 상반기 채용 전형 일정이 얼추 마무리된 6월 중순, 합격과 불합격의 소식을 가만히 기다리지 못했다. 50리터가 넘는 큰 등산 가방을 당근마켓에서 구매해 집을 뚜벅뚜벅 나섰다. 전역 여행이다.

전역 여행이란 게 쑥스럽고 낯간지럽지만, 하나의 이벤트로서 가성비가 참 좋았다. 군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내기 참 좋았고, 혼자 뚜벅이로 떠나니 비용도 저렴했다. 남들이 출근할 때 산으로 들로 공원으로 산책하는 맛도 좋았다. 낮에는 전날 마신 술을 해장하며 막걸리 한 잔 하고 낮잠도 잤다. 그러고서 저녁엔 다시 지인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미래를 그리며 추억을 회상한다.


광주 홍어




6월 17일~23일 / 강남-평택-부산-진해-광주-청주


큰 가방 속엔 잠옷 반바지 하나, 노트북 하나, 그리고 티셔츠 4장과 읽을 책이 담겨 있었다. 정말 등산가방 하나만 가지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나선 여행은 약 6일간 이어졌다. 강남에서 평택으로, 평택에서 부산과 진해로, 그리고 광주를 거쳐 청주까지 이어졌다. 지역을 정한 기준은 간단했다. 내가 아끼고 오래 보고 싶은 지인들을 만나고 싶었다.


군 입대를 하기 전 내 인생을 VER0.0(최초 버전)이라 하면, 입대 후 7년간 VER1.0을 거쳤다. 그리고 전역하면서 내 삶은 VER2.0으로 나아간다고 스스로 정의했다. 나라는 사람은 그대로지만, 다음 버전으로 스스로를 패치시키려면 한 번쯤 주변 인맥과 삶을 가지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연을 이어가던 친구들을 비롯해 군생활하며 마음을 깊게 나눌 수 있었던 동료들까지 한 번 만나보고자 했다. 전역 후에도 계속해서 연락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필터링하며 앞으로의 삶을 다듬어보고 싶다는 의미에서였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다.


내 주위의 5명 평균 = 나


이 이야기는 주변사람들을 잘 두면 그만큼 나도 성장할 수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전역 여행 중 지인들을 직접 만나고 함께 술잔을 주고받다 보니 마음이 달라졌다. 내 가장 가깝고 소중한 그 5명의 주변사람의 평균을 높이려면 내가 전역 후 잘 되고 또 성장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들을 만나고 스스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동기부여를 하게 됐다.


그러던 중 받은 회사 합격 목걸이(?)


강남역에서 빨간 버스를 타고 평택으로 향하면서 패기롭게 시작한 여행은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를 거쳤지만 김 빠지게도 6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끝났다.  


축배를 들어라


여행이 금방 끝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바로, 여행 중 지원한 기업에서 합격 발표를 받으며 갑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전역여행이라며 풍류를 즐기고 자유를 추구하며 '사회란 어떤 곳일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찬찬히 하루를 지내던 민간인(진)으로 머물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당장 2주 뒤에 신입사원 연수가 잡혀있어 준비할게 수십 가지여서 집으로 경쾌하게(걱정 반 설렘 반) 발검음을 옮겼다.




끝으로


짧다면 짧지만 내게는 참 길었던 4개월의 취준도 그렇게 끝났다. 나름 짧았던 시간임에도 열심히 준비한 15개의 자기소개서, 여러 번의 인적성 검사, 그리고 직무/인성/영어/토론/PT 면접이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최선을 다해 스스로를 쥐어짜며 정리한 내 소중한 자료와 노하우가 쓸모없어졌다니 아쉬웠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후배와 동료를 위한 자료로 삼아 적극적으로 공유했다. 그리고 이제 앞선 채용(1) ~ 채용(6) 브런치로 다른 전역자에게도 힘을 주고자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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