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결단과 후회
신입사원 공모전 중간발표 성적 2등이라는 예상치 못했던 작은 승리를 맛봤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고, 심지어 사업보고서를 작성하고 발표를 준비한 스스로도 아리송했다. 야근을 그렇게나 많이 했던 우리였지만, 끝까지 만족하지 못한 채 초조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물론, 좋은 결과를 기대하는 쪽이 아니라 '뒤에서 몇 등 했을까?' 하는 다소 자조적인 자세였다. 다만,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가 만족스러우니 그것만으로 기뻤다.
중간 성적이 좋게 나오며 팀장으로서 부담감은 다시금 높아졌다.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으며, 그 부담감은 곧 '완벽주의의 늪'이라는 위기를 불러왔다.
소위말해 ‘짜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짜친다'는건 속된 말로 부족하다는 뜻이다. 굳이 도시개발에 빗대자면, 신도시의 길이 계획된 개발로 길쭉하고 반득하고 똑바른데 비해 구도심은 난개발에 구불구불하고 좁은 길에 건물이 정돈되지 않은 채 배치되어 있다. 구도심은 한눈에 무언가 잘 보이지 않고 복잡한 구도심은 여러 번 봐야 겨우 그 속이 들여다 보인다.
다른 팀의 사업 아이디어가 잘 정돈된 신도시라면, 우리 팀의 결과물이 딱 구도심 같았다. 결과물을 보면, 완벽하지 못한 논리와 그 논리를 포장하려 덕지덕지 붙여놓은 미사여구가 눈에 거슬렸다. 완벽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지도에 색칠하거나 팸플릿 문구 수정 등에 사로잡혀 하루를 온전히 낭비하기도 했다. 군에서의 보고자료는 “심플한게 최고야”라며 부족해도 자신감으로 밀어붙이던 업무 스타일이었는데, 민간에서의 사업보고서는 각종 수식과 통계 스킬들로 화려하게 덧칠하곤 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완벽주의에 동화된 팀원 한 명의 독단적인 행동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저 열심히 스스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그에게 많은 기대를 해왔지만, 점차 초반에 설정한 팀의 방향과 어긋나기 시작했다. 팀장(또는 팀 전체)과 공유되지 않은 외부 이해관계자와의 일정이나 합의사항이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발표 논리 수정을 끊임없이 하는 독주가 시작됐다. 발표자료를 마무리하고 발표자의 연습이 필요한 시점에 논리가 새로 개발되고 있었고, 팀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회고해 보면, 이 프로젝트를 '답이 정해진 문제를 푸는 것'처럼 접근했던 그와 '사업이란 본디 불확실성에 관한 것이니 답은 없다'라는 지론의 필자는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필자는 과거 군에서 2년간 복지시설 대표로 근무한 경험에서 '대응'에 초점을 두곤 했다. 사업은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기회가 왔을 때 준비된 자가 되는 게 사업 성공의 길이라 생각했다.
* 이를테면 인구 구조의 변화, 규정의 완화, 국내외 정세, 대체제의 가격 변동, 원자재/유가상승, 문화 트렌드 등 사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변수를 읽어내고 그 흐름에 올라타기 위한 준비가 사업계획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종에서 심사를 맡은 임원들마저도 어차피 정답을 모를거라 굳게 믿었다. 필자는 불확실에도 계속 밀고 나가는 자신감과 대응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당신들 팀 사업 계획에는)
ㅁㅁ 리스크에 대한 검토도 들어있어?
-라는 질문에,
"네. 그럼요 그 부분은 000으로 대처할 생각입니다."라는 답변을 준비하기 위해 질의응답에 총력을 집중하고 싶었다.
결국, 그와 필자는 프로젝트의 마지막 3일 동안 부딪치게 된다.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는 주변의 압박 속에 발표자료를 제출하기 위한 마지막 2일을 앞두고, 필자는 결정해야 했다.
그의 의견에 따라 논리보강을 더 할 것인가
vs
필자의 의견대로 발표준비로 넘어갈 것인가
여기서 필자는 팀장으로서 의사결정을 해야 했고, 발표자료를 마감하고 싶어 하는 팀원과 발표자의 불안감을 줄여주기 위해서라도 결정을 미룰 수 없었다. 그리고 급한 마음에 내린 결정에서 감정적인 발언으로 실수도 저지르고 만다.
P 씨. 사업은 원래 불확실한 겁니다.
지금 와서 보강한다고 더 그럴듯해 보이지 않아요.
이제 그쯤 하면 됐으니 마무리 지으시고
다른 팀원들 준비할 시간도 주셔야죠!!
그의 이글이글하던 눈빛이 식어버리고, 타오르던 열정에 찬물을 부어버린 발언이다. 그리고, 필자는 이 말을 한 그날을 아직도 많이 후회한다. 군간부로 살아온 지난 7년간 인내력을 많이 배워왔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의 감정적 밑바닥을 보였던 부끄러운 순간이다. 조금 더 빨리 결단을 내렸다면, 팀의 혼란과 불안을 막을 수 있었을 것 같다. 별일 아닐 수 있지만, 필자는 이 발언 이후로 군 간부로 살아온 공식이 더이상 안 통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제부터라도 '민간인'이 되어야겠다는 뒤늦은 결심도 했다.
이때가 최종 발표자료 제출 마감까지 40시간 남은 시점이었다. 시간은 야속하게도 부지런히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