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없는 세계 ④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중국은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황금 시장'이었다. 중국의 산업화와 도시화가 플라스틱과 합성섬유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렸고, 한국은 지리적 이점을 살려 이를 공급하는 주요 수출국이 되었다. 한때 한국 석유화학 수출의 40% 이상이 중국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 황금 시장이 사라지고 있다.
중국의 에틸렌 생산능력은 2020년 약 3,500만 톤에서 불과 3년 만인 2023년에 5,000만 톤을 넘어섰다. 3년 사이에 약 1,500만~2,500만 톤 규모의 에틸렌 설비가 새로 가동되기 시작한 것이다(S&P Global). 한국 전체의 에틸렌 생산능력이 약 1,270만 톤이니, 중국은 한국 전체보다 더 많은 물량을 불과 몇 년 사이에 추가한 셈이다.
결과는 자급률의 급등이다. 2015년 약 50%에 불과하던 에틸렌 자급률은 2020년 65%, 2023년 80%를 넘었고, 2025~2026년에는 사실상 100%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급률 100%란 중국이 자국 수요를 자체 생산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더 나아가 일부 범용 제품에서 중국은 이미 순수출국으로 전환하고 있다.
증설의 주역은 중국 국유 석유기업과 민간 대형 화학기업이다. 시노펙, CNPC 같은 국유 기업들이 기존 설비를 확장하는 한편, 헝리석화, 저장석화 같은 민간 기업들이 수백억 달러 규모의 초대형 콤플렉스를 신규 건설했다. 이 신규 설비들은 연간 에틸렌 100만~200만 톤 규모의 메가 플랜트로, 한국의 개별 NCC보다 훨씬 크다.
양적 팽창만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중국 석유화학의 약점이던 제품 품질과 안정성이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COTC(원유직접분해) 공정을 채택하거나 정유-석유화학 통합 콤플렉스를 건설하여, 원유 한 배럴에서 화학제품을 뽑아내는 비율을 극대화하는 설비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범용에서 특수로' 전환하면 중국과의 경쟁을 피할 수 있다는 전략이 거론되지만,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서도 중국이 빠르게 자급 능력을 키우고 있어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다.
석유화학산업에서 수익성을 판단하는 핵심 지표가 '스프레드'다. 제품 가격에서 원료 가격을 뺀 차이, 즉 마진이다. 예를 들어 에틸렌-나프타 스프레드는 에틸렌 가격에서 나프타 가격을 뺀 것이다.
NCC를 운영하려면 나프타 구매비 외에도 에너지비, 인건비, 감가상각비 등 고정비가 든다. 스프레드가 톤당 300달러라면, 에틸렌 1톤을 팔 때 나프타 원료비를 제외하고 300달러가 남고, 이 돈으로 나머지 비용을 충당해야 한다. 스프레드가 톤당 200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대부분의 한국 NCC에서 적자가 발생한다.
2023~2025년 동안 아시아 시장의 에틸렌-나프타 스프레드는 장기간 손익분기점 부근 또는 그 이하에 머물렀다. 중국의 대규모 증설로 에틸렌 공급이 넘쳐나면서 에틸렌 가격이 하락한 반면, 나프타 가격은 유가에 연동되어 일정 수준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에틸렌뿐 아니라 PE, EG, PP 등 주요 제품의 스프레드도 동반 하락했다. NCC를 돌리면 돌릴수록 적자가 쌓이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이것이 석유화학산업의 전형적인 경기순환이라고 주장한다. 석유화학은 역사적으로 3~5년 주기의 호황과 불황을 반복해왔다. 대규모 증설 → 공급과잉 → 불황 → 비효율 설비 폐쇄 → 공급 감소 → 호황. 이 패턴대로라면 현재의 불황도 '지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의 판단이다. 과거에는 공급과잉의 주역이 여러 나라에 분산되어 있었고, 증설 규모도 시장이 흡수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었다. 지금은 중국이라는 단일 국가가 전 세계 시장 균형을 바꿀 만한 규모의 증설을 단기간에 수행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석유화학을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자급률 100%를 넘어 수출국으로 전환하려는 의지가 분명하다. 몇 년 기다리면 해소될 '일시적 과잉'이 아니라, 시장 구조 자체가 바뀌는 '영구적 변화'에 가깝다.
한국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가동률을 낮추면 고정비 부담이 늘고, 완전 가동하면 적자가 확대된다. 수출 시장을 다변화하려 해도 어디에서나 중국산과 경쟁해야 한다. 비용을 줄이려 해도 나프타 가격은 유가에 연동되어 통제할 수 없다.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유럽에서도 나프타 기반 NCC의 수익성 악화가 심각하다. 네덜란드와 프랑스에서는 이미 노후 NCC의 폐쇄가 진행 중이다. 일본도 2010년대부터 NCC 통합·감축을 추진해왔다. 나프타 기반 석유화학이 세계적으로 구조적 어려움에 처해 있으며, 이 흐름은 중국의 공급과잉이 해소되더라도 쉽게 되돌리기 어렵다.
정부가 NCC 생산능력의 18~25%(연 270만~370만 톤) 감축 목표를 내놓은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1,270만 톤 가운데 200만~300만 톤 이상을 줄인다는 것은, NCC 2~3기를 영구 폐쇄하거나 감산하겠다는 의미다. 반세기 성장 신화의 반전이다.
결국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중국과 같은 범용 제품에서의 가격 경쟁에서는 승산이 줄어들고 있다.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다. 고부가가치 스페셜티 분야로 전환하여 기술 격차를 유지하거나, 원료 구조 자체를 바꾸어 저탄소·순환 원료·공급 안정성이라는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다음 회에서는 세 번째 위기를 살펴본다. EU가 세계 최초로 '탄소 국경'을 세웠다. 탄소 비용을 내지 않고 만든 제품은 유럽에 들어갈 수 없는 시대가 열렸다.
S&P Global Commodity Insights(구 IHS Markit), 중국 에틸렌 생산능력 추이
산업연구원(KIET), 석유화학 산업 구조 분석 자료, 2023~2024
넥스트(NEXT),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넷제로 로드맵", 2024
산업통상자원부, "석유화학산업 구조혁신 방안",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