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의 시대는 끝나고 있다

플라스틱 없는 세계 ③

by 조종주

플라스틱 없는 세계 #3

석유의 시대는 끝나고 있다


2025년 여름, 여수 석유화학단지의 여천NCC가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업계를 긴장시켰다.

여천NCC는 LG화학과 GS칼텍스가 합작하여 운영하는 나프타분해설비로, 여수 단지에 에틸렌과 프로필렌을 공급하는 핵심 시설이다. 이 시설이 적자라는 것은, 나프타를 사서 에틸렌을 만들어 팔아도 돈이 남지 않는다는 뜻이다. 밸류체인의 맨 앞단에서 이익이 나지 않으면, 뒤에 연결된 수십 개의 중간재·최종재 공장들도 연쇄적으로 어려워진다.


여천NCC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롯데케미칼은 2023~2024년 대규모 영업적자를 기록했고, LG화학조차 기초소재 부문의 이익이 크게 줄었다.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18~2019년 호황기의 10% 이상에서, 2023~2024년에는 한 자릿수, 일부 기업은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이전의 침체와는 성격이 달랐다. 과거에도 유가 급등기나 글로벌 경기 후퇴기에 실적이 악화된 적은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경기 회복과 함께 실적도 돌아왔다. 이번에는 달랐다. 경기는 완만하게 회복되고 있었지만, 석유화학의 수익성은 돌아오지 않았다. 정부가 NCC 생산능력의 18~25%(연 270만~370만 톤) 감축을 공식 목표로 내놓은 것은, 이 위기가 구조적 문제라는 판단에서였다.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축소'를 공식 의제로 놓게 되었다.


이 구조적 위기에는 네 가지 얼굴이 있다. 자원 고갈과 탄소중립, 중국발 공급과잉, 탄소 국경 규제, 원료 공급망의 취약성. 이 네 위기는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강화하고 증폭시키는 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이번 회부터 네 회에 걸쳐 이 위기를 하나씩 살펴본다.



'피크 오일'에서 '피크 수요'로


석유가 언젠가 고갈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수십 년 전부터 반복되어 왔다. 1970년대에는 '피크 오일(peak oil)' — 석유 생산이 물리적 한계에 도달하여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한다는 이론 — 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셰일혁명, 심해 유전 개발, 비전통 석유(오일샌드 등) 기술의 발전으로 석유 생산량은 오히려 늘었고, '피크 오일' 예측은 번번이 빗나갔다.


2020년대의 논의는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피크 오일(공급 정점)'이 아니라 '피크 수요(demand peak)'. 석유가 땅속에서 바닥나기 전에, 인류가 석유를 덜 쓰게 되는 시점이 먼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전기차 확산, 재생에너지 보급, 에너지 효율 개선 등으로 운송과 발전 부문의 석유 수요가 감소하면, 석유의 경제적 매력도 줄어든다.


IEA의 분석이 이 전망을 뒷받침한다.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는 넷제로(NZE) 시나리오에서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석유 수요가 현재의 절반으로 줄어든다. 현행 정책이 유지되는 STEPS 시나리오에서도 석유 수요는 2030년대에 정점을 찍은 뒤 완만하게 감소한다. 어떤 시나리오를 취하든, 석유가 영원히 늘어나는 시대는 끝나고 있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 석유 수요 감소의 주된 동인은 운송 부문의 전기화다. 석유화학 원료 용도의 석유 수요는 오히려 증가하거나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IEA는 석유화학이 2030년까지 석유 수요 증가의 최대 동인이 될 것이라 밝혔다(IEA, 2018). 자동차가 전기로 달리게 되더라도, 플라스틱은 여전히 석유에서 나와야 하는 구조다.


이것은 한편으로 석유화학의 원료 확보가 당장 급하지 않을 수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석유화학이 화석연료 의존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 환경 규제의 집중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석유화학에 특유한 문제도 있다. 한국의 석유화학은 정유산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나프타는 정유소에서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의 부산물이다. 전기차 확산으로 휘발유·경유 수요가 감소하면 정유소 가동률이 떨어지고, 나프타 생산량도 함께 줄어들 수 있다. 운송용 석유 수요의 감소가 석유화학 원료 공급의 불확실성으로 이어지는 간접적 경로가 존재하는 것이다.



NCC는 왜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가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선언이 이어졌다. 한국도 2020년 10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석유화학산업은 탄소중립에서 빠져나가기 어려운 산업이다. NCC에서 나프타를 열분해하려면 800~900℃의 초고온이 필요하다. 이 열을 얻기 위해 천연가스나 나프타 자체의 일부를 태운다. 기본적으로 화석연료를 태워 열을 얻는 구조다. NCC 하나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연간 수십만 톤에서 수백만 톤에 달한다.


울산·여수·대산 석유화학단지는 각각 해당 지역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원이다. 직접 연소 배출, 증기 생산, 공정 중 플레어(여분의 가스를 태우는 것) 배출까지 합치면 탄소 발자국은 결코 작지 않다.


석유화학에는 '공정 배출'이라는 독특한 문제도 있다. 에너지를 사용하면서 나오는 온실가스뿐 아니라, 화학 반응 자체에서 CO₂가 발생한다. 더구나 석유화학 제품은 그 안에 탄소를 내장하고 있다. 플라스틱이 수명을 다한 뒤 소각되면 내장된 탄소가 CO₂로 방출된다. 전체 생애주기를 고려하면, 석유화학의 탄소 발자국은 공정 배출만으로 측정할 수 없을 만큼 크다.



탄소 비용이라는 현실


탄소중립은 '좋은 일'만이 아니다. 규제와 비용의 문제다.


한국은 2015년부터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K-ETS)를 시행하고 있다. 석유화학 기업을 포함한 대형 배출원은 할당된 배출 허용량을 초과하면 배출권을 시장에서 사야 한다. 한국의 배출권 가격은 톤당 수만 원에서 10만 원대까지 변동하며, 장기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구체적으로 계산해보자. 배출권 가격이 톤당 약 2만 원이고, NCC 하나가 연간 200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고 가정하면, 무상 할당분을 제외한 초과 배출에 대해 수십억~수백억 원의 비용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 현재는 무상 할당 비율이 높아 실제 부담이 제한적이지만, 유상 할당 비율은 점진적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EU의 배출권 가격은 한국보다 훨씬 높다. EU-ETS 가격은 톤당 50~100유로(약 7만~14만 원) 수준으로, 한국의 3~5배에 달한다. 한국 배출권 가격이 장기적으로 EU 수준에 수렴한다면, 석유화학 기업의 탄소 비용 부담은 현재의 수 배로 늘어난다. 이미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들에게 경영을 위협하는 수준이 될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석유를 원료로 사용하는 한, 탄소 배출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탄소 포집·저장(CCS)으로 공정 배출의 일부를 줄일 수는 있지만, 제품에 내장된 탄소까지 해결하려면 원료 자체를 바꿔야 한다. 바이오매스, CO₂, 재활용 플라스틱 같은 비화석 원료로의 전환은 탄소중립 관점에서도 필수적이다.


석유가 바닥나기 전에, 석유를 쓸 수 없는 시대가 먼저 오고 있다. 바닥나는 것은 석유가 아니라, 석유를 태울 수 있는 여유다.


다음 회에서는 두 번째 위기를 살펴본다. 한국 석유화학의 최대 수출 시장이던 중국이, 3년 만에 한국 전체보다 많은 설비를 지었다.



참고 자료

IEA, "The Future of Petrochemicals", 2018

IEA, "World Energy Outlook", 2024

넥스트(NEXT),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넷제로 로드맵", 2024

산업통상자원부, "석유화학산업 구조혁신 방안", 2024

한국거래소, 배출권거래제(K-ETS) 시장 동향


브런치 헤더 석유화학플렌트.png


플라스틱 없는 세계 #3 - 석유의 시대는 끝나고 있다

월, 목, 토 연재
이전 03화에틸렌 1,270만 톤의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