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국경이 세워지고 있다

플라스틱 없는 세계 ⑤

by 조종주

플라스틱 없는 세계 #5

탄소 국경이 세워지고 있다


2023년 10월, EU가 세계 최초로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BAM)'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복잡하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탄소 비용을 내지 않고 만든 제품은 유럽에 들어갈 때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지불하라는 것이다.

아직 석유화학 제품은 직접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왜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이것을 세 번째 위기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CBAM은 왜 만들어졌는가

EU는 자체적으로 배출권거래제(EU-ETS)를 운영하며 역내 기업들에게 탄소 비용을 부과해왔다. EU-ETS 배출권 가격은 톤당 50~100유로(약 7만~14만 원)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앞서 제4화에서 다룬 한국의 K-ETS(톤당 수만 원)와 비교하면 3~5배에 달한다.

문제는 이 비용 격차가 만드는 불공정 경쟁이다. EU 기업만 탄소 비용을 부담하면, 탄소 비용이 없거나 적은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 가격 경쟁에서 유리해진다. EU 기업이 돈을 들여 탄소를 줄여도, 해외에서 탄소를 많이 배출하며 만든 저렴한 제품이 수입되면 전 세계 탄소 배출은 줄지 않는다. 이것을 '탄소누출(carbon leakage)'이라 부른다.

CBAM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입품에도 EU의 탄소 가격에 상당하는 비용을 물리겠다는 제도다. 세계 무역 질서에 '탄소 국경'이 세워지는 것이다.


CBAM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EU에 철강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이 있다고 하자. 이 기업이 철강 1톤을 생산하면서 CO₂ 2톤을 배출했다면, EU 수입업자는 이 2톤에 해당하는 CBAM 인증서를 구매해야 한다. 인증서 가격은 EU-ETS 가격에 연동되므로, EU-ETS 가격이 톤당 70유로라면 철강 1톤당 140유로(약 20만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다만 한국 기업이 이미 국내에서 탄소 비용(K-ETS)을 지불했다면 그만큼 차감된다.

일정은 두 단계로 나뉜다. 2023년 10월~2025년은 과도기로, 수입업자가 탄소 배출량을 '보고'하는 의무만 부과된다. 아직 돈을 내는 것은 아니다.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탄소 비용이 부과될 예정이다. 초기 적용 대상은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전력, 수소의 6개 품목이다.


그림06-1_CBAM요약.png [그림 06-1] EU CBAM 주요 내용 요약표 (시행 시기, 적용 범위, 과도기 의무, 본격 시행 내용, 가격 기준, 한국 석유화학 영향을 정리한 요약표)


여기서 주목할 것은 '향후 확대 전망'이다. EU는 적용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며, 유기화학 제품과 플라스틱이 포함될 가능성을 업계에서 높게 보고 있다. 시간의 문제일 뿐, 석유화학이 CBAM의 대상이 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판단이다.


한국 석유화학에 미치는 세 가지 영향

첫째, 직접 수출보다 간접 영향이 크다. 한국의 대EU 석유화학 수출 규모 자체는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국산 합성수지로 만든 자동차 부품이나 전자 제품이 EU에 수출될 때, 그 안에 포함된 석유화학 소재의 탄소 발자국이 문제가 된다. 완성품 수출업체들이 공급업체에 저탄소 소재를 요구하기 시작하면, 그 압력은 밸류체인을 따라 석유화학 기업에까지 전달된다. 최종 제품이 아니라 원료를 만드는 산업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넓은 범위에서 영향을 받는 것이다.

둘째, CBAM은 전 세계적 확산의 시작이다. 영국은 이미 자체 CBAM을 발표했고, 캐나다·호주·일본 등도 유사한 제도를 검토하고 있다. EU만의 특수한 규제가 아니라, 글로벌 무역의 새로운 규칙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의 주요 수출 시장들이 잇따라 탄소 국경 규제를 도입하면, 탄소 배출이 높은 한국 석유화학 제품의 수출 경쟁력은 구조적으로 약화된다.

셋째, '저탄소 프리미엄'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유럽의 BASF, 코베스트로, 리옹델바젤 같은 글로벌 화학기업들은 이미 탄소 발자국을 줄인 인증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BASF는 '매스 밸런스(mass balance)' 인증 제품을, 코베스트로는 재생에너지로 구동되는 공정을 확대하고 있다. '저탄소 화학제품'이 프리미엄을 받는 시장이 열린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이 흐름에 뒤처지면, 가격 경쟁뿐 아니라 시장 접근성 자체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국내 규제도 조이고 있다

탄소 국경은 해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규제 환경이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

2024년 시행된 순환경제사회전환촉진법은 플라스틱의 재활용 비율 확대와 재생원료 사용 의무화를 규정하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에는 화학적 재활용(열분해 등)에 대한 투자 압력과 재생원료 사용 비중 확대 의무가 함께 부과된다.

정부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의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한다. 석유화학산업은 산업 부문 배출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며, 배출권거래제의 할당량은 점진적으로 축소될 예정이다.

탄소 배출 구조 자체가 변하지 않는 한, 규제 강화는 비용 상승으로 직결된다. 배출권 구매 비용, 재활용 의무 이행 비용, 저탄소 공정 전환 투자 비용 — 이 모든 것이 이미 수익성이 악화된 기업들에게 추가적 부담이 된다.

제4화에서 K-ETS와 EU-ETS의 3~5배 가격 격차를 살펴보았다. 한국 배출권 가격이 장기적으로 EU 수준에 수렴한다면, 석유화학 기업의 탄소 비용은 지금의 수 배로 뛴다. 여기에 CBAM까지 더해지면, 국내에서도 수출에서도 탄소 비용의 벽에 부딪히는 구조가 된다.

탄소 규제의 쓰나미는 EU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그리고 한국 국내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국 석유화학산업은 그 파도 앞에 서 있다.


다음 회에서는 네 번째이자 가장 즉각적인 위기를 살펴본다. 2026년 2월 28일, 호르무즈 해협이 막혔다. 나프타가 오지 않는다.


참고 자료

EU 공식 규정, Regulation (EU) 2023/956 (CBAM)

산업통상자원부, "탄소국경조정메커니즘(CBAM) 대응 방안", 2024

환경부, "순환경제사회전환촉진법" 시행 안내, 2024

넥스트(NEXT),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넷제로 로드맵",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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