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아줌마의 세상
여름 내내 더위에 기가 죽었던 역마살이 가을바람 타고 솔솔 일어났다. 일기예보에 맑음이 뜨면 "오늘은 피곤하니 그냥 쉴래" 하다가도 아니지, 이런 날씨가 아무때나 오는 게 아니므로, "기운내자 기운내자"를 되뇌이며 서식지를 나선다. 이번 목적지는 광릉 숲길과 국립광릉수목원이다. 그동안 대중교통으로 국립수목원에 가기 힘들었지만 최근 광릉숲길이 개통되어 오남역 3번 출구에서 2번, 2-2 등등 2번대 버스를 타면 봉선사까지 갈 수 있고,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광릉숲길을 걸어가면 수목원에 갈 수 있다. 이 정도면 뭐, 껌이지!
일찍 눈을 뜬 김에 대충 챙겨서 나와 오남역으로 향했다. 버스는 꽤 자주 있는 편이어서 굳이 시간을 맞출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참고로, 광릉숲길에는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일단 봉선사 입구에 들러 화장실에 가야한다. 봉선사에 도착하고 시계를 보니 오전 7시반이 조금 넘었다. 숲길은 오전 5시 반에 오픈이어서 상관없는데 수목원은 9시부터 입장하기 때문에 너무 이른 시간이 분명했고, 봉선사에 멋진 연꽃 연못이 있다고 들었으므로 거기부터 가기로 했다. 물론 연꽃은 지고 없겠지만 뭐든 있겠지 모!
내 예상이 맞았다. 뭔가 있었다! 입구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넓은 연못이 나오고, 정말 거대한 연잎들이 가득했다. 여름철 연꽃이 필 무렵에는 사람들로 북적일테니, 이른 아침에 가는 게 나을 거 같다.
연못을 지나 계속 들어가 사찰 경내도 둘러봤다. 아래 왼쪽 동종은 1550년대 정도에 만든 것이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시간이 남아서 들어가본 곳이지만 가길 잘 한거 같고, 계절별로 가고 싶다. 현재 서식지에서 대중교통으로 쉽게 갈 수 있어서 더더욱 좋다.
사찰 입구에서 왼쪽으로 가면 곧바로 광릉 숲길로 들어설 수 있다.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지난 수해로 데크길 일부가 무너져서 길이 끊어졌다는 거고, 봉선사에서 수목원까지 가는 유일한 버스는 21번인데 거의 1시간 반에서 2시간 마다 온다는 거고. 끊어진 길은 도보 10분 정도였다. 잠시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일단 가보기로 했다.
숲길은 모두 데크길로 이어져서 가기 쉽고 중간중간 오솔길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오전 9시부터 개방인데, 야생동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경고표시가 있으니 동행이 있을 때 가야할 듯 하다. 데크길을 따라 걸어가다보니 왕릉인 광릉이 나왔고, 거기서부터 길을 막아놔서, 가는 길은 딱 하나, 갓길로 조심조심 걸어가는 거였다. 근데 통행량도 적었고,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들도 있어서 그냥 한번 가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좁다고 생각했지만 몇 미터 가니까 갓길이 꽤 넓어져서 그럭저럭 괜찮았다. 결국, 기어코, 우여곡절 끝에 광릉수목원에 도착하니 8시 50분! 입장권은 단돈 1천원! 9시에 칼 입장했다.
여긴 처음은 아니었다. 여행사 당일치기 여행에 들렀던 곳으로 그때 주어진 시간이 1시간 미만이어서 정말이지 미친 듯이 걸어서 전나무숲만 겨우 보고 나가야했다. 이번에는 시간이 많으니까 천천히 둘러볼 수 있고 날씨도 좋아서 힐링하기 딱 좋았다. 살짝 가을 느낌도 났다.
양치류 정원도 자니가고....
날씨가 예술! 아래는 열대온실 아래쪽 정원인데, 이곳과 아열대온실 앞쪽 정원이 제일 예뻤다.
아래는 열대 & 아열대 온실 앞쪽 정원이다.
아래 사진에 나오는 커다란 녹색쟁반처럼 생긴 애들도 살아있는 식물이다. 첨에는 조형물인 줄 알았음!
아래는 열대 온실이다. 모두모두 정말 거대해서 조금 무서울 정도였다. 얘네들이 잡식성이라면 마녀아줌마 같은 멸치족들은 단숨에 잡아먹힐 거 같았다.
아래는 아열대 온실인데, 열대식물에 비해 크기가 작아서 그나마 친근했다. 난대 온실은 지금 보수 중이라 들어갈 수 없다.
수목원에도 작은 계곡이 있다.
아래는 육림호이다. 여기도 연꽃 피는 계절에는 정말 이쁠 거 같은데, 지금도 이쁘고, 단풍드는 가을에 오면 또다른 느낌이겠지.
아래는 전나무숲이다. 지난 번 여행사 당일상품에서 유일하게 들를 수 있었고, 그때 기억이 났다.
전나무 숲을 지나 좀 더 가면 숲의 정원이 나온다. 과거에 곰사육장이었던 곳을 개조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길 가려면 짧긴 하지만 강렬한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하는데 그래도 가보길 추천한다.
그래도 천천히 꼼꼼하게 보려고 했지만 워낙 넓어서 하루에 둘러보기 힘들고, 수해 때문에 막아놓은 곳도 많아서 다음에 또 와서 봐야겠다.
참고로, 오남역에서 봉선사 가는 길에 전통시장이 있다. 장이 열리는 날인지 사람들이 무지 많았고, 사실 시간 상으로도 시장에 들를 수 있었지만 새벽부터 여섯시간 정도 걸었더니 체력이 방전되어서 다른 날을 기약하며 그냥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