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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 Sep 23. 2023

J도 P로 만드는 날씨-양양 여행

뚜벅이 아줌마의 세상구경

혈액형 혹은 MBTI로 누군가를 규정하는 것을 그리 신뢰하는 편은 아니지만, 너무 유행이길래 뒤늦게 해본 결과 INFJ 라고 나오더라. 그 중 J 성향은 계획적이라고 하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요즘 날씨는 '계획적'인 사람도 '충동적'으로 떠나게 만든다.


어제 새벽운동 할 때까지만 해도 별 생각없다가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보며 이런 날 집에 있으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인터넷으로 양양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예매했다. 가는 길에는 일반버스 딱 1 장이 남아있고 오는 길에는 다행히(!) 우등버스를 예약할 수 있었다. 30분 뒤, 나는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두시간 걸린다더니 그건 아니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에는 버스전용차선이 없는 거 같았다. 넉넉잡아 3시간은 잡아야 할 거 같고, 돌아오는 길에도 상습 정체구간이 있어서 그 정도 걸렸다. 왕복 거의 6시간을 차 안에서 보내야 했지만 맑고 푸른 하늘과 파란 바다와 하얀 파도, 격이 다른 소나무는 그 정도의 노력을 들인 가치가 있었다. 


워낙 급하게 간데다 양양은 첨이라 어딜 가야할 지 몰라서 버스타고 가면서 검색했고 그냥 낙산사-하조대비치에 가면 되겠다 싶었다. 물론 낙산사에 가서 마음이 좀 바뀌어서 하조대 대신 낙산비치에서 놀다 오긴 했다.


양양 버스터미널에서 9번 버스를 타고 낙산사로 갔다. 버스는 생각보다 자주 있어서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낙산 정류장에서 내려서 네이버 지도를 보고 걸어가니 낙산사가 나왔고, 낙산사는 몇 십년 전 중학교 때 친척들과 가서 일출을 본 이후 처음이었는데, 엄청 크고 주변 경치가 너무 예뻤다.  


가장 먼저 해수관음상을 보러 갔다. 사실 낙산사가 작다고 생각했고 여기서 해수관음상을 본 다음 바로 하조대로 가려고 했다가 힐링하기에 적합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어 좀 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대부분 둘 혹은 가족이 왔지만 나처럼 혼자 와서 바다 멍 때리는 사람들도 꽤 되었다. 의상대로 가면서 여기저기 돌아가니기 시작했다. 칠층석탑, 아름다운 연꽃 정원, 범종 등등 딱히 불교신자는 아니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상대는 예상보다 낮은 위치라서 해수관음상이 까마득하게 보였고, 그 아래 바다가 가까와서 비릿한 바다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만약 양양에 산다면 가끔 여기와서 멍때려도 정말 좋을 것 같았다.  

그 다음에는 낙산비치로 갔다. 낙산사에서 걸어내려오면 갈 수 있다. 하조대에 가려면 마음이 급하고, 어차피 다 연결된 바다이고 서핑을 할 게 아니므로 어디든 상관없었다. 

낙산비치는 여름 성수기도 지난 평일이라 조용했다. 누군가의 눈에는 '썰렁'할 테지만 바다 멍 때리러 온 내게는 파란 하늘과 구름과 파도와 해풍 맞고 자라는 소나무와 내 그림자면 족했다. 바닷가에 오면 늘 하는 것처럼, 아이스크림 하나 먹으면서 바다 보고 걷고... 강원도 소나무는 자태부터 우렁차다. 소나무를 아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으나 강원도에 가면서 부터 좋아하게 되었다. 그 옆으로 데크 길이 한없이 뻗어있었다. 시간만 많으면 한없이 걸어가 해가 지면 어딘가에서 맥주 한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1박 이상하게 되면 꼭 한번 해보고 싶다. 


낙산 비치 모래사장에서 멍때리다 데크 길을 걷고 군데 군데 놓여있는 그네의자 혹은 벤치에 앉아서 사진을 찍다가  '조산'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9번을 타고 버스터미널로 돌아왔다. 사실 여기서 양양시장에 갔어야 했다. 근데 어떤 분이 양양시장과 양양전통시장을 헷갈려서 내게 시장이 4일과 9일에만 열린다고 알려줘서 안갔는데 낙산사-낙산비치-양양시장, 이렇게 가면 뚜벅이 하루 일정으로 딱 맞았을텐데 조금 아쉬웠다. 초행길이고 아무 정보도 없이 덜렁 왔으니 뭐 하나 빼먹는 게 당연하겠지. 다음에 또 오라는 이유를 만들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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