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체력 탈출

by MoonQ

남자들이 흔히 갖고 있는 강함에 대한 동경 때문인지 어릴 때부터 운동을 배워왔다. 초등학생 때는 태권도, 중학생 때는 검도를, 고등학생 때는 선배들의 시범에 반해 우슈를 하게 되었다. 태권도와 검도는 체육관만 다니는 정도였지만 우슈는 여러 대회를 통해 나를 객관화하고 성장하게 한 무술이다. 일반 사람들에게 생소한 이 무술은 배우 이연걸 씨가 한 무술로써 시연 종목과 격투 종목으로 나뉜다.

​첫 대회는 격투 종목으로 출전했다. 성향상 시연 쪽이 맞았지만 몸을 만들고 구사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대회는 3일간 진행됐다. 첫날 계체가 있었는데 몇 그램 초과로 인해 팬티를 벗는 선수도 있었다. 워낙 안 찌는 체질인 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회가 시작되었고 같이 출전한 형들이 먼저 경기를 치렀다. 형들도 첫 대회였는데 기량은 나와 비교 불가였다. 한 형은 낭심을 가격 당하는 치명타를 입었지만 소나기 같은 주먹을 뿌리며 경기를 지배했다. 다른 한 형은 상대의 기에 밀렸지만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가며 가까스로 예선을 통과했다. 다른 선수들의 경기도 이어졌는데 코트에 올라가면 멀쩡히 내려오는 사람이 없었다. 코피가 터지거나 절뚝거렸고, 기량 차로 기권을 하는 선수도 있었다. 드물지만 KO 상황도 나왔다.


지루함에 지칠 때쯤 내 차례가 다가왔다. 경기장으로 내려가 코트를 보니 긴장감이 고조됐다. 과묵하지만 늘 성실하게 운동하던 선배가 동행해 주었다. 선배는 글러브와 헤드기어를 장착해 주며 말했다. (선배는 이날 경기에서 기절하고, 경기에 대한 기억을 상실했습니다. 훗날 국가대표가 됩니다.)


"쳐다보지 마. 더 긴장돼."


오랜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었다. 코트에 올랐고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실전은 달랐다. 긴장감에 체력 소모는 가속화됐고, 시야가 좁아졌다. 상대도 긴장한 탓이었을까 견제 타격을 몇 번 주고받으니 빈틈이 보였다. 빈틈을 빠르게 공략했고, 예상보다 쉽게 1회전을 따낼 수 있었다. 의자에 앉으니 빠른 심장 박동과 거친 숨소리가 느껴졌다. 선배가 보호대를 느슨하게 풀어주며 코치를 해줬지만 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거친 호흡으로 2회전에 임했고, 어느새 나는 천장을 바라본 채 누워 있었다.


'젠장...'


메치기를 당한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체력마저 소모되고 있었다. 바닥난 체력에 주먹은 추진력을 잃고 허공을 헤맸다. 가드는 내려가고 유효타를 허용하며 코피가 흘렀다. 패배를 직감했지만 끝까지 하고 싶었다. 마음과 달리 주먹과 발은 상대에게 꽂히지 않았다. 3회전까지 끝나는 종소리가 울렸고,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대퇴부에 묵직한 통증이 전해졌다.


며칠 후 경기 영상을 모니터링하는데 도저히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기술이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기본이자 핵심인 체력이 문제였다. 내 영상을 본 관장님은 1회용 체력이라며, 체력 안배의 부재를 말씀하셨다.


이후로도 나는 체력 문제에 부딪혔다. 군대에서 야간 근무 중 졸아 선임에게 걸린 일. 하루에 3타임 이상 강의를 진행하면 진이 빠지는 등. 체력 증진과 안배가 필요했다.


운동은 필수였다. 생활에 치이며 운동을 중단했던 나는 다시 운동을 결심했다. 시간 확보를 위해 새벽 운동을 시작했지만 하루가 피곤해지는 역효과가 났다. '시간이 지나면서 몸이 적응하겠지.' 생각했지만 오판이었다. 종목이 문제인가 싶어 웨이트, 배드민턴, 검도, 달리기 등 종목을 바꿔봤지만 여전히 피곤했다. 방법을 달리해 운동 시간을 저녁으로 변경했다. 하루 동안 쌓인 피로가 풀리며 몸에 활력이 돋았다. 내게 맞는 적절한 운동 시간을 찾으면서 새벽은 머리 쓰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독서를 하거나 공부를 했다.


새벽 활용의 변화도 필요했다. 수년간 인풋 하는 삶에서 올해 들어 아웃풋을 시도했다. 익숙한 걸 좋아하는 뇌는 각종 저항을 일으켰지만 점차 적응하면서 삶의 생산성이 올라갔다.


체력을 관리하는 나만의 루틴을 찾기까지 수년간의 시행착오가 있었다. 늦은 밤까지 활동하기보다 적게 자더라도 새벽에 일어나는 삶. 새벽에는 머리를 쓰고, 저녁에는 운동하는 삶. 아마 평생을 이렇게 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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