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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트리버를 좋아해 Mar 06. 2024

인스타그램이 나를 공격했다

타인과의 비교로부터 오는 우울감에서 해방하고자, 1년전 인스타그램 어플을 지웠었다. 그 후 내 삶은 편의점의 달고 짠 가공식품이 아닌, 슴슴하고 담백한 자연식품처럼 단조로워졌다. 여긴 꼭 가봐야한다는 맛집을 방문하여 한끼당 4~5만원의 음식을 위해 내 신용카드를 긁는 대신, 구내식당을 방문하여 한끼당 4천원의 건강한 음식을 위해 식권을 구매하곤 했다. 주말 낮에는 유튜브나 넷플릭스가 내 도마핀을 분출시키게하고, 밤이면 친구들과의 소주한잔이 내 위장을 휘젓게하는 대신, 낮에는 헬스장에서 근력 운동과 스트레칭, 밤에는 독서를 즐김으로써 내 근육과 전두엽을 강화하곤 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니, 나는 꽤 단단하고 평온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욕구로부터 해방된 부처님이 된 것만 같았다. 바퀴돌듯 하루하루 비슷한 일상이 반복됐지만 나는 오히려 행복했다. 누군가 나에게 '요즘 넷플릭스 ㅇㅇ가 재밌다던데' 라던지 '불금인데 술한잔 어때?' 라며 유혹해도 고3의 수험생마냥 흔들리지 않았다. 어떤 자극적인 그 무엇이 나에게 들이닥쳐도 눈깜빡안할 자신이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새 자만심이라는게 내 마음안에서 싹을 피우고 있었던 것일까. 어느날 이상하게도 나 스스로를 테스트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들었다. 그 새로운 싹은 결국 내 스마트폰에 다시 인스타그램을 다운로드하도록 만든것이다.


'별거 있겠어?' 라는 심정으로 인스타그램에 접속하여 내 계정으로 로그인을 한 다음, 천천히 화면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장 최근에 업로드 된 친구들의 일상 사진이 눈앞에 펼쳐졌다. 동네 맛집을 방문하여 찍은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 트렌디하게 인테리어된 카페에 방문하여 찍은 커피와 디저트 사진들이 내 눈길을 끌었다. 또한 설연휴를 맞아 따듯한 동남아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멋진 친구들의 사진도 있었고, 연인과 함께 국내 여행을 즐기고 있는 사진도 많았다.


'다들 즐겁게 살아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드문드문 들었지만, 고작 이것가지고는 나를 타인과 비교하게하여 내 삶에 불행을 가져다주진 못했다. 이런 사진들은 그들의 삶 중 행복한 순간들만 담겨있는 것이고, 그 순간들을 벗어나면 그저 평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다시 스마트폰 화면을 오른손 검지손가락으로 쓸어내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지독한 알고리즘때문인지,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인플루언서들이 올린 사진과 영상들이 나를 자극시키기 시작했다. 과거 내가 좋아하는 패션스타일로 멋지게 치장한 모델 사진, 푸른 하늘아래 초록한 잔디위에서 멋진 옷을 입고 힘차게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의 영상 그리고 새하얀 눈이 덮고있는 산에서 여기가 바로 정상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바위와 함께 웃으며 찍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들이었다.


순간 내 뇌에서 도파민이 마구마구 분비되는 것 같았다. 나는 이성을 잃은채 요새는 어떤 스타일의 옷이 인기가 많은지, 이렇게 깔끔하고 쾌적한 시설을 갖춘 테니스장은 도대체 어디인지, 국내 아름다움의 극치를 느낄수 있는 산은 어디에 있는지를 끝없이 탐색하고 있었다. '이 셔츠를 사면 내가 가진 바지와 입으면 어울리겠는데?', '나도 지금 당장 테니스치러 가고싶다', '이번 주말에 저 사진속에 있는 산에나 가볼까' 라는 생각들이 내 정신을 뒤덮었다. 그와 동시에 '내가 지금 여윳돈이 없는데 사긴 뭘사..', '내가 과연 저기 가볼 시간이 있겠어..'라는 생각들이 다시 몰려왔다.


이와 함께 나도 모르게 작은 한숨이 살짝 내쉬어졌다. 정말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한숨이지만, 나는 그 행위를 발견해버렸다. 곧바로 허겁지겁 인스타그램 어플을 닫고, 그대로 그 네모난 어플 모양을 꾸욱 눌러 '삭제하기'를 눌렀다. 그리곤 다급하게 휴대폰 화면을 꺼버렸다. 화면은 꺼졌지만 내 뇌에 있는 도파민은 여전히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내 표정이 멍해지는 것을 눈치챘다.


나는 도대체 그 짧은 시간에 어딜 갔다가 온 것일까. 다시 휴대폰 화면을 켜서 시계를 보니 그렇게 짧은 시간을 인스타그램에 머물지는 않았다. 체감상 5분이였지만 실제로는 30분이 흘러있었다. 저 멀리 다른세상에 길지만 짧았던 여행을 다녀온 듯 했다. 다녀오니 우울감이 나를 반겼다. 무엇이 가상이고 어떤것이 현실인걸까. 나도 그 인스타그램에 있는 세상속으로 직접 가야만이 내 삶이 온전하게 살아숨쉬게 되는 것일까. 무척이나 혼란스러웠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가 점차 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평온했던 내 원래의 진정한 삶으로 돌아가고자, 휴대폰을 저 구석 멀리 던져버렸다. 실수를 해버린 것이다.

나는 내 삶이 아주 평온하고 단단하여 어떤 자극이 들어와도 흔들리지 않으리라 자만을 했던 것이다. 내 주위 지인들과의 비교는 아무것도 아니였지만, 무시무시한 알고리즘의 강력함을 간과해버린 것이 패착이었다. 앞으로 다시는 인스타그램을 다운로드 하지 않을 것이다. 내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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