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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돈 벌었어!

by 송대근
“엄마! 나 돈 벌었어!”


딸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소리칩니다. 작은 아파트 거실에 순간 활기가 도네요. 부엌에서 국을 끓이던 엄마가 고개를 돌립니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난리니?”

“저번에 산 주식이 엄청 올랐어!”

“그래? 팔았어?”

“아니.”


딸이 환하게 웃네요. 하지만 엄마는 국자를 내려놓으며 눈썹을 찌푸립니다.


“팔아야 네 돈이지. 어서 팔아.”

“아니야, 더 오를 것 같아.”


엄마의 말은 잔소리처럼 흘러갑니다. 딸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만지작합니다.

욕심부리지 마라. 그러다 다들 잃는 거야.”

“엄마는 주식을 몰라.”


딸의 짧은 대답이 공기를 가르자, 엄마의 입술이 살짝 굳습니다. 주식을 몰라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짧은 말이 더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엄마의 기억


엄마에게 돈은 늘 지켜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IMF, 카드대란, 금융위기 같은 굵직한 사건들이 남긴 상처는 깊었지요.


수많은 가정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빚에 쫓기고, 집을 잃고, 길바닥에 나앉은 사람들. 그 시절의 기억은 엄마 또래에게 공포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안전’을 가장 큰 미덕으로 삼습니다. 은행 예금은 이자가 미미했지만, 밤잠은 편히 잘 수 있거든요.


돈을 불리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딸의 세상은 어떨까요?




딸의 세상


딸이 태어났을 때 대한민국은 이미 선진국의 반열에 있었습니다.


금융 시스템은 과거보다 튼튼해졌고, 투자라는 말은 더 이상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죠. 유튜브, SNS, 각종 투자 커뮤니티가 지식의 길을 쉽게 열어 줍니다.


무엇보다 집값이 달라졌어요. 엄마 세대가 십여 년간 모아 대출을 보태 내 집을 마련했던 시절은 지나갔습니다.

청년들에게 집은 현실이 아닌 신기루예요. 아무리 아껴도 내 집 마련의 가능성은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그래서 딸은 결심했을지도요.


“집값이 얼마나 비싼데. 월세 살면서 주식해서 집 사는 게 낫지.”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니? 저축하면서 전세 살다 집도 사는 거지.”


엄마는 한순간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세계에서는 ‘월세 살면 돈 못 모은다.’는 공식이 당연했거든요. 그러나 딸의 세상에서는 그 공식은 이미 무너져 있었습니다.




월세? 전세?


“엄마, 전세란 게 결국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거야. 내 돈을 그대로 맡기는 거라고. 옛날에는 집값이 계속 올랐으니까, 새 세입자를 구해서 전세금을 올려 받고 돈도 돌려줬겠지. 근데 지금은 집값이 비싸서 더 오르기 어렵다고 하잖아. 그러면 집주인이 돈을 안전하게 돌려줄 보장이 없어.”


엄마는 미간을 좁히며 물었죠.


“그래도 월세보단 낫지 않겠니? 월세는 매달 돈이 줄줄 새는데.”


딸은 고개를 젓습니다.


“아니야. 집주인이 전세금을 주식이나 다른 투자도 할 수도 있잖아. 만약 망하면? 내 돈도 같이 사라져. 뉴스에 봐봐, 전세금 못 돌려줘서 울고불고하는 거. 나 그거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해.”


잠시 정적이 흘렀다. 딸이 잠시 엄마의 눈치를 보는 듯했지만, 곧 고집스러운 빛이 되살아납니다.


“그래서 주식이 나아. 전세보단 주식이 희망 있어.”


그럼에도 엄마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월세는 매달 일정한 돈이 빠져나기에, 자금을 모아나가기 힘듭니다. 그럼에도 딸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합니다.


‘전세금이 한순간에 떼이는 건 상상도 하기 싫어. 차라리 월세 내고 남는 돈으로 투자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잘되든 못되든 주식은 내 탓이지.’


‘자기’의 의견이 중요한 세대인 만큼, 남의 잘못으로 전세금이 날아가는 꼴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엄마의 결론은 분명했습니다. 최선은 매매죠. 대출을 안고라도 자기 집을 마련하는 것. 오래됐더라도, 도시에서 멀더라도, 내 집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인생의 안전망입니다.



안전한 삶?


“엄마는 맨날 안전만 찾잖아. 그렇게만 살면 언제 부자 되는데?”


딸은 가볍게 뱉은 듯했지만, 엄마의 가슴을 파고듭니다. 엄마에게 ‘부자’ 보다는 ‘성공’ 이 꿈이었습니다.


안정된 직장, 평생 고용, 내 집 한 채, 자식 대학까지 보내는 삶. 그것이 곧 성공이었습니다.


그러나 딸은 다릅니다.

평생직장은 사라진 지 오래고, 내 집 마련은 희망고문처럼 들립니다. 그러니 ‘도전’을 선택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엄마는 안쓰럽고, 동시에 불안했어요. 딸이 너무 큰 파도 앞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결국 엄마가 입을 닫았습니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 대신 나중에 후회는 하지 마라.”


딸은 웃으며 말했다.

“히히. 돈 많이 벌면 엄마도 맛있는 거 사줄게요~” “퍽이나.”


거실에는 웃음소리가 흘렀지만, 그 웃음 뒤에 묵직한 불안이 함께 앉아 있습니다.




같은 돈, 다른 생각.


주식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내립니다.


딸에게는 오늘의 상승이 희망이지만, 엄마에게는 내일의 하락이 불안이거든요. 같은 그래프를 보면서도, 두 사람의 시선은 전혀 다른 곳을 향합니다.


엄마는 돈을 ‘지켜야 할 것’으로 보았고, 딸은 돈을 ‘기회’로 바라봅니다. 서로 같은 식탁에 앉아, 서로 다른 세상을 살고 있지요.


주식과 전세, 월세와 매매. 정답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없고, 미래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돈은 언제나 마음을 흔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돈은 안정인가요 불안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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