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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저런 데서 결혼하고 싶다.

by 송대근
“나도 저런 데서 결혼하고 싶다.”


한적한 주말 오후, 딸이 TV 속 연예인의 화려한 결혼식을 보며 중얼거립니다.

눈빛에는 설레는 마음과 동경이 가득 담겨 있네요.


남자친구도 없으면서 벌써 결혼을 꿈꾸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조금 걱정스럽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초 치지 않고 지켜보고 맙니다.


“엄마, 엄마는 결혼식 어디서 했어?”

“어디더라, 너희 할머니 댁 근처 교회에서 했지.”

“교회? 엄마 교회 안 다니잖아.”

“그때는 다 그냥 그랬어. 웨딩홀이 따로 많지도 않았고. 너희 아빠가 결혼식 싸게 한다고 몇 달 전부터 갑자기 교회 다니더니, 결국 그렇게 됐지.”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웃음이 터질 법한 이야기입니다.

그땐 선택지가 많지 않았고, 신랑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왔다면 곱게 따르는 게 당연지사였고요.


딸이 다시 묻습니다.

“엄마는 좋은 결혼식장에서 하고 싶지 않았어?”

“하고야 싶었지.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니? 여자가 무슨 돈이 있어. 결혼하고 나서야 돈을 만졌지, 그전에는 번 게 다 집안으로 들어갔어.”


“엄마도 일했잖아. 그 돈은 다 어디 갔는데?”

“너희 외삼촌 대학 보내느라 다 썼겠지.”


딸은 어이없다는 듯 눈을 굴리며 말했다.

“참내, 어떻게 그렇게 살았대.”


세상이 달라졌음을 실감합니다. 예전에는 가족을 위해 개인의 꿈과 돈을 기꺼이 내놓았지만, 지금은 자기 몫을 챙기는 게 우선입니다.

요즘은 여자들도 일찍부터 자산을 모으고, 결혼 비용도 능동적으로 분담하고요.


그렇다면 딸은 어떤 결혼을 꿈꾸고 있을까요?

“너는 어떻게 결혼하려고 해?”

“나? 나는 반반씩 나눠서 할 거야.”


반반이라. 자신의 몫이 들어간 만큼 목소리도 커질 겁니다. 돈이 절반 들어가는데 원하는 식장 정도는 당당히 요구할 수 있겠죠.


“그래? 그럼 지금까지 얼마나 모았는데?” “비밀이야, 헤헷.”

대답을 흐리는 걸 보니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가 봅니다.




딸의 결혼 준비, 반반의 계산법


“얘, 결혼은 식만 올린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집도 구해야지.”

“집은 남자가 해오겠지, 뭐.”

“반반 한다며?”

“나는 혼수 하면 되잖아. 그럼 반반이지.”


아직은 잠꼬대에 가까운 대답입니다. 그래도 반반이라니, 자기 몫이 있다는 점에서 엄마와는 다른 세대죠.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습니다. 결혼에는 생각보다 큰돈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신혼집 전세금 : 최소 1억 5천 / 대출 80% 시 현금 약 3천만 원

결혼식 및 스드메, 신혼여행, 예물예단 : 약 3천만 원

혼수가전 및 가구 : 약 2천만 원


합계: 약 8천만 원


따라서 따님은 4천만 원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걸 시간으로 환산해 볼까요?


매 달 100만 원씩 모으면? 3년 4개월

매 달 50만 원씩 모으면? 6년 8개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착실히 모아야만 가능한 계산입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준비가 없다면, 결국 이런저런 상황에서 “엄마가 조금은 도와주겠지”라는 기대가 스며들지도 모릅니다.



엄마의 마지막 선물?


이제 엄마의 마음은 복잡해집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면 결혼 자금, 적어도 전세금 정도는 도와주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죠.


하지만 이쪽 현실도 녹록지 않습니다. 바로 노후준비 때문이죠. 최근 국민연금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노부부 생활비는 아래와 같습니다.


최소 : 월 220만 원

적정 : 월 300만 원


이제 65세부터 90세까지 25년간 산다고 가정하면, 이렇습니다.


220만 × 12개월 × 25년 = 6억 6천만 원

300만 × 12개월 × 25년 = 9억 원


여기까지 보면 숨이 턱 막힙니다만, 다행히 부부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이 약 월 110만 원이라, 약 3억 3천만 원 정도는 부담이 덜어집니다.


그럼에도 3억~6억 원 수준의 노후 자금은 남겨놔야 안심이 됩니다.




엄마의 지원, 축복일까 부담일까?


옛날에는 형제자매가 많아 부모가 특정 자녀만 도와주곤 했지만, 지금은 외동이나 둘이 대부분이죠. 그래서 양가 모두 지원을 해주는 분위기가 당연스레 여겨집니다.


문제는 여기서 ‘체면 경쟁’이 붙는다는 것입니다.


사돈댁에 밀리면 안 된다는 자존심.

우리 아이 기 죽일 수 없다는 보호 본능.


이게 지나치면 결혼 시작부터 기싸움이 되고 맙니다. 축복이 되어야 할 결혼식이 경쟁의 장으로 변하는 순간, 신혼의 행복은 이 가게 됩니다.




무리한 지원, 노후 부양 부담


더 큰 문제는 무리한 지원이 결국 부모의 노후를 자녀에게 전가한다는 점입니다. 엄마가 노후에 써야 할 돈을 딸 결혼식에 보태준다면, 그 순간부터 딸은 엄마의 노후를 책임져야 합니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야.”


이 말은 아름다울지 모르지만, 이면에는 “앞으로 내 노후는 네가 맡아야 한다.” 가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엄마를 책임지고 사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신랑 입장에서는 그 ‘엄마’가 ‘남의 엄마’라는 점입니다. 미리 합의되지 않은 부담이 얹힌다면 부부 관계에 깊은 상처가 남을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언젠가 부담은 가족갈등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딸의 로망, 엄마의 바람


딸은 아직 꿈꾸고 있습니다. 드레스를 입고, 환한 조명을 받으며, 많은 축복 속에서 손을 잡고 서는 그날을.


엄마는 그날을 상상하며 속으로 되뇝니다. “그래. 네가 반짝이는 신부가 되는 순간, 나는 그냥 웃으며 눈물만 닦고 싶구나. 아무 걱정 없이, 네가 행복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동시에 현실은 냉정합니다. 부모가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고, 딸이 스스로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진짜 축복일지도 모릅니다.


결혼은 로망현실의 경계에서 준비됩니다.

부모의 마음은 언제나 주고만 싶지만, 노후라는 무게는 피해 갈 수 없습니다.


자녀의 결혼을 위해 어디까지 지원하는 게 맞을까요?


노후와 지원 사이, 당신은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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