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용돈 좀 올려줘.”
저녁상을 차리던 손이 덜컥 멈췄습니다. 이제 막 대학교 2학년이 된 둘째 딸이 불쑥 내뱉은 말 때문입니다. 일 년 학비만 해도 적지 않은데, 거기에 생활비까지 신경 쓰자니 가슴이 답답합니다.
“한 달에 20만 원이면 충분하지 않니?”
“내 친구들은 다 50만 원씩 받아요.”
“그건 그 집이 잘 사는가 보지.”
“아 몰라, 오늘 동아리 나갈 돈도 없다니까.”
딸은 투덜거리며 10만 원을 더 받아내고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정 돈이 부족하다면 아르바이트라도 해보면 될 텐데, 그런 얘기를 꺼내면 늘 대답은 같습니다.
“그러면 공부할 시간이 없어요.”
이 장면, 아마 많은 부모들이 낯설지 않을 겁니다. 아이가 커 갈수록 손 벌리는 일은 잦아지고, 요구 액수는 점점 더 커집니다. 부모로서는 여유가 있다면 못 줄 이유가 없지만, 살림이 빠듯하다면 난감하기만 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사실 자녀의 요구가 잦아지는 것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닙니다. 자녀가 부모를 여전히 ‘가장’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어릴 때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전부였습니다.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돈도 함께 쓰이게 되죠. 학원비, 간식비, 장난감. 그러다 보니 아이는 어느 순간, 사랑과 돈을 구분하지 못한 채 ‘돈=관심,사랑’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합니다.
이 착각은 부모에게는 곤란한 문제를 안깁니다. 부모가 많은 돈을 쓰는 것이 곧 많은 사랑이라고 믿는 아이, 반대로 돈이 줄면 사랑도 줄었다고 느끼는 아이. 그런 사고가 굳어지면 자녀는 부모에게 돈을 당연하게 요구하고, 부모는 지쳐갑니다. 결국 집 안에서는 사랑 대신 돈만 오가는 관계가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에게 분명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돈과 사랑은 별개다. 돈이 없어도 가족은 행복할 수 있고, 돈이 많아도 불행할 수 있다.” 이 구분을 배우지 못하면, 세상에 나가서도 돈이 곧 사랑이라고 믿는 잘못된 가치관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딸의 시선으로 돌려보면, 억울한 사정이 있습니다.
대학생이 되면 돈 쓸 일이 정말 많습니다. 밥값만 해도 한 달 20만 원은 훌쩍 나갑니다. 전공서적은 한 학기에 수십만 원이 필요합니다. 도서관에 비치된 책은 경쟁이 심해 원하는 때에 빌리기 어렵고, 그래서 아낀다고 제본해 쓰기도 하지요.
빠듯하게 맞춰 쓰다 보면 동아리 회비나 친구들과의 커피 한 잔도 부담됩니다. 모임에 자주 빠지면 “왜 맨날 안 나오냐”는 오해도 받습니다. 돈이 없다는 말을 차마 입 밖에 내기 어려워, 결국 소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또 있습니다. 20대 초반, 자산이 없는 청년들에게 소비가 곧 권력입니다. 어느 모임에서든 돈을 넉넉히 쓰는 친구가 중심이 됩니다. “오늘 내가 쏠게”라는 말 한마디에 분위기가 확 달라집니다. 소비력이 없는 학생은 점점 뒤로 밀려나고, 상대적 박탈감은 쌓여 갑니다.
그 박탈감은 종종 부유한 친구에 대한 분노로 바뀝니다.
“쟤는 부모 잘 만난 게 전부야. 불공평해.”
부모 세대의 경제 격차가 자녀 세대의 좌절로 이어지는 순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있습니다. 딸의 요구는 단순히 ‘철없는 투정’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에서 겪는 구조적 불평등의 반영이라는 점입니다.
돈 많은 부모에게 태어난 아이는 교육, 경험, 인간관계 모든 면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습니다. 같은 노력이라도 출발선 자체가 다릅니다. 반대로 보통 가정의 아이는 늘 뒤처지는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부모 입장에서 자녀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이때 필요한 건 두 가지입니다.
첫째, 사랑과 돈을 분리해 가르치는 것.
둘째, 자녀에게 경제 교육을 시작하는 것.
예를 들어,
가계부 일부를 공개해 가정의 재정 상황을 자녀와 공유하기
돈을 ‘밥값, 교재비, 여가비’처럼 항목별로 배분해 보기
일정 기준 이상은 스스로 벌어 쓰도록 작은 아르바이트 권유하기
이런 구체적인 방법을 통해 자녀는 부모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점차 독립적인 소비 습관을 익힐 수 있습니다. 부모는 무조건 “안 된다”라는 말 대신 현실을 설명할 수 있고요.
이 시기 자녀는 부모의 사랑보다 사회적 관계와 자기 정체성에 더 큰 가치를 둡니다. 그러니 부모는 자녀를 여전히 어린아이로 대하기보다 작은 가장으로 인정해 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네가 독립된 존재라는 걸 존중한다. 그러니 이젠 네 생활에 책임도 네가 함께 져야 한다.”
이 메시지가 분명히 전달될 때, 자녀는 비로소 ‘받기만 하는 존재’에서 벗어나 ‘스스로 책임지는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자녀의 용돈 문제는 단순한 가정사 같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가치관 문제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입니다. 누군가는 부모 덕분에 여유롭고, 누군가는 팍팍합니다. 하지만 결국 자본주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며, 우리는 그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합니다.
중요한 건 좌절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 세대가 조금 더 경제적으로 지혜로운 선택을 하고, 자녀 세대가 그 과정을 배우며 자란다면, 언젠가 우리 아이는 지금보다 훨씬 더 튼튼한 출발선을 갖게 될 것이니까요.
“엄마, 용돈 좀 올려줘.”
그 요구가 단순한 투정이 아니라, 한 사회의 구조와 가정의 철학이 맞부딪히는 순간임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조금 더 현명한 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