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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oA Dec 06. 2017

살아보지 않은 삶을 사세요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해당 글은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칠월'과 '안생'이다. 남자 주인공 '소가명'도 있지만, 그는 고민이 생기면 그저 달림으로써 그 고민을 지워버리는 인물이다. 원형의 트랙 위를 하염없이 달리는 행위처럼, 그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인생을 산다. 변함없이 실수하고 변함없이 내달리는.

 반면,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 기꺼이 살아보길 선택한 두 여자가 있다. '칠월'과 '안생'. 두 명의 서로 다른 삶은 상대를 당겼다 밀어냈다를 반복하다 이내 뗄레야 뗄 수 없는 고유명사로 자리매김한다. 이 영화의 중어 제목 또한 어느 미사여구 하나 없는 <칠월여안생(七月与安生)>이지 않은가.



 안생은 떠도는 삶을 살고, 칠월은 머무는 삶을 산다. 돌아갈 집이 있고 가족이 있는 칠월과 달리, 안생에게는 마음 편히 머물 수 있는 곳이 없다. 어린 시절, 안생이 칠월과 함께일 수 있었던 까닭은 안생이 갖지 못한 것을 칠월이 채워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칠월의 집에서 칠월과 안생은 마치 한 가족인 양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씻고, 함께 잠들 수 있었다.


 안생이 칠월의 곁을 떠나는 건 필연이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것으로 오해하는 일은 서러운 일이니까. 안생이 칠월의 연인인 소가명에게 호감을 느꼈을 때, 안생은 그동안 망각해 왔던 자신의 삶을 자각하고 이를 따르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싣는다.



 안생이 긴 방황을 마치고 칠월의 곁에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은 함께 여행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서로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온 둘이기에, 결국 여행 중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다투고 헤어진다.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례한 일인지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안생은 안생의 삶에서 치열하게 살아왔고, 칠월은 칠월의 삶에서 치열하게 살아왔을 뿐이다. 서로가 어우러지지 못하고 충돌을 빚는 것은 슬프지만 당연한 수순이다.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해서, 칠월과 안생은 기꺼이 서로의 삶을 살아보길 택한다. 머물기 시작하면 떠돌고 싶고, 떠돌기 시작하면 머물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심이니까.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에 따라, '칠월'과 '안생'이라는 이름의 독립적인 두 삶은 '칠월여안생'이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안생이 준 편지를 따라 그녀의 여정을 뒤따르는 칠월, 남부럽지 않은 살림 속에서 행복한 미소를 띄워 보내는 안생.


 하지만 여전히 안생은 안생이고, 칠월은 칠월일 뿐이다. 칠월과 안생이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 순간, 안생이 칠월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칠월이 그토록 살아보고 싶어했을 삶을 자신의 기억으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언뜻 하나로 이어진 것만 같은 두 개의 삶이지만, 두 사람 사이에 변함없이 자리한 접속사가 역설적으로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두 개의 삶을 구분해낸다.



 추가로 극 중 칠월의 어머니는, 변화를 꿈꾸며 안생의 삶을 살아보길 택한 칠월에게 '어느 길을 택하든 순탄치 않음'을 강조한다.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칠월과 안생의 개인적 서사에서 벗어나, '머무는 삶'과 '떠도는 삶' 전반의 이야기로, 그리고 어느 삶 하나 쉬울 게 없는 여성의 서사로 변모한다.


 나는 여전히 여성의 우정과 여성의 고난에 하나가 될 수 없다. 영화관 안에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슬퍼하고, 기뻐하며, 공감하지만 그들을 이해한다거나 위로할 수 있다는 자신은 품지 않는다. 여전히 나는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아보길 욕망하면서도, 끝내 그들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무력감에 시달린다. 감히 위로할 수 없는 타인의 삶을 옆에 두고도, '내 튼튼한 팔에 누워 기대'라며 자신 있게 말하던 안생의 모습이 부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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