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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우 Aug 04. 2015

Once

그들의 가장 빛나던 한때

사진첩을 뒤지다가 발견한 아주  오래전 사진의 필름처럼, 형광등 불빛에 이리저리 비춰 보고서야 형체가 각인되는 대학시절 어느 늦은 밤의 기억 한 토막. 그 장면은 후배의 느닷없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형, 형은 꿈이 뭐야?”

“꿈? 글쎄……, 꿈이 있기는 한데, 니가 들으면 웃을 거야.”

“……”

“나, 가수가 되고 싶어. 오래도록 노래하며 살 수 있는. 우습지?”

“우습기는. 형, 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형은 행복한 거야.”


괜스레 속마음을 들켜 버린 거 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리던 그 날 밤의 기억이 가끔씩 떠오릅니다. 이유 없이 배가 아플 때 그리워지는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처럼 말이죠. 새벽부터 일어나 밤늦게까지 먹고살기에 바쁜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마다 그 시절의 그 부끄럽던 꿈들이 생각납니다. 후배의 말처럼 그 꿈이라는 게 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구나 하는 뒤늦은 깨달음으로 쓴웃음이 한숨처럼 흘러갑니다.


그렇습니다. 꿈꾸는 사람들은 아름답습니다. 비록 그들의 현실은 전파상의 수리공이며, 거리의 악사이며, 가정부이며, 길거리에서 이런저런 물건을 파는 궁색한 모습이더라도 말이지요. 아니, 오히려 그들의 현실이 어두울수록 그들의 꿈은 더욱 선명하게 빛이 납니다.  

영화 'Once'에는 음악으로 빛나는 젊은이들의 꿈이 등장합니다. 거리에서 노래를 하다가 행인들이 던져 준 푼돈을 훔쳐 가려는 이를 뒤쫓아 가야만 하는 ‘그 남자’. 그는 그 어려운 현실 속에서 음악에 대한 자신의 꿈을 키워 갑니다. 그런 ‘그 남자’의 음악을 이해하는 ‘그 여자’가 있었으니, 그녀는 피아노 가게 주인의 배려로 점심시간에 가게의 피아노를 빌려 연주를 하면서 자신의 꿈을 지켜 갑니다. 그런 두 사람은 음악으로 만나 꿈으로 소통합니다.  


‘그 남자’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버림받고 아버지의 전파상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지냅니다. 사랑하는 여인에게 버림받은 이유는 아마도 현실적으로는 보잘 것 없는 그의 처지 때문이었겠죠. 그런 현실을 소재로 그는 음악을 만듭니다. 그리고 세상에 외칩니다. 그 외침을 들어 준 이가 바로 ‘그 여자’입니다. ‘그 여자’는 체코에서 온 이민자인데, 고향에 남은 남편 없이 혼자서 딸을 키우고 어머니를 부양하며 살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꽃을 팔고, 가정부 일을 하며 근근이 생활을 이어 가면서도 음악을 좋아하고 그것을 놓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서로 마음이 통합니다. 그러한 그들의 교감은 서로의 합주와 화음을 통해 우리의 영혼을 떨리게 합니다. 서로의 연주와 노래 소리를 존중하고, 거기에 자신을 화음으로 덧붙이는 어우러짐. 그 어우러짐은 노래 소리처럼 점점 그 울림이 커지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까지 자라게 됩니다.  


‘그 남자’는 자신의 음악을 이해해 주고, 자신을 북돋워 주는 ‘그 여자’가 좋았습니다. ‘그 여자’는 자신의 노래를 소중하게 들어 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 주는 ‘그 남자’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 남자’는 ‘그 여자’에게 자신의 집에서 자고 가면 안 되냐고 물었고, ‘그 여자’는 ‘그 남자’가 알아듣지 못하는 체코어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서툴고 조심스러운 그들의 사랑은 거기까지입니다. 음악과 현실 사이에서 그들의 사랑은 속내를 드러내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남고 맙니다.


‘그 여자’를 만난 ‘그 남자’는 ‘그 여자’의 도움으로 데모 CD를 녹음할 계획을 세웁니다. 밴드를 모으고 녹음실을 구하고, 이제 그의 꿈은 현실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듯합니다. 주말 동안의 밤샘 작업을 통해 데모 CD를 만들고 밴드 멤버들과 녹음 기술자는 바닷가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냅니다. 녹음의 초반에는 녹음의 경험도 없는 초짜들이라 그들을 무시하던 녹음 기사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을 듣고 나서 그는 그 음악에 놀라고 그들과 진실한 소통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의 모습에서, 이 낯설고 투박한 아일랜드 저예산 영화의 실체를 접하면서 기대 밖의 즐거움과 감동을 맛보게 된 제 자신을 봅니다.  


그들의 잔치는 끝나고 현실이 다시 찾아옵니다. ‘그 여자’는 돌아온 남편과 다시 가정을 꾸리고, ‘그 남자’는 옛 애인이 있는 런던으로 떠나갑니다. ‘그 남자’는 ‘그 여자’에게 피아노를, 아니 함께할 수 있는 음악을 선물합니다. 그들이 함께 있어서 가장 빛나던 한때는 그렇게 막을 내립니다. 어찌 보면, 그 아름다운 음악과는 달리 너무도 차가운 현실로 모든 것이 선명하게 정리되고 있습니다. ‘떠날 것’과 ‘돌아올 것’의 일사 분란한 움직임으로…….  

이런 현실 속에서 울려 퍼지는 그들의 음악이기에 더욱 아름답습니다. 그 아름다운 음악이 이끌어 가는 영화이기에 이 작품이 더욱 감동적입니다. 투박하고 담백한 인물이나 화면 속에 담긴 감정과 이야기는 신(Scene)들과 하나가 된 음악을 통해 확장되고 강조된 공감각적  이미지로서 관객들에게 다가옵니다.


그 음악은 ‘그 남자’와 ‘그 여자’가 척박한 현실 속에서 꿈으로 가장 빛나던 한때를 구체적으로 기억하게 하는 매체이기에,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많은 사람들이 음악이 더 뇌리에 남는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그 기억, 오래도록 갈 것입니다.


이제 다시, 제 꿈을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조금 더 현실화된, 제가 하고 싶은 그 무언가를. 그나마 꿈이 있어 행복한 저에게는 위안이 되는 영화입니다. 일상에 갇혀 하루하루를 어찌 살아가는지도 정리가 안 되는 자동화(自動化)된 삶 속에서, 내가 나로서 빛날 수 있는 방법을 노래해 주는 깨달음의 한때, 그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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