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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어 본 하늘은 아름다웠다.

두 눈으로 담은 하늘

오랜만에 다운타운을 다녀왔습니다.

3월 중순 영사관에서 중요한 서류 발급 신청을 했었는데, 갑자기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멈추면서 신청해 놓은 서류를 찾으러 갈 상황이 되지 않았답니다.


3개월 이상 서류를 방치하는 것은 안 좋을 거 같다는 영사관 직원분의 조언에 따라 딱 3개월이 된 날, 일까지 빼면서 신랑과 함께 다운타운 나들이를 갔습니다.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이 계속 있기도 하고, 영사관 안으로 아이들 입장이 안된다는 말씀에 아이들 넷을 집에 두고, 정말 몇 년 만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아이 없는 단 둘의 장시간 외출을 하였지요.


만 13살을 바라보는 큰 딸이 2년 전, Red Cross를 통해서 따 놓은 Baby Sitter Certificate가 있었기에, 아이들만 집에 두고 하는 이 외출에도 마음의 짐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답니다.


오전 9시에 건물 밖으로 나온 영사관 직원 분은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 한 명 한 명 방문 목적을 물어보고 번호표를 나눠줍니다. 영사관 민원실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수가 제한되어 있어서 번호표를 받은 사람만 정해진 시간에 입장하여 업무를 처리한다는 엄격한 규칙에 따라 움직여야 했지요.


이미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을 바라보며 일찍 들어가기는 포기했답니다. 그렇게 받은 번호표를 보며 그 시간이 되기까지 몇 시간 동안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근처에 보이는 샌드위치 가게에 들어가 랩을 하나 주문 했습니다. 넓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듬성듬성 설치되어있는 몇 안 되는 테이블이 놓여있는 음식점들은 아직 이른 시간이라 오픈 전이였고, 그나마 열려있는 커피숍들도 아직은 제약이 너무 많은 기분에 실내에서의 식사는 내려놓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을 즐기러 야외로 나갔습니다.


6월 중순까지 내리붓던 비가 멈추고 며칠 전부터 맑은 하늘을 보여주던 날이기도 했지요.

길을 따라 쭈욱 내려가면 보이는 제일 가까운 해변으로 발을 옮겨 닿은 곳은 페리 선착장이 있는 컨벤션 센터 근처.


그곳에는 올림픽 성화가 놓여있던 곳이 웅장하게, 그러나 더 이상 밝힐 것이 없는 쓸쓸한 기운을 내뿜으며 서 있었습니다.  


새로 닦아놓은 깨끗한 자전거길과 인도에는 중간중간 벤치가 설치되어 있어서 피곤한 다리를 잠시 쉬게 앉을 수 있었답니다.

그렇게 참 익숙한 사람과 새로운 공간에서, 사온 음식을 나눠먹으며 좌우를 바라보고 위를 바라보며 본 풍경은 제 시선을 고정시켜 버렸지요.


파란 하늘에 펼쳐진 구름은 저도 모르게 눈 앞에서 누군가의 손이 열심히 붓을 움직이며 그려대는 한 폭의 그림이 아닐까 하는 기분을 들게 만들었답니다.

참 신비로운 하늘을 보며 이제는 많은 대화가 어색한, 참 오래 함께해서 익숙한 사람과 잠시간의 여유를 즐겼습니다.

하늘도 물도 한없이 파랗기만 하니 경계가 있나 싶을 정도로 맑은 날이였습니다.
다운타운인 걸 실감하게 만드는 높은 빌딩이 펼쳐진 곳. 마주하는 다른 편은 하우스가 많아 대조를 이룬답니다.
세워진 경비행기들은 하늘을 날아보고 싶은 자들을 위해 대기해 있답니다. 체험을 원하는 자들을 위한..

긴 시간 외출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씩씩하게 아침과 점심을 잘 챙겨 먹었고, 그 덕에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엄마, 아빠로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벤치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다 문득 본 빈 공간에서 눈을 감아도 보이는 제 아이들의 모습이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아마 같이 왔으면 그렇게 눈 앞에서 정신없이 이 공간을 채웠을 제 아이들에게 '조심하라며, 사람이 온다고 보고 움직이라'며 잔소리를 했을 저의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메아리치는 듯한 기분으로.. 아이들이 없는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서 너무 소중한 하루를 오롯이 즐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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