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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지면 깨닫게 된다.

집 안에 있는 화장실이란

2011년 10월에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를 왔으니 벌써 이 곳에서 산지 10년째가 되어가는 중이다.

물론 월세로 사는 중이다. 여긴 전세가 없는 나라니까.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변기에 문제가 생겼고, 관리소에서 변기를 새 걸로 교체해 주었다. 당시에 욕조도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서 문의했더니 아직도 쓸만하다며 계속 쓰라는 답변을 주었다.


그렇게 상태가 좋지 않은 욕조를 그냥 써왔다.  코팅이 벗겨지면 좋지 않다 하던데, 계속해서 벗겨지는 코팅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는 반신욕을 포기하며 살아왔더랬다.


그런데 몇 주전 샤워를 하다 보니 너무나 많은 물이 샤워헤드로 가지 않고 밑에 수도꼭지도 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흐르는 물에 손을 대보니 뜨끈한 것이 뜨거운 물만 줄줄 새나 보다. 어쩐지 샤워할 때마다 그렇게 뜨거운 물을 많이 트는데도 뭔가 부족하다 싶더니 이유가 있었다.


공용 세탁실 옆에 있는 관리 사무소에 가서 물이 새는 욕조의 문제를 신고하기 위해 신청서를 가져왔다.

왜 이런 문제를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은지.. 머리를 굴려가며 열심히 설명을 적고 늦은 밤 관리 사무소 메일 박스에 쓰윽 넣어 놓고 왔다.


다음 날 아침, 누군가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나가봤더니, 매니저가 문 앞에 서 있다.


화장실 욕실로 들어가 수도꼭지의 문제점을 보더니 여러 연장들이 잔뜩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순식간에 수도꼭지의 문제점을 고쳐준 매니저를 붙잡고, 욕조에 대한 문의를 했다.


너무 상태가 안 좋으니 다시 코팅제를 발라달라는 나의 요청에, 아예 새로운 욕조로 바꿔주겠다는 답변을 주었다.

10년 이상된 욕조는 코팅이 너무 심하게 벗겨져 반신욕을 포기하고 살았다.

며칠이 지났다. 달칵 걸리는 소리와 함께 편지 하나가 떨어졌다. 다음 주 화요일에 욕조를 교체하러 온다는 안내문이었다. 그렇게 다음 주 화요일이 된 그날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매니저와 또 다른 남자분 2명이 함께 우리 집을 방문했다.


뒤로는 하얀 밴이 서 있고, 밖에 커다란 박스가 하나 서 있다. 새로운 욕조였다. 그렇게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시작된 욕조 교체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욕조를 하나 바꾸는것인데, 연결된 타일벽을 다 뜯어 내야 했다. 덕분에 생각보다 큰 공사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문제는 화장실이 하나라는 점이다. 욕조를 바꾸기 위해 벽을 따 뜯어내고 물 수급을 막은 탓에 화장실 변기를 전혀 쓸 수 없다는 게 문제 었다.


봄방학이라 하필 네 명의 아이들이 다 집에 있었고, 밖에서 실컷 놀다가 화장실을 쓰러 집에 온 아이들이 난리가 난 거다.

다들 앞 춤을 부여잡고 화장실이 급하다 난리인데, 나는 한창 수업 중이었고, 씻지도 못한 신랑은 나가질 않겠다고 버팅긴다.


결국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는 수업을 하다 말고 애들 넷을 차에 태우고 근처의 가까운 몰까지 달려갔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하나 시켜놓고 다섯 명이 줄을 서서 화장실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무슨 피난민 같은 기분이다.


이게 웬 난리인 건지, 변기의 부제가 주는 우리 가족의 하루가 이리 버거울 줄이야.


화장실 한 개로 여섯 식구가 사는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는데, 화장실에 집에 있는 것도 엄청 큰 고마움으로 느껴진다.


예전 사람들은 밖에 있는 화장실을 다녔을 텐데 얼마나 불편했을까 싶다.

결국 오전 9시 조금 넘어 시작된 욕조 교체는 오후 5시가 되어서 마무리되었다.


배고프면 먹고, 먹으면 나오는 게 생리현상 인지라, 이 날은 하루 종일 화장실에 가야 하는 아이들의 요구에 맞추어 근처 몰 화장실로 여행을 몇 번이나 갔는지 모르겠다.


그 어느 날 보다도 피곤하고 힘들었던 기분이다. 밤에 곯아떨어졌으니 말이다.


화장실이 하나라는 문제는 우리 여섯 식구에게 언제나 큰 해결책이 필요한 부분이다. 갈수록 올라가는 렌트비가 부담스러워 쉽게 이사 갈 수도 없는 통에, 그나마 저렴한 이 곳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사는 중이지만, 마음속에는 언제나 열심히 일해서 꼭 화장실이 두 개 있는 집으로 이사 가리라는 현실적인 꿈을 꾸고 산다.


그런 내가 그나마 집 안에 있는 화장실의 고마움을 절절히 느끼게 해 준 하루였던 거 같다.

역시 있다 없으면 감사함이 저절로 나온다.

이래서 부족한 게 없으면 감사함을 모르고 살게 된다는 걸까? 없는 거에 불평불만하지 말고 있는 거에 감사하며 사는 것이 살아가는 데 큰 힘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은 하루..

이런 교과서적인 깨달음이 또 나의 하루를, 나의 내일은 좀 더 의미 있게 바꾼 거 같아서 이 하루의 경험도 좋았다고 기억하고 싶다.


오전부터 늦은 오후까지 지속된 욕조 공사가 끝나니 이렇게 멋진 새 욕조가 생겨서 행복하다.


새 욕조를 쳐다보고 있으니 반신욕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꿈 툴 거리며 솟아난다. 이제 반신욕을 마음껏 즐겨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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