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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4일! 저 공부 시작해요.

캐나다 고등학교 졸업장 따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2년을 다닌 뒤 온 캐나다 어학연수에서 신랑을 만났다. 어린 나이에 불타는 사랑을 했고 부모의 반대를 이겨가며 결혼을 했다.

그렇게 축복인 아이 넷을 낳고 살았더니 나는 어느새 가방끈이 짧은 엄마가 되어있었다.


친정 엄마는 내 삶을 많이 부끄러워하셨다. 다른 집 자녀들은 대학도 잘 졸업하고 취업을 하며 그들을 삶을 개척할 때, 나는 아이들만 줄줄줄 낳아서 억척같이 살기만 하고 있으니 멀리 있어서 다행이었지 가까이 살았으면 매번 등짝을 한 대씩 맞으며 살았을 거 같다.


그렇다고 돈 있는 집에 시집가서 편히 사는 것도 아니었다. 부족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신랑을 만나 매번 힘들게만 살아가는 내 사정을 아시니 전화만 하면 속상한 마음에 욕만 잔뜩 늘어놓으시던 엄마였다.


넷째를 가졌을 땐, 친정 엄마가 너무 무서워서 임신을 했다는 말을 2개월간 꺼내지도 못하다가 겨우 꺼냈는데 거짓말 않고 30분간 전화에 대고 화를 내고 욕을 하셨다.


그러다 분에 차신 목소리로

"축하한다" 이 말씀 한마디를 남기신 뒤, 전화를 끊어버리셨다. 근데 그 30분간 들었던 화가 마음의 상처로 남지 않았다. 이미 셋을 키우고 있는 나로서, 넷까지 되는 애들을 키울 딸 걱정을 하는 엄마 마음이 너무 크게 느껴져 그냥 마음이 많이 아팠을 뿐이다.


그런 엄마가 나를 위로하고 다독여주며 잘한다, 잘한다 칭찬을 해주기 시작한 건, 내가 일을 찾고 나서였다.

신랑이 일을 그만두자마자 나는 5개월 만에 일을 찾아 나섰고, 당당히 캐나다 회사(마트지만)에 취직하여 일을 시작했다. 엄마는 영어를 쓰며 일하는 나를 대견스러워하셨다.


이제는 작년 4월부터 세컨드 잡을 찾아 투잡을 뛰는 날 항상 격려해주시고 응원해 주신다.


10대 때, 질풍노도의 시기에도 찾지 못한 내 길,

20대 때, 출산과 육아로 날 돌볼 겨를이 없어 생각조차 하지 않은 내 길,

30대 중반이 넘어서야 나를 돌아보며 찾던 내 길이 조금씩 선명하게 보이는 요즘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시도해 보고 싶은 것, 그리고 내가 그 길을 걸어가며 계속하고 싶은 일을 좀 더 뚜렷하게 찾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공부하자!

내가 버는 돈으로 생활이 되는 가정을 팽개치고 공부만 할 수 없는 현실, 내 학비를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내가 찾은 대안은 캐나다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자였다.


이미 고등학교 나온 내게 무슨 의미일까 싶다가도

'그래서 난 여기 고등학교 졸업자들만큼 영어를 하나?'라는 질문에 한 없이 작아지는 내 자신감을 보았다.


여기서 제대로 일하고 살려면, 살만한 영어를 하지 말고 그보다 더 능력을 갖추자 싶은 욕심이 생기자 더 이상 나를 막을 것은 없었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알아본 Adult Continued education program.

각 시마다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만 18세 성인이 다른 나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실력을 향상하기 위해 혹은 고등학교 졸업을 못한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졸업장을 얻을 수 있도록 운영되는 학교 프로그램이다.


다행히 영주권자와 시민권자들은 전과목은 아니지만 필수 과목들을 무료로 배울 수 있어서 책값만 내고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운 좋게도 예비 시험 없이 내가 원하는 English Study 12 수업을 신청했고, 2020년 2월 4일 첫 수업을 들었다.


하필 폭설이 내려서 혹여나 수업이 취소되나 했는데, 역시나 수업은 원래대로 진행되었고, 일이 끝난 뒤, 몰아치는 눈발을 헤치며 학교에 도착했다.

중간중간 눈 쌓인 길을 걸으며 미끄러워 넘어지는 줄 알았다. 출발은 밝을 때 하고 도착하니 어두운 저녁이다. 해가 그 사이 져버렸다.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30분이나 일찍 도착하여 잔뜩 긴장한 마음으로 앉아 혹여나 내가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그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워낙 다양한 인종이 모이고 서로 다른 실력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그런지 선생님의 말은 제법 잘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항상 이런 첫 수업에 가면 빠지지 않고 있는 3분 소개하기. 다행히 앞으로 나오란 소리는 없었지만, 3명의 다른 사람들을 만나 3분씩 이야기를 하고 맨 마지막 사람에 대해 발표를 해야 한단다.


정말이지 처음부터 스트레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다른 민족들이 만들어내는 서로 다른 영어 스타일이 나에겐 용기를 주었고, 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첫 발표를 완수했다.

앞으로 수업을 받을 교실. 조금이라도 잘 들어보기 위해 중간에 앉았다. 앞은 역시 부담스러우니까

수업을 시작하고 전체적인 수업 개요를 들으며 오는 멘털붕괴라니. 수업이 끝나는 마지막 날까지 책을 3권 읽고 에세이를 쓰고 발표를 해야 한단다.


마지막 과제는 그룹 발표라고.... 한국식 수업에 익숙한 나는 발표가 쉽지 않은데 어쩌나 싶다.

게다가 너무 오랜만에 공부했더니 적응이 안될라 그런다.


그리고 좀 더 나은 에세이를 쓰기 위해 문법을 정리한다며 수업이 끝날 때까지 문법을 배웠다.

나름 고등학교 때까지 영어문법 꽤 하는 편이었는데, 졸업 후 20년이 지난 나에게 좀 무리였나?


머리가 꽤나 아프다.


그리고 한국말로 주어, 동사, 전치사 설명을 듣는 게 아닌 용어 조차 전부 영어로 나오니, 더 헷갈린다. 그냥 영어는 영어 그대로 이해를 해야겠다. 한국말 사전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그 영어 단어의 뜻을 영어로 이해하기로 했다.


오늘 수업 3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집에 오니 머리가 너무 아프다.

'나 잘할 수 있겠지?'

이런 생각을 하며 프린트물을 펼치고 앉는다.

숙제도 해야 하고 오늘 배운 것도 복습하고,

원래 공부는 벼락치기였는데, 나이 들어서 할려니 어린애들처럼 하면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한번 해 보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미 문을 열렸고, 나는 안으로 들어왔다. 출구까지 가는 길에 어떤 장애물을 만나 고생할지 아직은 뚜렷하지 않지만, 이것도 못하면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살아남겠니?


한번 끝까지 극복하고 제대로 내 삶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쉬는 시간, 옆 교실에서 큰 아이 현재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밤에는 성인들을 위해 수업을 하신단다. 생각지 못한 만남에 깜짝 놀랐지만, 열심히 하라는 딸아이 선생님 말에 또 용기를 얻는다. 수업이 끝난 뒤, 우리 반으로 찾아오신 딸 선생님, 우리 반 담당 선생님께 우리 딸에 대해 알려주며 "Bright child"라는 말을 해주신다.


Bright Child를 가진 엄마답게 나도 그렇게 잘해보자 싶은 마음이 더욱 굳세게 들었다.


그 많던 스트레스를 뒤로하고 나니, 공부를 하고 배운다는 생각에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너무너무 좋다.

공부할 수 있게 된 지금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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