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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학교생활-생각이 필요한 숙제

Life Lesson Interview

주일 일정을 마치고 집에 오니 3학년인 셋째 아들이 절 붙잡고 한국에 계신 할머니께 전화를 넣으라고 난리입니다.


아이와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나타난 5학년 둘째 딸은 저를 붙잡고 숙제를 하자 난리입니다.

두 명이 양 옆에서 재잘재잘 거리니 정신이 쏘옥 날아가버리려 합니다.


이럴 때는 한 명씩 붙잡고 이야기하는 게 서로에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요.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던 아들과 마주하며 대화를 해 보니 할머니한테 숙제를 위해 인터뷰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질문 내용은 "What is the greatest life lesson in your life?"랍니다.


이 간단한 영어에서 나오는 심오한 질문에 머리가 지끈 거리지만 전화기를 잡은 손은 어느새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전화를 받으시기 무섭게 아이 숙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말이 서툰 아이는 옆에서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눈이 풀리려 합니다. 아무래도 심오한 대답들이 오고 가니 아이가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진지하신 친정 엄마는 이제 만 8살짜리를 데리고 이것저것 답을 해 주시는데 정말 옆에서 함께 듣는 제가 더 진지해지는 기분입니다.

"공부할 때 놓치고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어서 못한 게 후회가 되네"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하지 못한 것도 후회가 되는구나"

"건강을 제대로 챙기며 살지 못한 것도 그렇구나"


엄마의 답변을 듣고 있자 하니 엄마의 삶이 그려지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었던 형편과 상황에 선택을 고민할 수도 없이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 엄마는 얼마나 많이 힘드셨을까요?


그런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 하니 저는 그런 엄마의 희생을 통해 자란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엄마와 전화를 끊고 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말들을 쉬운 말로 바꾸어주고, 많은 답변들 가운데 아이가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답변을 골라 간단하게 알려줍니다.


얼마나 마음으로 느끼며 이해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만 8살 나이에 다른 사람의 인생을 들어보는 숙제라니...


이제는 만 10살, 5학년 딸과 얼굴을 마주하며 앉았습니다. 엄마의 삶 속에서 얻은 가장 큰 수업은 무엇이었을까요?


누가 그 엄마의 그 딸 아닐까 봐 저도 모르게 인생을 돌아보며  후회가 나옵니다.

"엄마는 엄마가 뭘 잘하는지 뭘 원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 후회가 되네."


역시 이 말도 어려웠나 봅니다.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절 쳐다보는 딸의 눈을 마주하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본인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안다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어릴 때, 친정 엄마는 저에게 많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여러 악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 태권도와 수영 같은 운동을 배울 수 있는 기회, 미술과 컴퓨터 등등 경험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말입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그 많은 것들을 해야만 하는 그 시간이 행복하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저는 항상 어딘가에 매여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어른이 된 저는 그 기회를 주셨던 엄마의 배려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가끔 4명의 아이들에게 제가 누렸던 사치와 같은 기회들을 주지 못하는 것에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많은 기회 속에서도 저는 왜 제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찾지 못했을까요?

한 번도 저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절 볼 수 있는 시간이 제게는 없었던 거 같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많은 시간을 주고 싶습니다. 심심해서 미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말이에요. 그  많은 시간을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아보는 기회로 쓰길 바랍니다. 밖에서 축구를 하고 싶으면 친구들과 축구를 하며 땀을 흘리고, 인형 옷을 만들고 싶으면 바느질도 해보고 움직이기 싫을 때는 가만히 누워서 시간도 보내보고 그러다 심심하면 괜히 종이도 찢어보고 접어보는 그런 시간들 말입니다.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자신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힘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만 21살의 나이에 부모님을 떠나 외국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써 내가 원하는 것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던 거 같습니다.


모든 순간과 선택들이 매번 옳은 순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 선택으로 인해져야 하는 책임을 스스로 해결하며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이 시간들이 저라는 사람을 만들어내고 있는 듯합니다.


아이들 숙제를 함께 하며 또 나름의 인생 공부를 해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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