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함께 음식을 한다는 거

누가 함께 할래?

오래간만에 일을 쉬고 온 휴가 덕에 쓰다만 글들을 마무리해 봅니다.

며칠 전 저녁은 카레였습니다.

일을 마치고 준비하는 저녁은 부담이거든요. 친정 엄마처럼 밑반찬을 해 놓고 먹는 편이 아니라 매끼 새로운 반찬을 해서 한 끼를 해결하는 편입니다.


나물 무침은 보통 2~3일을 먹지만, 만들어 놓은 밑반찬을 계속해서 먹는걸 가족 모두 좋아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래서 매끼마다 2~3가지 정도의 간단한 반찬을 만들고 그 날 다 먹는 걸로 식사를 하다 보니 일 끝나고 와서 준비하는 저녁은 항상 부담이 됩니다.


카레는 김치만으로도 한 끼가 해결되니 카레를 만들자 준비를 했습니다. 아침에 미리 사달라 부탁했던 돼지고기를 다듬고, 육수를 내며 감자와 당근, 양파 등을 함께 준비할라니 왜 이리 마음이 급한지


고개를 돌려 스윽 본 아이들의 모습에

"엄마랑 같이 음식 할 사람?" 외쳐보았답니다.


기대 않던 저에게 둘째가 "엄마 저요!" 외치며 다가오는데 얼마나 반갑던지.. 아이 두 손에 감자를 쥐어주고 감자 껍질 제거용 칼도 쥐어준 뒤.. 사용법을 알려주고 맡겨봅니다.


'날카로워 위험해. 이것도 칼이니 조심조심 천천히 해야 해'라는 주의도 주고 아이를 믿어봅니다.


양파를 채 썰어 커다라 wok에 넣어 살살 볶으며 고기를 다듬고 있자니, 큰 딸이 와서 익어가는 양파가 타지 않게 휙휙 저어줍니다.


문득 이제 커서 엄마를 도와주기 위해 양 옆에 서 있는 아이들의 존재가 작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약 2년 전, 큰 아이가 만 10살, 둘째가 만 8살이 되었을 때, 아이들을 불러 놓고 계란 프라이 만드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가스불이 아닌 전기 불이라 안전하기도 해서 화재에 대한 걱정을 조금 덜 하며 알려준 듯합니다.


프라이팬을 올리고, 불을 켜고, 기름을 두른 뒤 계란을 준비해서 프라이를 하거나, 스크램블 에그를 만드는 법을 직접 보여주며 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알려준 뒤부터는 계란 프라이는 아이들이 원할 때 언제든지 해 먹을 수 있도록 자유를 주었습니다. 특히 오전마다 도시락 네 개를 싸며 정신없는 제가 아침을 못 챙겨주니 아이들 스스로 계란 프라이에 얇은 햄 슬라이스를 넣어 밥과 김을 챙겨 아침을 먹는 습관이 그때부터 생긴 듯합니다.


어떤 날은 제가 늦잠을 자서 점심해줄 시간이 없으니 큰 딸과 둘째 딸이 계란과 슬라이스 햄을 조리해 밥과 김을 챙겨 학교 도시락을 만들더군요. 기특하게 동생들 거도 하나씩 맡아서 준비해 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아이들이 부엌에 와서 일을 돕는 것이 더 이상 귀찮은 일이 되지 않은 듯합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다칠까 전전긍긍하며 옆에 오면 혼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준 신뢰가 많이 쌓인 듯합니다.


이제 만 8살인 셋째도 계란 프라이를 혼자서 제법 잘 만듭니다. 누나 둘이 음식 하는 걸 보고는 본인도 하고 싶어 하길래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작년부터 가르쳤습니다.


이제 6살인 막둥이도 배우고 싶어 합니다. 요즘은 녀석이 원할 때마다 지켜보며 조금씩 원하는 걸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중입니다.


음식 할 때 필요한 통마늘 까는 걸 아들들한테 시키면 둘이 앉아서 껍질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빈 그릇에 껍질 벗긴 마늘을 넣어가며 좋아합니다.


몇 주 전부터는 과일을 혼자서 챙겨 먹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망고를 사다 놓았는데, 제가 챙겨주질 않으니 너무 익어서 먹는 것보다 버리는 게 많은 지경까지 가더군요.


이럴 땐, 게으른 남편을 원망하기보다 애들을 가르치는게 좋겠다 싶어 작은 과도 쓰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손을 보호하면서 칼을 쓰는 법을 알려주고 망고를 자르고 칼집을 내고 껍질을 벗기는 법을 알려주니, 제가 늦게까지 온 날은 망고가 몇 개씩 줄어드는 게 보입니다.


어찌나 기특한지, 며칠 전 에는 망고를 잘라서 엄마 꺼라며 챙겨 놓았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하는 것을 들으신 분들이 종종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위험하지 않나요? 다칠 거 같은데.."


네 저도 압니다. 물론 위험합니다. 다칠 수도 있지요.

저희 아이들도 위험하고 다칠 수 있는 걸 안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못 쓰게 하는 것보다 위험한 걸 조심하게 잘 쓰는 법을 알려주면 아이들이 안전하게 잘 활용할 수 있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점점 더 기술이 늘고 잘 사용하게 된답니다.


큰 딸과 둘째 딸은 야채를 씻고 다듬는 법을 배우고 야채를 함께 잘라서 음식을 준비합니다.

함께 주방에 서서 음식 하는 이 순간들이 얼마나 즐겁고 든든한지 모릅니다.


전 요즘 아이들과 함께 식사 준비하는 즐거움을 제대로 알아가는 중입니다.

큰 딸은 고기를 볶고 둘째 딸은 야채를 볶습니다. 오늘 저녁은 돼지고기를 넣은 카레라이스 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